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어린이들에게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민족이라는 말은 구호처럼 들리고 차별과 멸시의 문제는 지나간 역사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일 뿐이라는 듯, 『꽃신』은 치열한 작가의식과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21세기를 살고 있는 재일동포의 삶과 고민을,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작가가 창작을 시작할 때부터 꼭 그리고 싶던 테마였다는 『꽃신』은 크게 두 축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친어머니가 조선인임을 식구들에게까지 감춰온 미스즈 엄마의 이야기와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지만 코리안으로서 고민을 안고 있는 키무라의 이야기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6학년 여자 아이 미스즈의 시선과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미스즈는 공원에서 “난쟁이 배”처럼 생긴 물건을 줍는데 그 물건을 보고 화를 내는 엄마가 이상하기만 하다. 나중에 같은 반 모리노를 통해 그것이 한국의 꽃신임을 알게 된다. 한편 학교에서 미스즈는 실수로 급식용 카레를 엎지르는데 늘 차가워 보이던 키무라가 나서서 수습해 준다. 그 일 이후로 미스즈는 키무라를 좋아하게 된다. 호오린지 절에서 북한 돕기 바자회를 준비하면서 미스즈와 친구들은 한국와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된다. 바자를 알리는 포스터가 찢기고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조선 따위는 도와줄 수 없다는 어른들의 냉랭한 반응에 아이들은 실망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문제일 뿐이라며 포기하지 않는다. 미스즈는 창고방 낡은 상자에서 꽃신과 저고리를 발견하고 그 일을 계기로 미스즈 엄마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밝힌다. 졸업을 앞두고 방황하던 키무라는 졸업 송별회에서 중요한 고백을 하여 친구들을 놀라게 한다.
『꽃신』은 차별에 대한 고통이나 저항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자기 존재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 찾기에 비중을 둔다. “답답했어, 늘 일본인처럼 행세하는 것이.”라는 키무라의 말이나 “나는 내 안의 조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걸요.”라는 미스즈 엄마의 말처럼 재일동포들은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야 한다. 시대에 따라 모습이 바뀌긴 했지만 일본에서 민족 차별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재일동포들은 아직까지 본명을 당당하게 쓸 수 없다. 동화 속에서 키무라는 자기가 코리안임을 밝히고 가장 먼저 친구들에게 ‘박승리’라는 본명으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그런 키무라를 바라보면서 미스즈가 “키무라는 박승리라는 이름이 되어 힘차게 날아올랐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제 이름으로 불리는 일, 자기 나라 말을 쓸 수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첫걸음이다. 스무 살이 넘어서 갈등 끝에 한국 이름과 말을 되찾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 작가의 경험이 담긴 이야기이기에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작가가 머리말에 쓴 것처럼 이 책에 나오는 어른들은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자기를 반쪽이라 생각해 온 미스즈 엄마, 일본인한테 져서 안 된다고 늘 말하면서 일본인이 되려 하는 키무라의 아버지, 조선은 원래 일본 땅이었는데 건방지게 덤빈다고 생각하는 오까다의 아버지, 일본에서 살려면 일본인이 되는 게 이득이 아니냐 라고 쉽게 말하는 일본인들. 하지만 어린이들은 이런 어른들과는 다르게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나중에 아기를 낳게 되면 꽃신을 신기겠다는 미스즈, 이대로의 자기가 좋다며 당당하게 진로를 정하는 키무라,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무엇을 해야 옳은지는 알기 때문에 그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아이들. 작가는 이런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특히 미스즈와 친구들이 키무라를 만나러 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재일동포 아이들이 힘을 얻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이 동화가 주제의식 때문에만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일본아동문학자협회 신인상 수상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은 작가답게 아이들의 생각과 심리를 잘 담아내어 이야기를 엮어가는 솜씨가 뛰어나다. 특히 까다로운 역사 문제에서 작가는 이해하기 쉬운 비유들을 사용한다. 일본말을 자연스럽게 쓸 수 없다면, 일본이 둘로 나뉘어졌다면 어떨까 식으로 입장을 바꿔봄으로써 내가 겪지 못한 일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누나와 늘 티격태격하는 동생 타까시, 얄미운 녀석 오까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시험공부에 대한 부담 등 일본의 어린이든 한국의 어린이든 이 또래의 어린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장치들로 아이들에게 한층 가깝게 다가간다.
이제 『꽃신』은 일본 어린이들, 재일동포 어린이들, 한국 어린이들 모두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동화를 읽은 소감은 아이들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또한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공통될 것이다. 이 동화가 단지 우리 민족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 아니라 사람의 삶과 생각을 진실하게 담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