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책 소개

9·11테러부터 이라크전쟁, 부시 재선에 이르기까지 21세기에도 여전히 미국은 굵직한 사건의 주역으로 세계사에 등장하고 있다. 이에 미국을 알고자 하는 움직임은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그동안 한국에서 출간된 수많은 미국 관련 서적들이 이를 증명하는데, 그중 대부분의 책들은 영미나 유럽권의 번역서였다.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은 한국의 진보적 사회학자인 김동춘(金東椿,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이 한국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집필한 ‘토종’ 미국학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미국에 대한 참여관찰 결과이다. 이라크전이 개시되었을 때 미국에 체류했던 저자는 1년간 현지에서 각종 미디어를 모니터하고 여러 학술대회와 강연을 참관하며 자료를 수집하여 겉으로 드러난 사건 중심의 논쟁에서 멈추지 않고 미국사회의 본질을 정면에서 파고든다. 미군정, 한국전쟁, 주한미군, 자본주의 세계체제, 미국 노동운동, 종속이론과 제3세계, 할리우드, 대중사회, 군산복합체, 베트남전쟁, 보수기독교 등 미국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저자의 깊이있는 통찰을 통해 단일한 실체를 가진 미국의 상으로 종합된다.

 

 

한국의 시각에서 본 미국

 

이 책에서는 미국을 추동하는 두 엔진인 시장과 전쟁을 중심으로 미국사회를 분석한다. 시장과 전쟁은 다른 제약이나 조건 없이 자신의 능력만 갖고서 겨루는 장이라는 점에서 ‘태생보다 능력이 좌우하는’ 미국의 정신과 잘 부합한다. 결국 냉정한 이해관계와 힘의 타산만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장과 전쟁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미국의 역사와 사회의 작동원리에 스며들어 있는지, 그리고 그 작동원리로 인해 현재의 미국에서 어떤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지가 이 책의 주요 논점이다. 또한 한국전쟁을 연구한 저자의 이전 저서(『전쟁과 사회』)에서도 드러나는 전문가다운 식견으로, 이라크전쟁은 부시의 돌출행동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뿌리내린 ‘미국의 엔진’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혀낸다.

 

이 책은 미국을 다루되 한국현대사가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이라크에서의 민간인 학살과 고문의 모습은 한국전쟁 당시의 참상과 오버랩되고, 제3세계에서의 전쟁범죄와 80년 광주학살로 연결된다. 저자는 한국이야말로 전세계 국가 중에서 제1차 미국화(냉전)와 제2차 미국화(지구화)가 공존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진단한다. 결국 오늘의 한국의 정치경제,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원조’인 미국을 잘 알아야 한다는 데 저자의 뜻이 있다. 현대 역사와 사회에 대해 깊이와 넓이를 두루 갖추었음에도 전문적 용어와 추상적 개념은 피하고 시사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씌어져 학생과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타락한 전쟁비즈니스

 

역사적으로 미국은 자국의 패권을 확보하고 국내경제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시장을 찾아 해외로 나섰고, 그것을 저지하는 상대를 적으로 몰아 전쟁을 벌였으며, 이긴 다음에는 군사적 점령을 기초로 정치·경제적 이권을 챙겼다. 이러한 세력팽창과 새로운 해외시장 개척에는 언제나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정신의 확산을 내세웠다. 결국 미국의 대외진출, 즉 프런티어개척의 실내용은 ‘식민지’ 확보였으며 그 배후에는 산업화의 성숙단계에 들어선 미국 대기업과 금융의 절실한 시장개척 요구가 있었다. 점령은 피점령민을 정신(기독교)적으로 그리고 물질(시장경제)적으로 구원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미화되기 일쑤였다.

 

자본주의 미국을 이끌어가는 체제의 운영원리가 군사·외교에도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미국이 수행한 전쟁과 점령은 일종의 투자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안보와 수익’을 얻는 원칙, 즉 인명손실과 경제적 비용을 줄이고 자원과 시장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역대 미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은 바로 이러한 비용/이익의 관점에서 전쟁을 경영했다. 미국의 대통령, 정치인, 지식인들이 지난 백년 동안 누누이 말해온 미국의 ‘결정적 이해’라는 것도 바로 자국민들이 안전한 상태에서 잘먹고 잘사는 문제이고, 좀더 구체적으로는 미국기업이 돈을 버는 문제였다. 전쟁과 기업이해가 얽히고, 군사영역과 비즈니스가 유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국방부 주변의 권력층과 군인정치인 출신의 로비스트와 거대 군수산업체들이 유착된 군산정복합체 사회로서, 사실상 국가 차원의 중요 정책결정이 모두 이 안에서, 이들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이루어진다. 특히 이번 이라크전쟁은 거의 대부분의 전쟁관련 부대업무를 민간기업이 맡았다. 퇴역한 지휘관들은 전쟁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회사 CEO로 취직하여 전쟁을 부추기고, 구 CIA요원들은 전쟁터에 재취업하여 이라크포로 고문작업을 지휘하는 것이야말로 전쟁비즈니스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적 생활방식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물질적 풍요와 소비주의, 그것이 바로 미국적 가치의 본질이다. 미국인들의 소비수준과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다국적기업은 제3세계 열대우림을 황무지로 만들고 저임금노동자들을 착취해야 하며, 이라크를 비롯한 ‘불량국가’들을 통제하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감시·체포·학살해야 한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복리를 위해 경제적 팽창주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미국식 생활방식 즉 물질적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제3세계 국가의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사람들이 강조하는 미국적 생활방식이라는 것은 바로 누구나 열려 있는 경쟁기회를 활용하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것은 물론, 자유기업주의를 옹호하고 공산주의와 노동조합을 반대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깔뱅주의(Calvinism) 종교관에 기초한 미국에서는 못사는 것이 죄악이다. 노동운동의 정치적 영향력이 미약한 가장 중요한 이유도 바로 노동운동의 기본인 연대정신이 이러한 미국식 가치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폭력과 범죄는 이러한 생활방식의 필연적인 이면이다. 약자들이 막연한 좌절감을 갖는 것말고는 달리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는 사회에서는 사회운동이나 조직적인 저항은 없고, 총기난사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개인적인 폭력과 병리현상이 창궐할 뿐이다.

 

 

시장근본주의의 폐해와 공공성의 실종

 

미국의 불평등 수준은 세계역사상 가장 심각한 상태에 있다. 현재 상위 1%의 집단이 부의 47%를 독점하고 있다. 2003년 한해에만 170만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하여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인구가 12.1%나 된다. 미 농무부의 보고에 의하면 2002년 1천2백만 가족이 돈이 없어서 끼니를 구하지 못할까봐 걱정했으며, 그중 32%가 한두번 이상 배고픔을 겪었다고 한다. 비만과의 전쟁을 벌이는 한편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은 선진 자본주의국가 가운데 복지에 관해서는 최후진국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으로 간주되는 미국에서는 복지, 교육, 의료 등의 영역에서 공공의 책임이라는 개념이 대단히 희미하다. 대규모 감세, 탈규제정책, 연방과 주정부의 심각한 재정적자는 뉴딜정책 이후 미국사회를 지탱해왔던 복지국가의 틀을 하나씩 무너뜨렸다.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그 정도가 가장 심각하다. 클린턴행정부가 초창기에 시도했던 보편적 의료보험 개혁이 실패한 이후 미국 의료부문은 사보험 의존도가 커져 현재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있다. 해고자나 임시직 노동자는 보험을 갖지 못한다. 2003년 현재 미국 전체 인구 중 무보험자가 약 4천3백만명에 달했다. 천정부지로 솟는 약값에 1인당 의료비지출은 세계 최고이지만, 평균수명은 꾸바와 거의 같다. 공공의료 확대 논의만 나오면 곧바로 막강한 의료자본과 보수파들이 좌익적 혹은 비미국적이라고 공격해대는 실정이다. 또한 세계의 엘리뜨들을 양산한다는 미국의 대학도 위기에 놓여 있다. 주 예산 삭감 1순위가 바로 대학지원금이다. 강좌수 축소, 통폐합은 물론 등록금 인상으로 소득이 하층 1/4에 속하는 신입생은 3%에 불과하다. 이는 국민이 누려야 할 공적 자산과 써비스를 공공의 문제로 보지 않고 개인이 능력껏 시장에서 구매해야 할 상품으로 간주해온 미국식 씨스템의 결과이다.

 

부시의 재선 이후 팔루자 공격, 부상 포로 학살사건, 대북한 압박 등 미국은 더욱 보수적이고 공격적인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미국이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이야말로 그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나라이므로 그 어느곳보다 미국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이 책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은 어쩌면 미국보다 더 심한 미국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는 한국사회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전세계에 확산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위기와 그 대안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이라크전쟁으로 본 미국

1. 이라크전쟁의 시작과 교착
싱거운 승리 | 충격과 경외 | 저항과 학살 | 포로수용소의 학대사건

2. 이라크전이라는 진흙탕
점령의 자기모순 | 부시의 정치적 곤경 | 21세기형 식민지, 이라

3. 전쟁이라는 현미경을 통해 본 미국
이라크 석유와 미국 | 아마겟돈, 혹은 21세기형 제국?

제2장 미국에 관한 신화와 현실

1. 전쟁의 세기와 미국
선제공격은 하늘에서 떨어졌나 | 실수와 오판? | ‘작은 전쟁’과 미국의 헤게모니 | ‘테러와의 전쟁’은 허깨비와의 싸움

2. 미국의 위선과 이중성
아랍인들의 분노 | 미국은 경찰인가 | 미국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평화’의 의미 | 자유무역론의 허구

제3장 제국으로서의 미국

1. 전쟁과 시장
미국의 ‘결정적 이해’ | 경제위기 돌파, 시장개척을 위한 전쟁 |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 | 무기판매를 위한 전쟁

2. 미국의 제국경영
영토 야심이 없는 제국, 혹은 세계가 잠재적 영토인 제국 | 나라 만들기와 대리자 육성 | “군홧발을 디뎌야 장사를 하지” | 잠을 깨보니 ‘제국’이 되어 있는 미국?

제4장 제국의 기획자들

1. 미국행정부의 전쟁정치
제왕 대통령 | 사실상 일당독재 국가? | 특수 이익집단에 조종되는 워싱턴 | 팍스 아메리카나는 팍스 이스라엘리카?

2. 미국행정부와 자본주의
군·산·정 복합체 | 족벌 자본주의

제5장 미국 우익의 ‘계급전쟁’

1. 시장근본주의의 폐해
부자들을 위한 돈잔치 | 사회의 황폐화와 공공성의 실종

2. 신매카시즘
극우파의 편집증 | ‘애국심’ 혹은 증오범죄 | ‘전체주의 방식’의 자유? | 관타나모 기지의 ‘적국 전사들’ | 21세기적 감시사회

3. 정치선전과 상업미디어
정치선전 매체로서의 미디어 | 다양성의 이름을 빌린 ‘독재’ | 언론자유 혹은 야만

제6장 제국 시민의 생활방식

1. 선별된 전쟁 기억
남의 땅에서의 전쟁 | 전쟁 기억의 정치 | ‘남의 자식들’을 동원한 전쟁

2. 전쟁과 미국식 생활방식
‘하느님 나라’의 선택된 백성들 | 아메리칸 드림은 지구의 악몽?

3. 전쟁중인 시민사회
폭력과 범죄 | 정치적 무관심 | 미국의 지식인들 | 흑인은 영원한 이방인? | 뿌리깊은 남부문제

제7장 미국의 현재와 미래

1. 미국식 씨스템의 명암
시장과 전장 |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 | 신매카시즘은 신파시즘? | 새로운 노예들의 군상

2. ‘제국’의 위기
지도력의 위기 | 군사·경제적 위기

3. 출구를 찾아서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김동춘

    1959년 출생하여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이후 망원한국사연구실, 한국산업사회학회, 역사문제연구소 등 학술단체에서 활동하였으며, 1994년 ‘참여연대’ 창립과 2000년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창립에 참가하였다. 미국 UCLA대학에서 박사후연수를 마치고,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및 NGO학과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경제와 사회』 편집장과 『역사비평』 편집위원을 역임하였고, 2004년 한겨레신문 선정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으로 추천되었다. 주요 저서로 『1960년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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