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허울뿐인 풍요

책 소개

일본, 허울뿐인 풍요

 

개번 매코맥 지음/한경구•이숙종•최은봉•권숙인 옮김

 

392면, 9,800원

 

 

 

 

 

우리 사회에서 일본은 언제나 선망과 질시, 찬사와 비난이 교차하는 뜨거운 쟁점이지만, 일본 컴플렉스를 위안하거나 자극하는 매우 빈약한 일본 담론만이 양산되어왔다. 그러면서도 온갖 세세한 부분까지도 맹목적으로 모방하며 `일본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는 게 우리의 모순된 실상이었다. 매코맥의 이 책은 이같은 모순과 딜레마를 풀어주는 통렬한 일본 비판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아시아 유일의 선진국이자 엄청난 경제강국인 일본은 `경제성장`이라는 최고의 목표를 위해 사람은 물론 그들의 일상생활과 자연환경, 그리고 아시아 주변지역까지 모조리 끊임없이 동원하고 착취해내는 `비정상적`인 체제로 그려진다. 그 결과 `풍요`는 얻었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형편없는 복지수준에서 불안과 공허감에 젖어 있으며, 부패의 고리가 사회 전체를 뒤덮게 되었고, 자연환경과 인간의 일상은 무지막지하게 파괴되는 등 각종 문제와 위기에 봉착하였다고 본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일본에서 가장 압축적인 형태로 나타나긴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이므로, 이 책의 일본 비판은 산업문명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될 수 있고, 지은이도 이 점을 분명히한다. 일본을 비판할 때 통상 일본의 특수성에 집착하는 여느 비판가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은이가 일본 비판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바는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비전`이다. 그는 일본이 전념해온 “성장이라는 프로젝트 그 자체를 재고해야 하며 또한 일본뿐 아니라 지역적•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행복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이 야기하는 실제적인 인간적•사회적•환경적 비용을 산정하는 새로운 분석의 틀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책은 그같은 비용을 산정하는 상세한 연구조사라 할 수 있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바람직한 미래상은 성장률 0의 `제로성장` 사회이다.

 

이 책은 성장에 종속된 일본사회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1부 `정치경제`와 최근 대두되는 신아시아주의와 평화헌법의 문제를 다룬 2부 `아이덴티티` 식민지지배와 대동아전쟁의 유산에 관한 3부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밑에 있는 `토건국가` `레저국가` `농업국가` `지역국가` `평화국가` 등과 같은 특이한 장제목들은 그 자체로 현대 일본의 특징을 잘 잡아내고 문제를 제시하는 핵심 개념들이다. 이 책의 어느 부분이나 날카로운 통찰력과 명쾌한 정리가 돋보이며, 일본사회를 속속들이 보여주는 상세하고 유익한 정보와 흥미진진한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일본사회의 구석구석을 훑어가는 거침없고 매끄러운 문장들을 읽다 보면 지은이가 일본 사정에 얼마나 정통한가를 알 수 있다. 1부 정치경제의 3개 장은 전후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일본사회를 어떻게 변모시켰고 어떤 상처와 훼손을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현대 일본의 정치경제학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오랫동안 일본 고도성장의 중추를 담당해온 건설•토목업계와 관료, 정치가의 유착관계를 설명한 1장의 `토건국가`는 그 자체로 한국의 이야기이다. 정부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소수 거대 건설업체에 발주하고 업체는 그 대가로 일정액을 상납한다. 여기서 건설이란 행위는 권력의 재생산과 이윤의 분배과정에 부수하여 일어나는 일일 따름이지만, 그로 인해 국가는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되고 정치는 변질되며 온전한 자연상태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국토가 파헤쳐지고 훼손되고 이 모든 부담은 일반 민중과 후세대에게 남는다. 지은이는 이 `토건국가`가 냉전시대 미국의 핵심 권력구조를 특징지은 `군산복합체`에 필적할 만한 개념이라 내세우며, 건설과 관련된 각종 프로젝트와 공공사업들을 검토하고 있다. 2장 레저국가는 여기저기 엄청난 규모의 리조트와 골프장을 조성함으로써 과도한 성장주의에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마저 성장주의적이며 환경파괴적으로 이루어지게 만드는 현실을 꼬집는다. 장시간 노동에 지친 일본국민들에게는 휴식공간을, 성장에서 소외된 지방에게는 발전기회를 주기 위한 `리조트화`가 성장을 촉진하고 건설업을 활성화시키고 부패를 심화했을 뿐 정작 원래 목표는 전혀 달성하지 못한 채, 일본자본주의가 당면한 각종 문제들을 가리는 눈속임 구실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3장 농업국가는 쌀시장 개방 등과 같이 농업을 포기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부의 증대는 일본 국내는 물론 아시아 주변지역의 환경까지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하고 있다. 식량의 자유무역주의가 세계의 환경 및 인구 문제, 지구상 농경지의 축소와 수확량 감소, 개발도상국에 대한 수탈과 결부될 때 전지구적인 식량•환경 재앙을 몰고올 수 있다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있게 전개된다.

 

2부 아이덴티티는 아시아인에 대한 일본인 우월의식에 젖은 채 3,40년대와 같은 아시아주의를 주창하는 일본인들의 모순과 자기기만을 살피는 4장과, 평화헌법을 둘러싼 좌우파의 변화된 상황을 검토하는 5장으로 구성돼 있다. 아시아의 일원이면서 서구 문명을 따라잡으려 노력했던 근대 이래 일본의 아이덴티티 혼란과, 경제강국의 지위를 딛고 분출하려는 우익 국수주의 및 그에 대항하는 흐름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평화국가` 일본을 고수함으로써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는 지은이의 평화주의적 신조도 보여준다.

 

3부 기억은 대동아전쟁과 식민지지배에 관한 일본인들의 왜곡된 기억구조―자신을 침략자가 아니라 해방자 혹은 희생자로 인식하는―를 여러 사례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침략적이고 제국주의적 전쟁을 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전쟁범죄를 저지른 국가는 일본만이 아니며, 현재 일본이 당면한 각종 사죄와 보상 문제는 냉전종식 이후 아시아 각국의 시민사회의 성장과 결부되어 있다고 설명하면서, 일본은 평화국가라는 고귀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와 정직하고 성실하게 대면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지은이 매코맥은 호주 출신의 역사가로 62년 이래 일본을 종종 방문하면서 일본에 관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그의 주장은 대체로 일본 내부의 비판적 진영의 목소리와 통하며, 지은이 자신도 이 점을 고백하고 있다. 매코맥은 우자와 히로후미, 미야모또 켄이찌 등 이 진영의 논자들을 이 책 안에서도 곳곳에 등장시켜 기업이나 관료와는 다른 가치를 존중하는 또다른 일본의 모습을 들려준다. 이들이 바라는 바는 `성장률 제로`와 상처받은 환경의 복원과 다수의 자립적인 지역경제의 창출을 자랑하는 새로운 유형의 개발모델의 등장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시간은 줄고, 나아가 노동 자체가 놀이로 변화하며, 억압되고 부정되었던 목소리가 자유로이 표현되고, 인접한 아시아지역과의 다중적인 교류의 길이 열릴 것이다. 지은이는 이것을 다음 2000년대를 위한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은이는 일본 모델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정당화될 수도 없고, 또한 모방되어서도 안된다고 재차 강조한다. 이 책은 사실상 일본이 밟았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려 애쓰는 다른 아시아국가(한국을 비롯한)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씨지라 할 수 있다.

목차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개번 매코맥

    호주국립대학 태평양·아시아사학과 명예교수. 호주 호놀룰루대학을 졸업하고 런던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사회문제를 역사적 지평에서 고찰하는 연구로 정평이 나 있다.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의 책임편집자로 있으며, 『종속국가 일본』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 『일본, 허울뿐인 풍요』 등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관한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하고 있다.

  • 권숙인

    스탠퍼드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 받음. 현재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 논저로 『현대일본사회와 지방의 아이덴티티』(1996) 등 다수와 역서로 『일본, 허울뿐인 풍요』(창작과비평사 1998) 등이 있음.

  • 이숙종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 받음. 현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논저로 편저 『일본의 신정치경제』(1997) 등 다수와 역서로 『일본, 허울뿐인 풍요』(창작과비평사 1998) 등이 있음.

  • 최은봉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받음. 현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현대정치사』 『일본의 NGO 연구』 등이, 역서로 『일본, 허울뿐인 풍요』(창작과비평사 1998) 등이 있음.

  • 한경구

    하버드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 받음. 현재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논저로 『공동체로서의 회사』등 다수와 역서로 『일본, 허울뿐인 풍요』(창작과비평사 1998)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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