화이트 노이즈

돈 드릴로  장편소설  ,  강미숙  옮김
원제: White Noise
출간일: 2005.09.05.
정가: 15,000원
분야: 문학, 소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돈 드릴로(Don DeLillo)의 장편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가 인제대 영어교육원 강미숙 교수의 번역으로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드릴로는 필립 로스, 토마스 핀천 같은 미국 작가와 함께 해마다 가장 강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꼽히는 작가이다. 우리 독자에게도 널리 알려진 폴 오스터는 드릴로를 “미국에서 가장 소설을 잘 쓰는 작가”라고 꼽았고, 자신의 소설을 드릴로에게 헌정할 만큼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있다. 드릴로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화이트 노이즈』는 프랑스 독일 등 각지에서 번역되어 작가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발판이 된 작품이다.

 

 

 

 

 

 

 

 

미국의 추락, 이유가 있다

 

 

 

 

 

 

 

『화이트 노이즈』는 현대문명, 다시 말해 현대 미국문명으로 대변되는 물질문명에 관한 소설이다. 드릴로는 책의 곳곳에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맹신’으로 요약되는 현대인들의 사고와 대안없는 질주를 비판한다. 특히 이 책의 제2부 ‘유독가스 공중유출 사건’은 최근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 일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드러난 미국의 어두운 측면을 아주 유사한 이야기에 담아내고 있어 주목된다.

 

 

 

미국의 블랙스미스란 소도시에 어느날 시커먼 검은 덩어리가 피어오른다. 유독물질을 실은 탱크차가 도시 외곽에서 탈선하면서 도시 전체가 검은 구름에 뒤덮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태로 대학교수로 평화로운 삶을 살던 잭 글래드니 가족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행렬에 합류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검은 구름은 결국 자연적으로 흩어지지만, 오염물질에 노출된 잭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문제는 이 사건을 처리하는 시스템의 비인간적 측면들이다.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유독가스 유출이 있었음에도 정부는 이를 데이터화하는 데만 치중하고, 인간 개개인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다. 이 데이터는 전문가들의 손에 넘어가고 일반인들의 접근은 통제된다.

 

 

 

여기서 드릴로는 거대해진 테크놀로지와 더이상 이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 인간문명의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인간문명이 끊임없이 인재(人災)를 재생산할 동안 잭과 같은 보통 사람들은 각종 상업광고와 TV, 매거진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에 파묻혀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광고멘트는 현대 미국문명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인종차별이나 전쟁에만 몰입하는 정책, 테크놀로지에 대한 맹신 같은 미국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드릴로는 여기에 더해 미국문명의 좀더 본질적인 문제가 이러한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루머와 가십, 상품 광고 같은 유쾌한 기호들에 파묻어버리는 후기산업사회적 면모에 있음을 날카롭게 간파하고 있다.

 

 

 

 

 

 

 

죽음까지 위협하는 테크놀로지

 

 

 

 

 

 

 

이처럼 『화이트 노이즈』는 실제 현실과 각종 미디어에서 재생산된 현실 간의 구분이 모호해진 포스트모던 사회를 소설적으로 형상화한 뛰어난 작품이다. 드릴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비인간화된 문명 속에서 인간 존재의 참 의미를 ‘죽음’이라는 화두로 파헤치는 대범한 시도로 나아간다. 이 소설의 3부 제목인 ‘다일러라마’는 잭의 부인 배비트가 복용하는 약 이름 ‘다일러’를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이름을 빌려 변형시킨 말이다. 달라이라마가 현대인의 황폐한 정신을 치유하는 상징인 반면, 다일러는 죽음의 공포를 이기도록 설계된 최첨단 공학의 결정체이다.

 

 

 

이 소설의 앞부분에서 죽음에 대한 주인공들의 생각은 따듯한 배려와 사랑에 닿아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잭과 배비트는 죽음으로 서로를 잃고 싶어하지 않으며, 영원히 같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나눈다. 그런데 배비트가 다일러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죽음은 배려와 사랑의 끈을 잃고 두려움으로 추락한다. 죽음의 공포를 테크놀로지로 없앨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무너지고 배비트는 다일러를 얻기 위해 신약개발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고, 이 약에 집착한 잭은 그 개발자를 찾아가 총으로 쏘고 만다.

 

 

 

드릴로는 테크놀로지에 의지해 죽음을 넘어서려는 이 기막힌 시도를 오늘날 우리가 처한 기술주의 문명의 한 극단적 상징으로 그려낸다. 죽음에 대한 자연스런 두려움마저 왜곡하는 과학기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드릴로의 시각은 최근 인간생명의 한계에 도전하는 생명공학과 관련해서도 우리에게 중요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미국의 언론들이 하나같이 극찬하듯 드릴로의 문체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지적이다. 그의 지적인 강렬함은 존 쿳시나 밀란 쿤데라 같은 작가와 견주어 손색이 없으며 하나의 주제를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감각은 귄터 그라스에 비견할 만하다. 이 책을 번역한 강미숙 교수는 『화이트 노이즈』를 “과학기술의 시대에 인간의 존재이유를 묻는 포스트모던 소설의 걸작”으로 소개한다. 강교수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드릴로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화이트 노이즈』를 정확하면서도 감각적인 번역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목차

제1부 파동과 방사

제2부 유독가스 공중유출 사건

제3부 다일러라마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