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의 시대

책 소개

중요한 국제회의가 열릴 때마다 NGO들이 주도하는 대규모 지구화반대 시위의 물결이 거리를 뒤덮는 현상은 최근 매우 주목할 만한 정치사회적 추세 가운데 하나다. 작년 11월의 씨애틀 세계무역기구회의를 시발로, 올해도 여전히 워싱턴 세계은행/IMF회의(4월), 오끼나와 G8정상회담(7월), 멜번 세계경제포럼 아시아회의(9월), 프라하 IMF/세계은행 합동총회(9월)에서 NGO의 조직된 행동이 표출되었고, 이 달 20일 서울에서 개막되는 제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를 전후해서도 국내외 NGO들이 지구화에 반대하는 워크숍과 대규모 시위를 준비중이다. 이들의 주장은 주지하듯, ‘세계화’ 혹은 ‘지구화’가 지구촌 강대국과 자본세력의 ‘몰인정한’ 경제지배논리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며 따라서 민중적•시민적 힘으로 잘못된 지구화를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이러한 NGO들의 주장과 시위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지구화 논의의 당당한 한 축으로 부상한 NGO세력들 자체이다. 이들이 지금 이렇게 갑작스럽게(?) 우리 눈앞에 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통상 ‘비정부기구’라 번역되는 NGO란 과연 무엇이고,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표방하는가? 이들은 국제정치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으며, 그 내부 동학은 어떠한가? 오랫동안 그런 대로 의지해온 국가나 정당만큼 신뢰해도 되는 세력인가? 이들과 함께 열어갈 이번 세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도저히 헤아릴 길 없다는 NGO의 수처럼 이런 문제들은 답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 NGO가 당장 지금 변모해가고 있는 ‘현실’의 일부여서 실체 파악이 힘들뿐더러,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에게는 NGO이해의 길을 인도해줄 균형잡힌 식견의 전문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NGO의 시대』를 엮은 성공회대 NGO학과의 조효제 교수는 매우 적절한 안내자라 할 수 있다. 조효제 교수는 대표적인 국제NGO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런던본부에서 활동해온 운동가로 국제NGO 내부사정에 밝고 관련 주제로 학위를 받은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NGO전문가이다(ASEM2000한국민간단체포럼의 7인 공동집행위원장 중 한명이기도 하다). 조교수가 변모하는 NGO세계의 동학을 보여줄 최신의 글들을 신중히 가려뽑아 엮은 이 책은 현실 NGO운동의 면면들을 정확히 소개해줄 최선의 개론서라 할 만하다.

 

현실 NGO운동을 ‘논쟁’ ‘흐름’ ‘길찾기’ ‘목소리’의 4부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는 이 책은, 지구화라는 간단치 않은 현실과 NGO세계의 복잡다양한 대응을 아우르면서도 ‘지구적 공치(global governance)’라는 보편적 지향을 무리없이 제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양한 색채의 필자들을 동원하였음에도 별다른 혼란을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NGO운동의 복잡다양한 면모 그대로 파악할 수 있게끔 글들을 배치한 것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1부 ‘논쟁’에서는 NGO운동에 대한 상이한 평가들을 보여줌으로써 NGO운동의 지형과 과제를 동시에 제시하였으며, 2부 ‘흐름’에서는 지구화란 흐름을 타고 지구시민사회란 거대 프로젝트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NGO세계의 역동성을 보여주려 하였다. 1부와 2부가 NGO운동의 현실에 관한 것이라면 3부와 4부는 NGO운동의 지향과 실천에 관한 것이다. 3부 ‘길찾기’는 좀더 민주적이고 혁신적인 운동으로 거듭나려는 NGO운동의 자기모색에 관한 것이며, 4부 ‘목소리’는 현장운동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특히 4부에 실린 [지구화와 사회운동]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내부문서로서 앰네스티에 몸담은 적 있는 조교수에게서만 얻어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각 부마다 수록한 글의 내용과 실천적•이론적 의미를 간명하게 적은 ‘해제’를 달아서 각 글을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왔고, 권두에는 편역자의 논문을 수록하여 중요한 쟁점들을 놓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NGO관련 국제기구와 연구소, 네트워크 등의 싸이트와 학술지를 소개하고 국내 박사논문 목록을 수록한 ‘부록’을 붙여서 참고자료로 삼게 하였다. 이 책에 나타난 NGO세계의 모습들은 다음과 같다.

 

 

 

지금은 NGO시대

 

지구적 NGO운동의 존재를 선언한 씨애틀시위의 경우 주도세력은 미국의 AFL-CIO(미국노동총동맹산업별조합회의, 미국노총)였지만 참여한 NGO들은 급진적 아나키스트단체로부터 전미스낵제과협회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종다양했다. 도대체 지구상에 NGO가 몇개나 되는지, 그들을 어떻게 분류하는 것이 좋을지 학자들 사이에서도 뾰족한 모범답안이 없다는 사실은 NGO세계의 복잡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제결사단체연감 33판에 따르면 1996년 현재 전통적 의미의 국제NGO만 해도 5,472개에 달한다고 하며, 국내NGO와 영세한 단체들까지 합치면 그 수가 몇백만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게다가 NGO운동은 그 수와 영향력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이 모든 길이 NGO로 통하는 ‘NGO의 시대’임을 주장한다.

 

NGO의 중요성이 지구적 차원에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와서이다. 1990년대 동안 초국적인 문제들에 대해 유엔이 조직한 세계정상회담이 여러 차례(예컨대, 리우 환경회의, 이스탄불의 주거회의, 빈 인권회의, 카이로의 인구 및 개발회의, 코펜하겐 사회개발회의, 뻬이징 여성회의 등) 열렸는데, 이때 세계의 NGO들은 정부대표들의 입장과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행동강령을 채택함으로써 초국적 문제들의 해결에 있어 개별 정부나 유엔 같은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영역의 NGO들의 참여가 중요함을 인식시켰다. 물론 NGO운동을 부상시킨 대한 가장 큰 배경막은 국가를 약화시킨 지구화와 지구적 교류를 가능케 한 정보통신혁명이었다. NGO들의 활동은 정부만이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관념을 불식시켰다. 오늘날 여러 국제기구들에 대한 NGO의 참여는 눈부시며, 유엔 및 여러 기구에서 NGO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이 책 47∼66면). “정부대표들은 NGO가 발언하면 경청하고, NGO가 제안하면 열심히 노트를 하며, NGO가 행동에 돌입하면 긴장한다.”(11면)

 

 

 

현장활동NGO, 주창활동NGO, 개발NGO, 인권NGO…

 

NGO는 무엇을 하는가? 조효제 교수는 ‘안하는 것이 없다’가 가장 정확한 답이라고 말한다. “NGO는 국가가 할 수 없는 것을 ‘감시’하고 국가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주창’하며 국가가 모자라는 부분을 ‘혁신’하고 국가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행동할 여력이 없는 부분에 ‘써비스를 제공’한다.” 주로 ‘감시’하고 ‘주창’하는 NGO들은 ‘주창활동NGO’라 불리며, ‘혁신’하고 ‘써비스를 제공’하는 NGO들은 ‘현장활동NGO’라 불린다. NGO의 활동영역 중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인도적인 분야다. 최초의 NGO인 ‘노예폐지협회’가 그렇고 유명한 아동노동 폐지운동도 마찬가지며, 지금도 수많은 NGO들이 전쟁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복지써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제3세계 원조활동에 개입하고 있다. 원조활동에 개입하는 NGO들을 특히 개발NGO라고 한다. 개발과정에의 개입은 NGO활동의 아주 중요한 영역이며 대외원조가 점차 민영화되면서 개발NGO활동은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대체로 개발NGO는 선진국 정부나 국제기구로부터 원조자금을 지원받아서 제3세계의 개발과정에 참여한다. 일부 좌파들은 이들을 ‘제국주의의 이익에 봉사하는 NGO쟁이들’이라 비판하기도 하지만, 조교수는 개발과정을 ‘해방의 과정’으로 인식하려는 주목할 만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며, 개발NGO야말로 우리 NGO운동이 남북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더 큰 국제연대를 시도할 개척분야라고 주장한다(개발NGO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170∼200면 참조).

 

 

 

NGO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NGO(와 시민사회)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1부 ‘논쟁’을 보면 이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NGO가 세계의 양심이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천이라고 환호하는가 하면 NGO가 사익을 공익으로 둔갑시키며(우파의 비판) 시민사회 내의 계급현실을 호도하는 쁘띠부르주아들의 조직이라는(좌파의 비판) 비난도 만만찮다. NGO의 재정적•정치적 독립성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질문이며, ‘선출되지 않은’ NGO가 어떻게 공익의 대변자일 수 있느냐는 비판도 대응하기 쉽지 않다. NGO를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의 일부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111∼24면 참조). 사실 이 책 전체는 이같은 좌우로부터의 비판에 대한 신중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3부에 실린 글들은 그런 면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특히 기디언 베이커의 글(217∼54면)은 대다수 정부, 국제기구들이 수용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적 시민사회론을 비판하며 급진적•자율적•탈국가적 시민사회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안정적으로 제도화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중을 끊임없이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민주적 정당성과 실천, 공공영역의 근거지라는 주장이다.

 

 

 

NGO운동은 지구적 공치를 지향한다

 

NGO운동의 확대를 가져온 것은 무엇보다도 지구화이다. 2부 ‘흐름’에서는 이같은 추세에 대응하여 지구시민사회를 형성하려는 NGO들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씨애틀시위를 직접적인 배경으로 하여 씌어진 제이 마저 AFL-CIO 국제사업위원회 의장의 글은 지구화가 노동운동의 조건을 어떻게 바꾸어놓고 있는가를 아주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마저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그리고 선진국의 노동운동과 개발도상국의 노동운동이 같은 이해관계 선상에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이 견해는 국경을 넘어 움직이는 자본을 따라 노동도 국경을 넘어 이동하면서 더욱 보편적인 규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 주장도 조교수의 지적처럼 선진국 노동운동의 입장을 반영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어지는 지구적 공치위원회의 글은 우리에게 낯선 ‘지구적 공치'(지구정부가 아닌)의 개념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유엔과 NGO 관계의 진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서이다. 세계인민의 권리신장과 지구시민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이 글은 구체적으로 유엔과 가맹국들, 시민사회를 기본축으로 민간부분•미디어•학계•의회 등이 참여하는 지구적 공치체제를 구상한다. 여기서 NGO의 역할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신자유주의 반대투쟁과 NGO

 

NGO의 발전에서 신좌파운동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휴머니즘적인 혹은 마오주의적이거나 뜨로쯔끼주의적인 맑스주의와 아나키즘, 쌩디깔리슴 등이 혼합되어 있지만 신좌파의 키워드는 ‘참여민주주의’라고 조교수는 주장한다. 이러한 신좌파적 흐름이 신사회운동을 낳았고 조직적으로는 NGO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런 신좌파적 정신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오늘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조교수의 생각이다(20∼24면). 이제 지구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 떠오른 NGO들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은 ‘지구촌 운동권’의 재집결이란 세기적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목차

참여의 예술, 변혁의 과학: 지속 가능한 NGO운동의 모색 조효제

1 논쟁: NGO운동이 이룬 것과 못한 것
권력이동 제씨카 매슈즈
NGO와 인권: 정의와 민주주의의 원천 피터 반 토이질
시민사회에 대한 오해 토마스 커러더즈
시민사회의 가짜 새벽 데이비드 리프
한국 시민운동을 비판한다 정종권

2 흐름: 지구시민사회를 향하여
노동운동의 신국제주의 제이 마저
새 천년과 개혁과제 지구적 공치위원회
OECD 회원국의 개발NGO는 어떻게 활동하는가 김혜경

3 길찾기: 새로운 NGO운동을 찾아서
시민운동에서 대안문화운동으로 정수복
시민사회 사상 길들이기 기디언 베이커
시민사회 구하기 마이클 월저
NGO 정당성의 네 가지 판단기준 이언 애턱

4 목소리: 현장 운동의 고민과 모색
한국 지역주민운동의 특성과 교훈 신명호
남아프리카 시민사회와 여성 데이비드 허시만
지구화와 사회운동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부록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조효제

    런던정경대학 사회정책학 박사. 현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저서로 『인권의 문법』(2007)이 있으며, 편ㆍ역서로 『직접행동』(2007) 『세계인권사상사』(2005) 『전지구적 변환』(2002) 『NGO의 시대: 지구시민사회를 향하여』(2000) 『앰네스티 정책편람』(1992) 『인권이란 무엇인가』(1988) 『사형제도의 이론과 실제』(198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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