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비밀』의 주인공 열두 살 미키도 증조할머니의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괴팍한 노인네가 너무 싫어서 일기를 몰래 읽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캐나다 시골 어느 한구석에서 갑자기 “너희 집에서 살다 죽어야겠다”는 전화 한통만 달랑 하고 뉴욕, 브루클린의 미키 집에 등장한 여든여덟 살의 이 할머니는 성격이 여간 고약한 게 아니다.
가방에 권총을 넣어 다니고,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부엌에서 잘그락 잘그락 소리 내며 다른 사람의 잠을 방해하고, 저녁 여덟 시 이후에는 시끄럽다고 텔레비전도 못 보게 한다. 형이 대학 진학으로 다른 도시로 간 후, 방을 전부 다 차지하고 자유롭게 생활하던 미키는 할머니와 한방을 쓰게 되면서 더욱 조용 조용히 집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할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하지만 할머니의 일기를 읽으면서 미키는 평범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삶을 알게 되고, 실컷 할머니 험담만 했던 친구들에게 “며칠 있으면 우리 할머니를 훨씬 더 잘 알게 될 거야. 처음 생각한 할머니와 다를지도 몰라.” 하면서 할머니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증조할머니, 페이스 그린이 10대 시절을 보냈던 시대는 금주법 시대인 1920년대이다. 시카고에서 구두 공장 사장인 아버지를 둔 페이스 그린의 가족은 직원의 거액 공금 횡령으로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캐나다 북부 몬태너라는 시골로 이사 가게 된다. 거기서 아버지는 ‘앙리 르구외’라는 밀주업자와 손을 잡고 밀주를 만들어 판다. 물론 두 딸, 페이스와 동생 아멜리에게는 비밀로 한 채. 시카고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시골뜨기가 된 페이스와 아멜리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적응을 해나가지 못한다. 또한 무슨 일을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는 부모님의 태도도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다 페이스는 아버지가 법으로 금지된 술을 몰래 만들어 파는 일을 하는 걸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밀주권 경쟁을 하다 앙리 르구외가 다른 사람도 죽이게 되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다. 하지만 페이스는 극심한 심적 갈등 속에서도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꿋꿋하게 10대 시절을 보낸다.
미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씩씩하게 생활해나간, 어린시절의 할머니를 일기를 통해 보면서 괴팍한 할머니의 겉모습이 진짜가 아니라 그 안에 따스함이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할머니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간 할머니에게 무뚝뚝하게만 대했던 미키도 수줍은 냥 할머니에게 자기 마음을 전달하게 된다.
미키와 할머니는 몇 개의 사건을 통해서도 친해지게 된다. 할머니는 빙판에서, 미키는 롤러 블레이드를 타다가 넘어져서 같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미키와 할머니는 티격태격하면서 정을 붙이게 된다. 또한 미키가 롤러 블레이드를 뺏어간 못된 친구 록키에게 돌려달라고 그랬다가 맞고 들어오자, 록키를 찾아가 구식 권총을 들이대며 겁을 주어 다시는 록키가 미키와 동네 아이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나무, 숲, 새, 동물 등 자연이 그리워 캐나다로 돌아간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미키는 잔심부름 등을 하며 돈을 모아 여름방학 때 드디어 몬태너에 가게 된다. 몬태너 숲 속, 일기장에 나오는 집에서 할머니와 지내면서 미키는 미처 읽지 못한 일기의 뒷부분(실은 할머니의 아버지가 회사 돈을 오랫동안 횡령하다 들켜서 시카고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얘기, 할머니의 부모님이 죽게 된 얘기, 동생 아멜리와 앙리 르구외가 떠나게 된 얘기 등)을 할머니에게서 직접 듣는다.
이렇듯 이 작품은 80여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할머니와 증손자의 아름다운 만남을 그리고 있다. 할머니는 자신에게는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이 증손자에게는 인생을 배워가는 경험이 됨을 알고 뉴욕에 간 첫날부터 미키가 일기장을 몰래 읽는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미키를 그냥 지켜본다. 미키 또한 할머니의 소녀 시절 일기를 통해 또래 친구를 사귀듯 할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작품 전체에 번갈아 나오는 미키와 할머니의 목소리는 서로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듯 독자에게도 다가가 마음속에 감동적인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금주법 시대를 다룬 역사 소설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부모나 앙리 르구외는 범법자이지만 결코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작가 장 프랑수아 샤바스는 아이들이 선과 악이라는 도식을 넘어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한다. 진지한 내용이지만 전혀 무겁지 않게 이끌어나가는 작가의 능력도 탁월하고, 아이들의 언어와 상상력으로 씌어진 듯한 재미있는 표현들도 때로는 빙그레, 때로는 깔깔거리며 웃게 만든다.
이 작품은 1998년 프랑스에서 출간 당시 무려 열네 개의 상을 받았다. 그 중 하나가 몽트뢰유(Montreuil) 아동 도서전에서 수여되는 땀땀(Tam-Tam) 상인데, 이 상은 프랑스어권 어린이 문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프랑스 각 도시의 열다섯 개 학급 어린이들이 심사에 직접 참여하는 점이 특이하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1 정신이 좀 이상한 할머니
2 흡혈귀
3 일기장
4 먹고 마시기를 좋아했다고?
5 앙리 르구외 씨
6 빙판
7 카나리아가 되라고?
8 아스띠 포도주
9 천사의 방문
10 공기총
11 뚱땡아, 꺼져 버려!
12 노루발
13 처치해 버리다
14 내 사랑 술피시우스
15 책 좋아하니?
16 인형
17 아, 남자들이란!
18 알사탕
19 록키 카파치오
20 롤러 블레이드 내놔!
21 서부 영화
22 페이스 할머니 집에 간다고?
23 조용히 좀 해요, 술피시우스!
24 메썰린느
25 나무 먹는 곰?
26 부모님의 무덤
27 밀주업자
28 진정한 친구
29 눈먼 돼지
30 챵츈
31 참새 한 마리
옮긴이의 말 |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떻게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