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책 소개

1980년대말 이래 분단체제론을 통해 한반도의 분단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그 근본적인 극복을 위해 궁구해온 저자가 8년 만에 선보이는 사회비평서이자 시국론집이다. 6·15공동선언이 나오기 2년 전인 1998년 『흔들리는 분단체제』에서 이미 분단체제의 동요를 주장한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반도식 통일은 현재진행형’이라는 도발적인 명제를 내놓는다. 이는 단지 희망적인 선언이 아니라 저자 자신이 오랫동안 정리해온 개념적 구도 속에 자리한 것으로, 저자는 통일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과 자세로 나설 때 남북의 ‘1단계 통일’은 결코 먼 앞일이 아니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작업임을 역설한다. 저자는 통일의 개념 자체를 바꿀 것을 제안하는바, 점진적인 분단체제 극복작업 중에 어느 순간 ‘도둑같이’ 찾아오는 통일이야말로 한반도식 통일의 불가피하면서도 바람직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국가연합제

무엇보다 부국강병을 지상목표로 삼는 단일형 국민국가(unitary nation-state)로의 ‘완전한 통일’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상당기간에 걸친 지속적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발상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일회성 사건으로서의 통일’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닐지라도 한반도 분단의 특성상 전쟁이나 그에 버금가는 파국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다수의 한반도 주민이 현재의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에서 살게 되는 과정이 통일작업의 핵심이며 이 과정이 어느정도 지속된다면 단일형 국민국가의 선포 여부는 부수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이때 남북 현정권의 일정한 안정성을 보장하고 남북간 주민 이동의 적당한 통제를 인정하는 국가연합 형태야말로 국가형태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떠오른다. 분단체제의 영구화 시도나 그 급격한 붕괴 모두를 경계하는 현실인식이 확산될수록 남북한 다수 민중과 기득권층 내 합리적 인사들이 두루 수긍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이런 국가연합 형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는 6·15공동선언의 조항은 애매모호한 표현 속에 실현가능한 합의를 담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1, 3, 5, 6장)

일차적 완성이 눈앞에 다가온 한반도식 통일

이처럼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 어느 지점에서 남북간의 통합작업이 일차적인 완성에 이르렀음을 남북 쌍방이 확인했을 때 ‘1단계 통일’은 이룩되는 것이다. 6·15공동선언이야말로 독일식 흡수통일도 베트남식 무력통일도 아닌 우리식 통일을 이루자는 합의였을 뿐 아니라, 한반도식 통일에 시동을 건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요컨대 지금처럼 다소간에 두루뭉수리로 진행하다가 문득 통일이 되는 과정이야말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한반도식 통일의 참뜻인바, 6·15공동선언 이후 온갖 난관과 파란 속에서도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현실은 한반도식 통일이 현재 진행중임을 웅변해준다. 또한 통일이 이처럼 아득한 장래의 일도 아니며 엄청나게 위협적인 사변도 아니라는 믿음을 가질 때 평범한 대중들이 각자 처한 삶의 마당에서 ‘어깨에 힘 빼고’ 통일의 길에 나서는 일이 가능해진다. (1, 3, 6장)

이 시대의 참된 진보노선은 ‘변혁적 중도주의’

이렇게 볼 때 ‘분단체제의 해체기’이자 ‘통일시대’인 6·15시대는 개혁운동의 자기개혁까지 포함하는 ‘남북의 점진적 통합과정과 연계된 총체적 개혁의 시대’로 정의될 수 있다. 이같은 개혁을 위해서는 NL(민족해방파, 자주파)과 PD(민중민주파, 평등파) 및 BD(부르조아민주주의, 온건개혁세력)의 3자결합이 필요하다. 분단체제극복이 현시기 최대의 변혁과제인 동시에 남한사회의 구체적 개혁작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합은 한국사회에 필요한 참된 진보노선이라 하겠는데, 변혁이 광범위한 대중이 참여하는 점진적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중도주의’ 노선이며, 분단체제극복을 겨냥한 합작이라는 점에서 ‘변혁적’인 중도주의인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장치가 곧 분단체제이고, 남북이 상대적 독자성을 지니긴 했지만 분단체제를 매개로 세계체제의 규정력을 반영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는다면, 자주통일론과 세계적 시각을 지닌 계급운동은 한국사회의 구체적 개혁과제에 초점을 둔 시민운동 및 개혁정당(들)과도 자연스럽게 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4장)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론에 대한 비판

그런데 참여정부(및 그에 앞선 개혁정권들)의 실적을 평가할 때, 이같은 분단체제의 극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느냐는 기준과 상관없이 ‘진보’만을 내세워 질타하는 행위는 공정한 평가로 볼 수 없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나빠졌다”는 진술과 함께 그간의 성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달성에 불과하다고 보고 현단계 한국민중의 탈동원화를 강조하는 한편 민족주의 일변도의 통일론을 비판하며 극단적 선평화론으로 치닫는 최장집 교수의 주장은 그런 의미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최교수는 분단시대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당정치에 과도하게 집착해 사회운동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은 정당정치와 다양한 사회운동이 서로 주고받는 상태에서 이루어질 터이며, 정치의 본래의 의미는 최교수가 말하는 협의의 정치와 그가 ‘정치 바깥’으로 규정한 민주시민의 사회활동을 두루 포괄한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분단국일 경우, 때로는 국가기구를 통해, 때로는 통치제도 바깥의 운동을 통해 다양하게 진행되는 분단체제극복운동이 필수적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싸움을 예의 ‘3자결합’에 따른 폭넓은 연대를 바탕으로 지속하면서도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긴 안목의 대안을 제공해주는 노선이 바로 ‘변혁적 중도주의’인 것이다. (4장)

‘생명지속적인 발전’의 개념과 박정희 평가 외

그외에 다국적 민족공동체이자 네트워크로서의 한인공동체(multinational ethnic community) 건설에 대한 주장, 지속가능한 발전을 대체할 생명지속적 발전(life-sustaining development)의 제안,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로서의 박정희에 대한 평가 등이 주요 내용이다.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측대표로 활약해온 저자가 그같은 현장의 실감에 문학평론가로서의 폭넓은 교양과 사유 그리고 한반도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행복하게 결합시킨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지침이 되리라 기대한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1. 6·15시대의 한반도와 동북아평화
2. 6·15시대의 대한민국
3. 한반도의 통일시대와 한일관계
4. 분단체제와 ‘참여정부’
덧글_변혁적 중도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제2부
5.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새 발상
6. 6·15선언 이후의 분단체제 극복작업
7. 다시 지혜의 시대를 위하여
8. 통일작업과 개혁작업
덧글_이수훈 교수의 분단체제론 비판에 답함
9. 한반도의 2002년

제3부
10. 한반도에 ‘일류사회’를 만들기 위해
11. 새만금 생태보존과 바다도시 논의
12.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체제는 가능한가
13. 21세기 한국과 한반도의 발전전략을 위해
14. 박정희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

원문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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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저자 소개
  • 백낙청
    백낙청

    1938년생. 고교 졸업 후 도미하여 브라운대와 하바드대에서 수학. 후에 재도미하여 1972년 하바드대에서 D. H. 로런스 연구로 영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했으며 서울대 영문과 교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시민방송 RTV 이사장,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등을 역임하며 민족문학론을 전개하고 분단체제의 체계적 인식과 실천적 극복에 매진해왔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으로 있다.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 / 인간해방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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