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책 소개

전후 일본 지식인의 자기비판이라고 저자 스스로 말하는’사죄와 망언 사이에서'(원제 敗戰後論)가 전개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전후 일본사회의 존재방식에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악의의 전쟁’으로 2천만명에 달하는 아시아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국민들도 3백만명이나 죽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주체적인 책임을 질 존재 자체가 전후 일본 사회에는 없다는 것이다.

 

메이지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이것을 하나의 자아가 가지고 있는 분열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인의 상대적인 관계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 속에 들어 있는 두 가지 자아가 일으키는 분열현상이라고 말한다.따라서 저자는 전후 50년이 넘도록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에 대한 사죄와 곧 이어지는 망언은 한쌍의 구조를 이룬다고 파악한다.

 

“일본의 전후가 길러온 혁신파류의 과거를 부정하는 자기갱신의 사죄론은 과거의 악을 받아들인 다음의 사죄논리가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듯 한 사죄가 나오면 그에 대한 반동으로 망언이 나오게 되는 한쌍의 구조를 이룬다.” 혁신파와 보수파의 대립처럼 보이는 일본의 존재방식도 사실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로 분열된 이중인격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자의 문제의식에서 느껴지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은’주체가 되지 않는 방식’이란 것이 과연 주권국가에서 가능한 것인가란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재방식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피해자인 타자 또한 상정하지 않는, 따라서 사과해야할 대상도 사과할 주체도 없는’주체부정의 방식’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일본은 마치 전후 패전이라는 부분을 빼먹어버린 것처럼 주체가 되는 것 을 피함으로써 스스로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입장은’그래. 나는 이중인격자야’라는 자기 인정에서 몇 발짝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의 논지는’왜 일본은 사과할 마음을 갖지 못하는가’란 문제에 대한 해명으로 시종할 뿐,’그래서 일본은 어떻게 사과할 수 있다는 것인가’란 문제에는 본격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는 한국의 백낙청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이제 대안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내놓는’일본이 근본적인 마음으로 사과할 수 있는 대안’은“먼저 자국의 사망자(일본의 전쟁사망자들)에 대한 추모의 대응법을 마련할 수 있다면 전후 일본의 분열상은 극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먼저 자국 사망자들에 대한 대응법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그대로 자신들을 타국의 죽은 자들에 대한 사죄의 자리로 이끌어갈 것이다”란 것이다.

 

저자의 대안적 사유는 스스로의 조건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반영한 나름 대로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내놓는’일본이 부정해야할 과거를 감싸안은 후에 행해지는 자기갱신으로서의 대안’은 다른 무엇보다 스스로 진단한 이중인격자로서의 일본의 상황에 대한 자가치유의 진단으로 설득력을 갖는다. 또 저자가 내놓는’일본의 주체회복 방식’은 책 속에서 저자 스스로 고백하듯 15년 넘게 일본을 휘몰아간 포스터모던적 사유방식의 하나로 비쳐진다.

 

그러나 이 또한 일본은’패전한 나라로서의 스스로의 주체를 부정한, 책임져야 할 타자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책임도 피할 수 있고, 스스로의 과거도 없었던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기묘한 대응방식을 전국가적으로 안착시킨 나라’라고 자기존재방식을’적극적으로 해명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해방식으로서의 대안이라 할 그의 제안은 군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우선 자국민을 달래고 봐야하지 않느냐’란 것이다. 또 이 부분이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도래를 부추긴다고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받는 부분이다.

 

물론 이 책은’왜 일본은 전쟁에서 피해를 본 아시아 민중에 대해 근본적인 사죄를 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해명으로서 일본진단이라는 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또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서’선 내부용 달래기, 후 외부용 사죄’라는 나름대로의 현실적 방안을 내놓고자 하는 노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또한 만약’일본이 사죄해야 된다’는 당위를 놓고 보면 이미 정신대 피해여성들이 연로한 상태이며, 시간 또한 50년이 넘은 지금, 문제를 일본 내부로 국한시키는 단편적인 해결방식이라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또한 일본 내부용으로서 효과를 가질 뿐, 아시아 민중들에게 어떤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裵文成기자)

 

 

 

[조선일보 98/11/05]

 

 

 

[신간브리핑] 일본 변덕 도대체 왜 그런가?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카또오 노리히로 지음

 

서은혜 옮김

 

창작과비평사•1만5천원.

 

 

 

제2차 세계대전 종전후 일본의 한국에 대한 태도는 ‘사죄’와 ‘망언’으로 요약된다. 식민지 지배로 끼친 고통에 대해 일왕이나 수상이 거듭 사죄를 하지만 그보다 훨씬 잦은 각료나 중진 정치인의 망언이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 반복됐던 것이다.

 

외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일이 왜 일본에서는 거듭 일어나는 것일까? 일본의 대표적 문예평론가인 저자는 그 원인을 일본의 혁신파와 보수파가 각각 사태의 한 측면만을 주장하면서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처럼 공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구시민적 입장에서 피침략자의 주장에 동의하고 일본을 비판하는 혁신파는 일본 내부에서 국민 다수의 정서를 사로잡지 못한다. 반면 3백만 일본인 전쟁사망자에 대한 애도 요구에 바탕한 보수파의 논리는 다른 나라에 통용될 보편성과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저자는 보수파의 주장을 소화한 사죄의 논리를 세우는 것만이 이런 교착상태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침략전쟁의 주체로서 분명하게 과거 사죄를 하고, 그 다음 일본인 희생자를 애도하고 외부의 규탄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선민 기자)

 

 

 

[서울신문 11월 9일자]

 

 

 

일본의 자기기만 어디서 나오나

 

일 진보지식인 가토 노리히로 평론집 `사죄와 멍언 사이에서`

 

전후 일본의 이중심리구조 분석

 

한 . 중 등 피해 당사국 수렴 여부 관심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은 70년대 폴란드의 유태인 묘지에서 2차대전의 범죄행위에 대해 사과를 했다.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고려된 것이지만 그는 비가 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일본은 얼마전 김대중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식민지 지배의 과거사에 대해 사죄를 했다. 그러나 앞으로 일본에서 이를 뒤집는 발언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상이 2차대전의 범죄행위에 대해 사과를 하고 각료가 식민지배는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며 이를 부인하고 사임하는 ‘비틀림’의 나라 일본, 이러한 자기기만과 모순, 이중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전후 일본의 이중심리구조를 분석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가토 노리히로의 평론집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서은혜 옮김)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이 책의 중심내용이 된 그의 ‘패전후론(敗戰後論)’은 독5특한 관점으로 인해 일본 내부에서 격론을 불러일으켰던 평론.

 

가토는 사죄를 하고 이를 부정하는 실언이 계속되는 것은 역사를 이어받을 주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후 일본은 패전을 둘러싸고 전쟁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전쟁 및 무력사용을 포기한 평화헌법을 수호하는 진보론자와 대동아 공영권의 정당성둁르 인정하고 개헌을 요구하는 보수론자로 양분된다. 전자와 후자는 별개가 아니라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처럼 한쌍이다.

 

부정한 과거로부터의 새 출발은 단절이 아니라 부정한 과거를 끌어나고 시작돼야 한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과거를 감싸아는遁 대신 과거를 잘라버리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낟. 패전을 종전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지킬박사의 사과는 튼실하지 못하다. 반쪽(진보-호헌)이 머리를 숙여도 또다른 반쪽(보수-개헌)이 이를 부정하는 절반의 사과가 된다.

 

이러한 인격분열을 역사의 문제로 치환시키면 세계사, 일본사 어느쪽에도 의심을 품지 않고 한쪽만을 신뢰하고 따르는 존재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일본이 해야 할 일은 서계사와 일본사 양쪽 모두와 자신을 관련짓고 그 양자와의 관계 속에서 양쪽을 한줄에 꿰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사 속에 자리잡으며 또한 자국사 속에도 자리매김될 만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 세계사와 자국사의 틈새를 살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역사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중구조에 대한 저자의 이러한 시각이 한국, 중국 등 피해당사국에게도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일본인의 심리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사실에 대한 설명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任泰淳 기자 ]

목차

차례

한국어판 서문

패전후론

1. 전후의 기원

극동의 패전국에서 / 걸프전쟁 관련문헌 / 원점의 오염

2. 비틀림과 은폐

초기의 삽화 /『세까이』의 궁정혁명 / `전후문학` 대 `무뢰파`

3. 분열의 여러 양상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 죽은 자의 두 가지 모습

4. 오욕 — 오오오까 쇼오헤이를 다시 생각한다

1961년의 전환 / 더럽고 꾀죄죄한 히노마루 / 1971년의 선택

전후후론

들어가는 말

1. 다자이 오사무와 전후

정치와 문학 / 예술적 저항에 대한 저항 / 사까구찌 . 이시까와 대 다자이 / 「박명」

2. 문학이란 무엇인가

사상으로서의 문학 / 틀릴 수 있음의 의미의 근원 / 맹목과 전원 / `내재`와 `초월`

3. 전후 이후

`논 모럴`의 감촉 / 다자이 대 J. D. 샐린저 / 의식과 신체적인 것 / 올바른 것과 틀릴 수 있는 것 /

불가의성과 가오성

말투의 문제

1. 한나 아렌트

2. 소묘—-전후의 왜곡

3.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4. 공동성과 공공성—-숄렘과 아렌트의 논쟁

5. `말투`란 무엇인가

6. 사적 영역

7. 공동성을 깨는 것

후기

해설 이순애

저자 연보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카또오 노리히로

    1948년 야마가따(山形)현에서 태어남. 1966년 토오꾜오(東京)대학 문과(3류)에 입학. 1967년 베트남 전쟁관련 정부 요인의 도미를 저지하려는 제1차 하네다(羽田)투쟁에서 학생 사망, 11월 12일의 제2차 하네다 투쟁에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함. 1968년 불어불문과에 진학. 7월부터 학교는 무기한 수업거부에 들어가 이후 3년 반 동안 젠꾜오또오(全共鬪;全學共鬪會議의 약칭. 1968∼69년 사이의 전국적 대학 투쟁의 주체가 되었던 학생운동조직)에 참가하여 대학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1972년 […]

  • 서은혜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토오꾜오 도립대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수학했다. 전주대 인문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훌라 훌라』『외톨이들』 『달리기의 맛』 『이 몸은 고양이야』 『성소녀』 『라쇼몬』 『게 가공선』 『개인적인 체험』, 오오에 켄자부로오 3부작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과 『회복하는 인간』 『이상한 소리』, 일본 근대동화 선집 『도토리와 산고양이』 『울어 버린 빨간 도깨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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