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 속에 성장한 청년을 화자로 택하여 그가 마주친 칠레의 혼란상, 전통과 역사의 무게가 주는 중압감, 더러운 ‘아버지들’에 대한 분노, 이를 구원할 순수이상과 자연의 모성 등을 감각적이고 날카로운 표현과 다양한 상징들을 활용하여 짜임새있게 구성함으로써 도르프만 작품 특유의 문학적 향취를 십분 살려냈다. 자신과 연인의 태생에 얽힌 더러운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이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 폭사시키고 스스로도 죽으려는 계획을 꾸민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무섭고 매혹적인 음모이면서 모든 억압적이고 부정한 전통에 대한 완벽한 거부의 몸짓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천하의 바람둥이 아버지와 성적 무능력자 아들, 순수한 혁명이상의 현신 체 게바라와 순정한 모성의 상징 유모의 대비, 1992년 10월 12일-9일-10일-11일-9~12일로 이어지는 시간적 구성 등은 복잡한 현실을 효과적이고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줄거리
뉴욕에 사는 23살 애송이 망명자 가브리엘은 생일을 며칠 앞두고 엄마와 함께 칠레로 돌아온다. 아옌데 혁명의 좌절로 망명하면서 헤어진 아버지 끄리스또발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리고 성적 호기심으로 들끓는 가브리엘은 천하의 바람둥이 아버지 끄리스또발에게서 ‘모든 면에서 한수 배우기’를 갈망하지만 어쩐지 아버지와의 관계는 서먹서먹하기만 하고,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풀려간다. 혁명의 열정을 간직한 채 ‘민주화된’ 칠레를 부정하는 삼촌, 현 정부의 권력자로 부상해 민주 칠레 건설의 사명감에 가득 찬 끄리스또발의 죽마고우 바론, 일상의 탕진에 충실한 끄리스또발, 낙후한 경제구조의 모순을 몸으로 감당하는 칠레 뒷골목의 민중들, 가브리엘이 마주친 칠레는 엉망진창의 혼란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드디어 아만다 까밀라와의 첫사랑이 시작된다. 가브리엘은 갖은 애를 써서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아만다와도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지만 타락한 ‘아버지들’이 벌인 짓 때문에 생긴 자신과 아만다 사이의 복잡한 출생의 비밀을 알고 절망하고 분노한다. 빙산수송단의 일원으로 쎄비야에 간 가브리엘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일이자 끄리스또발과 바론의 50살 생일을 앞두고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폭사시킬 계획을 짜는데……
다양한 상징을 구사하는 정교한 구성, 거침없는 은어와 비속어를 구사하는 감각적이고 예리한 대화체에 실린 진지한 문제의식으로 읽는 재미와 깊은 감동을 함께 갖추었다.
한국어판 서문
프롤로그 | 1992년 10월 12일
제1부 1992년 10월 9일
제2부 1992년 10월 10일
제3부 1992년 10월 11일
에필로그 | 1992년 10월 9~12일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