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즘

책 소개

오랫동안 여성운동은 남성중심의 일반적인 근대화 모델을 긍정하는 가운데, 열등한 여성의 지위를 `회복`시켜 남성과 똑같은 권리와 능력을 갖고 똑같이 대우받는 것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전개되면서 이러한 근대성과 진보모델을 비판하고 남녀간의 타고난 차이를 강조하는 새로운 여성운동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에코페미니즘`은 그 대표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이다. 근대성 내부에 여성착취와 환경파괴를 낳는 하나의 구조가 있다고 보고 여성해방과 자연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에코페미니즘은 근대성 일반과 진보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일뿐더러 오늘의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의 하나이기도 하다.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의 기념비적 저작 『에코페미니즘』은 이러한 에코페미니즘의 면면들을 명쾌히 보여주고 있다.

 

 

 

근대세계에서 여성억압과 자연파괴는 필연적이다

 

지은이들은 오늘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여성과 제3세계와 자연의 식민화 위에서 기능하는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구조로 파악한다. 이 체제의 본성상 여성착취와 환경파괴는 필연적인데, 이 점은 이 체제 안에 깃들인 존재론적•인식론적 가정들을 분석할 때 더욱 뚜렷해진다.

 

현세계는, 모든 체계가 동일한 기본요소를 갖고 있고 낱낱의 부분들은 원자적이며 모든 기본과정은 기계적이라 보는 인식론적 가정에 기초해 있다. 여기서는 자연 역시 일종의 기계로서, 단일요소로 분할될 수 있고 재조합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의지대로 조작할 수 있는 물질덩어리일 뿐이다. 이 물질세계의 반대편에 물질세계를 인식•식별하고 조작할 수 있는 주체로 백인남성의 순수한 `정신`이 상정되는데, 자연은 이 남성적 정신이 정복하고 지배해야 할 `무한한` 대상이고, 이 지배를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의 핵심과제였다. 동질성에 대해 강한 욕구를 갖는 근대적 담론은 백인남성의 정신 이외의 모든 이질적인 것들―여성, 이민족―을 타자로, 자연적인 것으로 분리하며, 현실을 늘 이렇게 구조적으로 이원화한다. 근대성의 담론에서 다름은 곧 차이는 다양성과 풍요로움이 아니라, 불평등과 위계의 근원이다. 이 담론에서 남녀간의 분리는 문명과 자연의 분리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자연과 여성의 이같은 분리와 종속이야말로 근대과학 및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본주의경제의 감춰진 토대이자 여성문제와 환경문제를 낳은 진정한 원인이다.

 

 

 

여성과 자연과 제3세계의 식민화를 통해 기능하는 자본주의경제

 

자본주의 세계체제 또한 산업사회(北)와 제3세계(南)로 양분되어 있다. 도시의 백인남성들의 생활양식은 가장 선진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 제시되는 반면 여성•유색인종•농민들은 뒤처진 존재로, 따라서 발전된 백인남성을 따라잡고 본받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마리아 미스에 따르면, 이 뒤처짐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백인남성을 발전시키느라 착취당한 결과이며, 따라서 백인남성과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대화와 개발은 자연과 여성과 제3세계인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을 따름이다. 지은이들은 오히려 산업국의 풍요로운 생활양식이 지구자원의 유한성을 고려하지 않은 위태로운 것이고 타자들에 대한 식민화 없이는 불가능한 것임을 강조한다. 덜 발달된 타자들이 발전된 산업국을 본받고 따라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북이 생활양식을 바꾸고 성장을 멈추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발전되었다는 북 또한 심층에서는 불안과 공허가 만연하며 환경오염 등으로 삶의 질도 그다지 높지 않다. 산업화된 생활양식을 넘어 진정 `윤택한 생활`에 대한 관념을 새로이 정립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과 여성에 대한 관념을 재고해야 한다.

 

 

 

근대세계가 잃어버린 지혜: `자연은 신성한 어머니`

 

반다나 시바는 개발에 맞서 싸우는 제3세계 사람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그들에게 자연, 특히 땅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그들 존재의 핵심을 마련해주는 `신성한 어머니`이며, 생물적 삶뿐만 아니라 문화적•영적 삶의 재생산을 위한 `자궁`이다. 이들에게 개발과 진보는 풍요로운 삶을 향한 지름길이 아니라, `어머니 대지`와의 생물적•문화적 유대를 끊어놓는 `단절`일 뿐이다. 게다가 동질성을 향한 강한 충동을 갖고 있는 자본주의적 개발은 자연 본연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획일화하며, 결국 자연을 파괴하고 만다(예컨대 녹색혁명).

 

지은이들은 자연의 다양성과 리듬을 해치지 않는 인간 삶의 유형을 제3세계의 자급자족경제와 여성의 노동에서 발견하려 한다. 구성원의 복지와 생존을 생물적 자원에 의존하는 자급적인 생존경제에서 생물다양성은 생산의 수단인 동시에 소비의 대상이며, 생존과 생계의 지속에 있어 다양한 생물적 자원을 보존하고 지속가능한 상태로 사용하는 문제가 관건적이다. 농업과 임업에서의 제3세계 여성의 노동은 근대적 연구도구가 수용하지 못할 만큼 대단히 복합적이며, 생태순환에 통합되어 있다(11장 참조). 지은이들은 이러한 자급적 기반을 보존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 자급적 기반―생명생산이야말로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성장을 뒷받침한 진정한 토대였을뿐더러 이 파괴적 체제의 숱한 난관으로부터 빠져나올 길을 제시하는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지배적인 개발담론에서는 궁핍하게 볼지 몰라도 이런 자급경제들은 우리에게 대안적인 `윤택한 생활`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전공학과 생식기술은 생명에 대한 침해

그러나 다양성의 가치를 모르는 자본주의 세력은 이들 경제와 노동을 `후진적` `자연적`이라 폄하하고, `생명공학`이란 이름 아래 제3세계 여성과 농민들이 수천년간 관리해온 생명의 흐름과 생물다양성을 훔치고 파괴한다. 식물 종자를 유전자 조작해 자기재생성을 없애고 특허와 지적 재산권을 설정하여 농민의 종자소유를 막은 다국적기업들의 행태는 다만 `도적질`일 따름이다.

 

유전공학과 생식기술에 대한 지은이들의 비판은 매우 단호하다. 유전공학과 생식기술은 실상 생명의 가장 내밀한 원천인 종자와 인간신체를 새로운 투자영역으로 삼아 자본축적을 계속하려는 것일 따름이다. 더욱이 이 기술들은 근대성에 깃든 정신-물질, 문명-자연, 남성-여성, 백인-유색인의 이분법을 그대로 담고 있어, 명백히 반여성적이며 생명과정을 파괴하고 제3세계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 마리아 미스는 특히 이 기술들의 본질을 적시하지 못하고 생식기술의 전면적 발전을 옹호하는 서구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이 여성들의 주장이란 생식기술들이 여성의 의지대로 임신을 조절할 수 있게 해주고 남성의 도움 없이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오랫동안 억압당해온 여성의 신체적 자유를 신장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스가 보기에 생식기술들은 신체의 상품화를 통해 인간의 온전성을 깨뜨리는 새로운 착취일 뿐이다(13장).

 

 

 

서구 여성운동 비판

 

미스는 나아가 서구 여성운동이 오랫동안 추구한 `자기결정`이란 개념도 비판한다. 자기결정의 개념은 자본주의적 착취로 고통받는 제3세계 여성을 고려하지 못할뿐더러 정신-물질, 남성-여성의 부르주아적•가부장적 이분법을 극복하지 못한 불완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신체에서 해방되어 자기 신체에 대한 권리를 남성만큼 갖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조각내버린 자연-인간의 공생관계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고, 남녀간에 욕망과 부담이 평등하게 공유되는 관계들을 열어나가는 것이다(14장).

 

 

 

대안사회에 대한 비전: 자급적 관점

 

지은이들은 서구형 개발모델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다양한 민중운동의 생존투쟁에 기대를 건다. 그들은 무제한적 성장을 바라지 않으며, 지구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모색해왔다.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는 이들 민중운동이 펼쳐보여온 대안사회에 대한 비전을 `자급적 관점`이라 이름붙인다. 자급적 관점을 상품•화폐의 증식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간욕구의 직접적인 충족을 위한 경제활동을 추구하는데, 이러한 경제에서 자연은 더이상 착취되지 않고 다만 이용될 뿐이며,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존중된다. 기존의 가부장적 이분법이 극복됨과 함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낡은 원칙도 폐기되는데, 이에 따라 자동적으로 여성 등 다른 인간에 대한 남성의 지배도 점차 사라지며, 오랜 성별분업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간의 구분도 대체로 폐기된다. 자급적 관점은 또한 모든 생명체의 상호의존성과 다양성을 핵심가치로 하는 새로운 윤리와 정치를 추구한다(20장).

 

목차

에코페미니즘

차례

한국의 독자들에게 5

1장 서론: 우리가 이 책을 함께 쓴 이유 9

1부 비판과 관점
2장 환원주의와 재생: 과학의 위기 37
3장 페미니스트 연구: 과학, 폭력, 책임 53

2부 자급 대 개발
4장 따라잡기식 개발의 신화 77
5장 환경의 빈곤화: 여성과 어린이는 마지막으로 94
6장 누가 자연을 우리의 적으로 만들었는가? 118

3부 뿌리를 찾아서
7장 ‘지구촌’으 실향민 129
8장 어머니 땅의 남성화 141
9장 여성에게 조국이란 없다 150
10장 백인만성의 딜레마: 자기가 파괴한 것에 대한 추구 169

4부 에코페미니즘 대 생명공학을 통한 새로운 투자영역
11장 여성의 토착지식과 생물다양성 보존 207
12장 새로운 생식기술: 성차별적·이종주의적 함축 219
13장 개체에서 조합으로: ‘생식대안’의 슈퍼마켓 246

5부 무역의 자유냐 생존의 자유냐
14장 자기결정: 유토피아의 종말? 271
15장 GATT, 농업, 제3세계 여성 286
16장 칩꼬 여성의 자유 개념 303

6부 자급: 자유 대 해방
17장 소비자해방 311
18장 북으 탈식민화 326
19장 인간인가 인구인가: 생식의 새로운 생태학을 향하여 341

7부 결론
20장 새로운 비전의 필요성: 자급적 관점 365

옮긴이의 말 396
찾아보기 398

수상정보
저자 소개
  • 마리아 미스

    에코페미니즘과 자본주의 가부장제 이론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활동가로 독일 쾰른응용과학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60년대 말부터 페미니즘 운동에 활발히 참여했으며 네덜란드 헤이그의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여성과 개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페미니즘과 제3세계 이슈, 환경문제 등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오랜 기간 인도에서 활동했으며 페미니즘, 환경과 세계 개발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여러 책과 논문을 썼다. 지은 책으로는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등이 있다.

  • 반다나 시바

    환경, 여성인권, 식량주권 문제를 다루는 인도의 세계적인 사상가이자 활동가이다. 핵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서구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환경운동에 투신했다. 인도에서 다국적기업의 삼림파괴에 반대하는 칩꼬운동을 조직했으며, 제3세계의 생물다양성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종자 주권을 지키기 위한 나브다냐운동을 실천했다. 1993년에 ‘대안 노벨상’으로 불리는 올바른 삶상Right Livelihood Award을, 2008년에 시드니 평화상Sydney Peace Prize을 수상했으며 현재 과학·기술·생태학연구재단의 책임자로 있다. 『녹색혁명의 폭력』『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물전쟁』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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