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만큼 빌어먹을 것이 또 있을까? 흔히 학창 시절의 추억으로 포장되곤 하는 기억만큼 바늘로 나를 콕콕 쑤셔대는 듯한 고문이 없다. 사춘기의 학교 담벼락 너머로 체육 시간의 우리들을 훔쳐보며 괴성을 지르곤 하던 여드름 투성이의 그 애숭이들과 고등학교 3년 내내 우리 학교 교문 앞에서 죽치곤 해서 내게 스토커가 뭔가를 일찌기도 알려줬던 그 못생긴 초등학교 동창까지, 특히나 학창 시절의 첫사랑 어쩌구 하고 나오면 난 딱 골치가 아파진다. 내가 느낀 이런 감정을 여주인공 이츠기도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다. 3년 내내 같은 반, 같은 이름의 남자 아이란 괜히 자존심 상하는 기피의 대상일 뿐이지 사랑과 호기심을 느끼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츠기에게 느닷없이 날아온 히로코의 편지가 그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에의 초대장이 된 것이다. 다른 사람에 의해 다시 더듬어간 기억 속에는 자기를 평생 잊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채 죽어버린 한 남자 동창생의 진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이란 영화적이든 현실이든, 늘 끝에 가서야 혹은 상황이 다 종치고 나서야 밝혀지듯이 그녀의 추억 목록에는 이제 아쉬움과 애틋함이란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될 뿐이다. 끝에 그녀가 자기 집 마당에 늘 있었던 나무들 중에서 자기와 똑같은 나이와 이름을 가진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 진실(죽고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진실)과의 차이점이라면 진실을 알고 난 뒤에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지만 이츠기는 죽고 없다는 사실만이 다를 뿐이다.
일인 이역을 한 소녀의 예쁜 얼굴이 예쁜 화면의 이야기를 받쳐 주었듯이 가장 이와이 순지 답지 않다는 “러브레터”에서 나는 남자 감독(성 차별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답지 않은 소녀적 감수성이 놀라울 뿐이다. 러브레터는 그 만큼 이쁘다. 주인공들도, 화면도, 이야기도
이쁜 동화 속 세계다. 나도 어디 동화 같은 그런 까까머리의 중학교 남자 놈 어디서 하나 불쑥 안 나타나나?…..지금 만나면 잘해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