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연성은 자신의 글쓰기 과정에도 오롯이 투영된다. 작가는 생활동화에서 풍자동화까지 거침없이 넘나든다. 그림책 텍스트처럼 정돈되고 절제된 단문을 이어가다가 어느새 걸쭉한 입담을 숨 가쁘게 쏟아낸다. 일상의 촘촘한 결을 따라 깊은 울림을 길어 올리는가 하면 가상 시공간의 주름을 훌쩍 뛰어넘는다. 허은순은 당분간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멈추지 않을 듯하다. 그 종착지가 어디일지 『솔숲마을 이야기』에 실려 있는 네 편의 동화를 통해 예견해보는 것도 한편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표제작 「솔숲마을 이야기」는 어느 조용한 바닷가 솔숲마을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 솔숲마을에 돈을 벌어들이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나돈만'이라는 작자가 큰 식당을 열어 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난더만'은 부랴부랴 가게를 열고, '엄청만'은 솔숲을 깎아내어 호텔을 짓고, '제일만'은 모래사장을 매워 놀이공원을 세운다. 사라진 솔숲 자리에 인공나무를 심고, 뿌옇게 오염된 바다를 대신해 커다란 수영장을 만든다. 솔숲마을은 순식간에 비까번쩍한 '울트라나이스수퍼골드타운'으로 바뀐다. 물신주의 세태를 천연덕스레 꼬집는 솜씨는 우리 아동문학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풍자동화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빛난다.
「나 찬밥 아니에요」는 새로 태어난 동생 때문에 찬밥 신세가 된 산이가 다시 엄마 아빠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애쓰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이들의 행동과 마음의 흐름을 추적해간 작가의 세밀한 눈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를 따라온 강아지」에서는 길 잃은 강아지를 둘러싸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바탕 눈치작전을 벌인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아들의 채근에 아버지는 완고하게 거부한다. 비가 오던 어느 날, 길 잃은 강아지가 아버지를 따라오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비에 맞아 바들바들 떠는 강아지와 속으로 '제발, 제발!'을 외치는 아들과 난처한 듯 입을 실룩거리는 아버지의 눈빛이 교차하는 장면은 절묘한 긴장과 웃음을 선사해준다. 작가는 마지막에 가서야 이 작품이 겉으로는 엄하고도 속내는 더없이 푸근한 우리네 아버지들에게 보내는 헌사였음을 보여준다.
「얼룩고양이」의 주인공 돌이는 베란다 밖 풀숲에서 노니는 얼룩무늬 도둑고양이(얼룩이)와 낯설게 조우한다. 조금씩 서로를 교감하던 초겨울 어느 날, 얼룩이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돌이는 겨우내 베란다에 기대어 얼룩이를 기다린다. 그리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봄날에 얼룩이는 어미 도둑고양이가 되어 나타나는데, 세상에! 그 뒤를 따라 새끼고양이 네 마리가 풀숲에서 고개를 내미는 게 아닌가. 돌이는 그 모습을 보며 얼룩이가 자기와 함께 살 수 없는 이유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머리말
나 찬밥 아니에요
아버지를 따라온 강아지
얼룩 고양이
솔숲마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