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의 신기루

책 소개

근대화의 신기루

 

The Mirage of Modernization

 

보리스 까갈리쯔끼 지음/유희석•전신화 옮김

 

 

 

이 책은 소련 해체 이후『생각하는 갈대』를 비롯해『소련 단일체제의 와해』『변화의 변증법』등으로 국내 지식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진보적 지식인 보리스 까갈리쯔끼(Boris Kagarlitsky)의 새 저작이다. 책 제목이 시사하듯 저자는 서구가 제3세계에 강요한 것으로서의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사실상 ‘실패한’ 발전의 길이며, 이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다양다기한 노력과 실험들 역시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의 주변부화로 가는 길에 다름아니었음을 논파하고 있다.

 

쏘비에뜨연방의 해체 이후 동구권의 공산주의 정권들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벌어진 정치적 혼란상은 서구식 자본주의로의 진입경쟁과 소비주의의 창궐로 이어졌다. 사회주의적 인프라가 하루아침에 괴멸되는 가운데 구 공산관료들은 사이비 자본자가로의 희극적인 변신을 꾀하고 시민은 그들대로 서방에 대해 근거없는 환상을 품었던 것이다. 저자는 동구권이 사실상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반(半) 주변부로 몰락했다고 진단한다. 서방 제국주의의 직접적 영향권에 속한 아프리카대륙의 신생독립국들에서는 이러한 과정에 지역적 특수성이 더해졌다. 극단적인 개인숭배와 기계적 근대주의 적용이 상호작용하면서 저자가 명명한바 신고대(neo-archaic) 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기층민중의 자기교육 정도가 너무나 빈약해 사회 상층부의 서구편향성에 대한 통어기제가 거의 전무한 데서 빚어진 기괴하고 퇴행적인 사회부조리 양상은 이루 열거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누차 지적되어온바, 미국 주도의 제3세계 경제재편기구의 충실한 추종자였던 브라질•뻬루•아르헨띠나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파탄 역시 신자유주의로의 방향선회가 결코 행복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증언한다. 꾸바•빠나마•그레나다 등 카리브해 연안국가들에서의 극적인 사회주의적 개혁의 성립과 몰락과정이 반증하는 일국사회주의의 한계, 이란•이라크를 포함한 아랍지역의 극단적인 반서방•반제국주의 노선 역시 냉전체제의 산물임과 동시에 자본주의체제로의 편입을 위한 우회로에 지나지 않았음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이상 희망은 없는가? ‘역사의 종말’ 즉 사회주의이념에 대한 자유주의의 궁극적 승리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의 공언이 실현된 것인가? 독일 철학자 로베르트 쿠르츠(R. Kurz)는 [우리가 정말로 역사의 종말을을 경험한다면 그것은 결단코 해피엔드는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상 이 책에서 저자가 역설하는 것도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파탄적 결과가 아니라, 이러한 몰락의 과정 속에서 아래로부터의 개혁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정치체제의 불안정과 특권관료의 매판성은 역으로 민주화의 가능성을 넓히며 궁극적으로는 좌파의 사회적 기반 역시 확장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8장 [전위를 찾아서]에 언급된 대안세력으로서의 ‘전위’ 개념에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저자가 주창하는 전위는 서구식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개명한 소수집단이나 `철의 규율`에 근거한 레닌주의적 전위가 아니다. 그는 시민과 연계되어 있지 않고 자율적이지 못한 일체의 전위를 거부한다. 그의 `전위` 는 무엇보다 광범위한 민중과 연계한 노동계급을 뜻하며 독자적인 계급정당을 매개로 한 특정계

 

급 중심의 주체를 뜻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일한 계급이나 당으로서의 전위를 상정하지 않음으로써 저자가 강조하는 또 하나는 이런 광범위한 전위의 역량 강화를 위한 권력의 탈중심화이다. 일국 중심의 변혁이 지닌 한계를 돌파하고 복잡미묘한 국제정세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위주의적•중앙집중적 정치구조의 해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구소련 시절 국가지배정(etacracy) 체제에서 고초를 겪고, 연방 해체 이후 특권관료층의 전향과 전횡을 빠짐없이 목격한 저자의 이력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는 비단 기존 구조에 대한 것만이 아니며 노동계급을 주축으로 한 진보세력 전체에 대해 강력히 요청하는 바이다. 그의 `전위`는 탈중심-탈권위와 뗄 수 없이 결합된 것으로서의 전위인 것이다.

 

방대하고 광범위한 자료를 동원해 사실상 지구상의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가들을 대상으로 자본주의적 근대화 이데올로기가 행한 개발의 공과를 분석하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특정시각에만 국한되지 않고 개발이냐 수탈이냐 식의 단선적 사고를 넘어 포괄적인 시계(視界)에서 논의를 전개하는 점은 이 책의 특장으로 꼽을 수 있다. 제3세계에 있어 근대화는 그 자체가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인 동시에 자발적으로 요구한 일면을 가지며, 제3세계 민중에게 일정한 건설적 계몽으로 작용하여 경제의 물적 토대를 제공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3세계에 스며든 근대

 

화 이데올로기를 그 지배계급이 내면화함으로써 발생한 온갖 경제•정치적 파행현상까지를 포함해 심층적으로 근대화를 해부하고 대안세력으로서의 `전위`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저자의 역량에는 감탄마저 나올 정도이다.

 

세계화의 기치 아래 신자유주의의 득세가 시대의 대세인양 하는 현실에서 인류의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가를 숙고하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책머리에

제1장 미로처럼 얽힌 제3세계의 문제들
제2장 국가 독립의 환상
제3장 정치적 근대화의 굴곡
제4장 신고대국가
제5장 혁명의 모델(1)
제6장 혁명의 모델(2)
제7장 동유럽: 제3세계로 가는 또다른 길
제8장 전위를 찾아서
보론: 1989년, 그리고 동국국가의 미래
옮긴이 해설•유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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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저자 소개
  • 보리스 까갈리쯔끼

    1958년생. 대학에서 연극과 사회학을 공부. 브레즈네프 시대에 투옥된 바 있으며, 현재 러시아노동당의 주도적 멤버로 활동중. 저 서로 The Thinking Reed: Intellectuals and the Soviet State from 1917 to the Present(1988, 국역 『생각하는 갈대』), Dialektika nadezhdy(1989), Farewell Perestroika(1990), The Disintegration of the Monolith(1992, 국역 『소련 단일체제의 와해』, 창비신서 122), The Dialectic of Change (1990, 국역 『변화의 […]

  • 유희석

    문학평론가, 전남대 영어교육과 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영어과와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7년 「보들레르와 근대」로 등단했으며, 저서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 『한국문학의 최전선과 세계문학』, 역서 『지식의 불확실성』 『한 여인의 초상』(공역) 등이 있다. 2001년 「이상과 식민지근대」로 제6회 고석규비평문학상을 수상했다.

  • 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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