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책읽기 6

노루 삼촌

장철문  지음  ,  김상섭  그림
출간일: 2002.02.25.
정가: 10,000원
분야: 어린이, 문학
시인 자신의 실제 이야기이기도 한 '노루 삼촌'은 1999년 『녹색평론』7•8월호에 같은 제목의 에쎄이로 처음 세상에 나왔다. 서정적인 문체와 잔잔한 감동이 녹아나는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적잖은 여운을 남긴 이 글은 그후 자신의 조카에게 들려주려는 소박한 마음에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되었고, 일년 반 정도의 시간을 거쳐 조금씩 다듬어져 모든 아이들을 위한 동화로 탄생했다.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은 마을 전북 장수의 노단이라는 마을에 새끼노루 한 마리가 찾아들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자연과 동떨어져 사는 요즘 아이들에겐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기영이 형은 봄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뜻밖에도 새끼노루를 발견하고 자기 집 염소막에 자리를 마련해준다. 제 방귀소리에 놀라 산 너머 십리 밖까지 도망간다는 겁많기로 소문난 노루가 도망갈 생각은 않고 사람을 따라 마을로 내려온 것이다. 이때부터 '나'를 비롯한 마을 아이들은 호기심에 기영이 형네 집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왜냐 하면 이 마을 아이들에게 노루는 아주 친숙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집성촌이라고 하여 같은 성씨끼리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는데 노단은 장씨(張氏)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어서 따지고 보면 마을사람들은 다 일가 친척이 되는 것이다. 이 마을 사람들의 조상신은 노루여서 '나'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우리 노루 새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던 것이다. 맨 처음 할아버지가 노루한테 나와서 자신을 노루의 조카로, 노루를 삼촌으로 여기면서.

 

'나'와 아이들은 도토리잎과 칡잎을 뜯어 날마다 새끼노루에게 갖다 바치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노루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노루가 점점 자라남에 따라 문제가 하나둘씩 발생한다. 노루는 저 혼자 염소막을 차지하고도 그 안에 있는 걸 답답해하기 시작하더니 차츰 염소막 울타리를 뛰어넘어 동네 텃밭을 망쳐놓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노루를 데려다 키운다고 가뜩이나 탐탁치 않게 여기던 동네 어른들 성화에 못 이겨 기영이 형과 동네 아이들은 서운함 가운데 노루를 산으로 돌려보낸다. 아이들은 여름 늦장마가 한창일 때 노루가 기영이 형네 찾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노루가 얼마나 컸는지, 털 색깔이 어떻게 변했는지, 뿔 자리가 생겼는지 궁금해하며, 염소 혼자 누워 있는 염소막을 바라보며 노루를 그리워도 해보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차차 노루의 존재를 잊게 된다. 그런데 그 해 겨울,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밤, 의젓하게 자란 노루는 동화속 얘기처럼 기영이 형네 집을 찾아온다.

 

작가는 시인답게 담백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 노루와 아이들의 관계에 대해 아름답게 풀어놓는다. 우리말의 아름다운 어감이나 느낌을 잘 살려 쓴 문장들, 특히나 노루가 성장함에 따라 변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나 계절의 변화나 시간의 변화에 대한 묘사는 좋은 문장의 예를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이 잔잔하고도 서정적인 이야기 중간에 단군신화와 관련된 궁금증도 자연스레 끼워 넣는다. 어린 시절 자신의 호기심이었기도 한 이 의문은 따지고 들면 거대담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꽤 진지한 질문이다. 이 마을 아이라면 맨 처음 조상이 곰이었다는 얘기는 가히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군신화 자체에서 환웅이 내려오기도 전에 인간세상이 존재했었다는 대목을 꼼꼼하게 따져들며 던지는 이 질문은 비단 이 마을 아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해했을 내용이기도 하다. 동화라면, 더군다나 저학년 동화라면 가벼운 우스개 이야기쯤으로 치부하고 마는 요즘 세태에서 장철문씨의 진지하면서도 서정적인 글쓰기는 저학년 동화, 나아가 어린이문학의 새로운 전범을 보여준다 하겠다. 김상섭씨가 차분한 동양화로 보여주는 시골 풍경과 노루의 모습 또한 글과 잘 어울려 아이들에게는 깔끔하면서도 차분한 책읽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