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칠레의 첨예한 사회문제들과 정면으로 대결하면서도 탄탄한 짜임새와 실험적 문체, 다성적인 울림을 가진 서사를 바탕으로 칠레인들의 삶을 그리는 감동적인 문학을 선보여왔다.
세계적인 문화•문학 시장에서 그의 인기와 명성은 주목할 만하다. 반체제작가라는 불리한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와 소설, 희곡, 비평 등은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지구촌의 수많은 독자들한테 애독되고 있다. 비평가들로부터도 그는 빠블로 네루다와 가르시아 마르께스를 잇는 새세대 라틴아메리카 작가로, 나아가 지구화시대의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다재다능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회고록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 (Heading South, Looking North)는 새로운 서사양식을 부단히 실험하는 작가의 회고록답게 통상적인 자서전과는 다른 독창적인 형식을 취한다. 실험적 형식 속에 도르프만의 파란만장한 생애의 애절한 사연들이 녹아 있어 절박감이 곳곳에 묻어난다.
도르프만은 자서전의 형식을 빌려오되 밋밋한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는 기존의 관례와는 달리 특이한 시간적 짜임새 속에 ‘죽음의 서사’와 ‘삶과 언어의 서사’를 결합하여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죽음의 위협을 넘어 삶의 긍정으로
장제목에 ‘죽음’을 담고 있는 ‘죽음의 서사’는 혁명의 좌절과 죽음의 위협을 다룬다. 이는 삐노체뜨 쿠데타에 의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된 도르프만의 약 3개월(삐노체뜨 쿠데타가 일어난 1973년 9월 11일 전야~아르헨띠나로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 1973년 12월초)에 걸친 도피생활을 기록한 것이다. 이 서사의 한가운데, 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아옌데 혁명과 삐노체뜨 쿠데타라는 두 사건이 놓여 있다. 그에게 회고록 집필이란 혁명과 폭압, 도피 과정에서 얻게 된 치명적 상처를 직시하고 이를 치유하여 삶을 긍정하게 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회고록 제목에서 ‘남’과 ‘북’이 대비되고 있는데, 이는 가난한 남쪽 나라와 부유한 북쪽 나라를 뜻한다. 남쪽 나라들에 대한 북쪽 나라들의 신식민주의적 지배와 수탈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왔고 칠레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의 민중들은 남북간의 불평등한 관계와 이념적 압박이라는 이중의 억압에 시달려왔다. 아옌데혁명은 이를 넘어서려는 칠레민중의 열망이 1970년 칠레 대통령선거에서 아옌데의 온건사회주의 노선에 결집되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사적으로는 선거에 의한 무혈혁명을 통해 미국중심의 지구화에 제동을 건 첫 걸음으로 평가받았지만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삐노체뜨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문당하고 실종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극적으로 칠레를 탈출할 수 있었던 도르프만은 “왜 나 혼자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답을 고통스럽게 찾아야 했다.
두 문화와 두 언어를 함께 받아들이는 잡종적 삶
죽음의 서사 사이사이에 있는 ‘삶과 언어의 서사’는 도르프만의 이주와 망명으로 인한 언어/정체성의 혼란을 치밀하게 추적한다. 도르프만은 1942년 아르헨띠나에서 태어나 두살 때 (아르헨띠나의 나찌화 경향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영어를 모국어로 삼아 ‘미국 소년’이 되기 위해 애쓰다가 미국의 매카시선풍 여파로 1954년 칠레로 이주한다. 소년 도르프만이 진짜 ‘양키 아이’는 못되었을지라도 이미 영어를 모국어로 습득한데다 미국에 적응하려는 몸부림이 모질었던만큼, 그는 한동안 자신의 ‘미국적 정체성’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습득하면서 아옌데혁명에 참가하고, 삐노체뜨 쿠테타가 발생하는 1973년까지 미국의 주류문화를 비판하는 반제국주의적•진보적 지식인으로서 자기의 목소리를 선명히하게 된다. ‘죽음의 서사’가 수만명의 동지들이 죽고 고문당하고 사라지는 와중에 자기만 살아남은 것을 이해하기 위한 서사라면, ‘삶과 언어의 서사’는 ‘유배당한’ 존재가 맞닥뜨린 일상적인 문제들, 이산자 특유의 단절감과 상실감, 잡종적 존재로서의 삶을 다루는 것이다.
복합적 서사의 의미
도르프만이 시간대와 성격이 다른 두 서사를 박진감 있게 엮어간 것은 두 서사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특히 죽음이 그의 삶에 핵심적인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죽음의 서사와 삶과 언어의 서사가 이어질 때 비로소 독자들은 도르프만이 이주와 망명의 상처를 극복하고 아메리카의 두 대륙(남/북)과 두 언어(영어/스페인어)를 잇는 다리와 같은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음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독자들은 도르프만의 복잡다기한 생애를 퍼즐 맞추듯 이어붙여가며 해석해야 하는데,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문제의 인물의 삶이 전개되는 과정을 조각조각 재구성하면서 전체를 다 이해할 수 있다.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에는 소설적 요소와 기록적 요소가 뒤섞여 있다. 허구와 사실을 결합해 기억을 묘사함으로써 과거에 행한 행동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독특한 접근방법(‘어린나이에 발견한 삶과 언어를 다루는 장’ 참조)이 전자라면, 미국문화(동화•동요•만화•라디오 프로그램•애니메이션•영화 등에 대한 풍부한 디테일), 냉전체제의 주요사건과 제3세계의 혁명•반혁명의 빈번한 사례들을 들려주는 것은 후자이다. 예술적 감동과 함께 당대의 역사적 지형을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는 면모이다.
헌사를 겸한 머리말
한국어판을 내면서
제1부 북과 남
어린 나이에 발견한 죽음을 다루는 장
어린 나이에 발견한 삶과 언어를 다루는 장
10073년 9월 11일 이른 아침, 칠레 싼띠아고에서 발견한 죽을을 다루는 장
1945년 미국에서 발견한 삶과 언어를 다루는 장
1973년 9월 11일 늦은 아침, 칠레 싼띠아고에서 발견한 죽을을 다루는 장
1945~54년 미국에서 발견한 삶과 언어를 다루는 장
1973년 9월 13~14일, 칠레 싼띠아고에서 발견한 삶과 언어를 다루는 장
1954~59년 칠레 싼띠아고에서 발견한 삶과 언어를 다루는 장
제2부 남과 북
1973년 9월 어느날, 칠레 싼띠아고에서 발견한 죽음을 다루는 장
1960~64년 칠레 싼띠아고에서 발견한 삶과 언어를 다루는 장
1973년 칠레 싼띠아고의 한 대사고나 바깥에서 발견한 죽음을 다루는 장
1965~68년 칠레 싼띠아고에서 발견한 삶과 언어를 다루는 장
1973년 10월, 칠레 싼띠아고의 한 대사관 안에서 발견한 죽음을 다루는 장
1968~70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발견한 삶과 언어를 다루는 장
1973년 11월초, 칠레 싼띠아고의 한 대사관 안팎에서 발견한 죽음을 다루는 장
1970~73년 ,칠레 싼띠아고에서 발견한 삶과 언어를 다루는 장
에필로그 | 다시 한번 삶과 언어와 죽음을 다루는, 마지막 장
감사의 글
미국이 인류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다 - 미국과 칠레의 9·11
옮긴이의 말 | 독창적인 양식으로 씌어진, 디아스포라적 존재의 회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