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

책 소개

한국정부에 의한 역사교과서 수정 권고가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동아시아 4국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각국의 역사교과서를 비교함으로써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를 모색한 책이 출간되었다.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은 아사히신문(朝日新聞) 기자들이 지난해부터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특집기사 「역사는 살아있다」를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필자들은 동아시아 150년의 중대사건 10가지를 테마로 현지의 학자 및 목격자들을 직접 인터뷰함으로써 현장성과 객관성을 높였으며 각국의 역사교과서 및 문화현상을 심층 취재하여 현재 소통되는 동아시아의 역사 담론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특히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교재를 염원하며 출간된 이 책은 한국에서 진행중인 역사교과서 수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간되었으며, 곧이어 중국과 대만에서도 간행될 예정이다.

 

 

 

일국사의 닫힌 기억을 넘어

 

 

 

동아시아 역사를 큰 틀에서 기술하는 데는 세가지 난관이 존재한다. 첫째는 일본이 식민지화의 책임을 회피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공통의 역사기반이 없다는 점이며 셋째는 그 결과 대립과 갈등의 역사에 머물고 만다는 점이다. 이는 지배와 저항을 강조하는 동아시아 각국이 자국사 중심의 역사 서술을 선택함에 기인한 바 크다. 이 책은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주도해온 지배와 저항의 담론 대신에 교류와 연쇄라는 새로운 관점을 채택한다. 이를 위해 필자들은 한가지 역사 사건을 두고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접근하여 일국사적 관점에 필연적으로 내재되기 마련인 한계를 넘어서려고 시도한다.

 

가령 필자들은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설명하기 위해 아편전쟁의 발원지인 꽝뚱성을 찾아간다. 이곳에는 아편전쟁으로 서구를 쓰라리게 체험하고 그에 대비하기 위해 『해국도지』 100권의 기초를 마련한 린 쩌쉬(林則徐)의 기념관이 있다. 메이지유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일본의 선각자들이 『해국도지』를 탐독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메이지유신은 청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5면). 반대로 중국의 메이지유신이라 불리는 신해혁명은 어떠한가. 신해혁명을 이끈 중국의 지도자 쑨 원(孫文)은 일본에서 혁명집단 ‘중국동맹회’를 발족했고, 일본인 친구 미야자끼 토오뗀(宮崎淊天)의 도움으로 혁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115면). 일국사의 틀을 벗어날 때 비로소 확인되는 이러한 사례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항일민중운동인 5·4운동은 한국에서 벌어진 3·1운동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조선의 3·1운동을 목격한 당시 뻬이징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조선인들을 보라,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내용을 잡지에 실었고, 이것이 5·4운동의 결정적인 발화점이 된 것이다(127면).

 

이처럼 교류와 연쇄의 시각에서 동아시아사를 바라볼 때 대립과 갈등의 관점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많은 사실들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필자들이 발로 뛰며 각국의 역사를 탐문한 덕분에 우리에게 낯설거나 전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일본 패전 후 중국에 잔류해 국공내전에 참전한 일본 군인들이다. 원래 귀국 조치되었어야 할 이들은 전범 처벌을 피하려는 상관의 명령에 따라 어처구니없게도 중국의 내전에 참전하게 된 것이다(218면). 또한 패전 후 중국에 남겨진 일본인 고아들을 중국인 양부모들이 키우다가 일본으로 돌려보낸 사건도 동아시아 민중교류사에 새롭게 부여될 과제라 하겠다(170면). 만주사변 당시 국제연맹 조사단에 전달되었으나 사라져버린 중국 민중들의 편지를 제네바에서 처음 찾아낸 것(148면)이나 중일전쟁 당시 일본에 맞선 국민당정부군의 물자루트인 원장루트를 새롭게 조명한 것(186면) 등 역시 필자들의 취재가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상상한다

 

 

 

이와같은 필자들의 노력은 각국의 역사교과서를 비교하는 부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필자들이 비교해본 동아시아 각국의 교과서는 자국사 중심의 서술에 치우쳐 곳곳에서 미흡한 점을 드러내며 때로는 객관성을 잃는 경우조차 있다. 우리에게 교과서 왜곡의 상징처럼 인식돼온 일본의 우익 교과서가 아닌, 각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교과서조차 이러한 왜곡의 함정에 빠진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가령 일본의 대표적인 중등 역사교과서인 『새로운 사회: 역사』(토오꾜오서적)의 난징학살 대목을 살펴보자. 같은 출판사에서 10년 전에 나온 교과서만 해도 20만명에 이르는 당시 사망자수와 ‘난징대학살’이라는 명칭을 언급했으나 현재 교과서에는 이런 대목이 빠져 있거나 축소돼 있다(195면). 이 교과서의 담당자의 말을 따르면 이러한 가해행위의 기술이 ‘자학적’이라는 국내의 비판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러한 자학사관은 역사의 바른 기술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논리가 되고 있다. 문제는 역사 서술에서의 이러한 관행이 동아시아 4국에 걸쳐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중국 5·4항일운동에 끼친 3·1운동의 영향이라든가 한국과 대만의 민주화 과정 같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다른 나라의 교과서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도 반성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 한국정부가 내놓은 역사교과서 수정 권고는 ‘자학사관을 극복하고 우리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서술하자’는 일본 우익 교과서의 전형적인 논리를 따르고 있다. 이는 내부적으로는 정권에 의한 검인정 교과서 수정이라는 큰 오점을 남김은 물론, 외부적으로도 동아시아 전체 역사교과서 서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한국어판 해설대담」 372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독불 공동역사교과서』의 교훈을 신중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독일-프랑스 양국이 함께 만든 이 교과서는 역사교과서의 목적이 자국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자국역사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동적인 시민으로 키워내는 일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심포지엄」 346면). 필자들은 이 책이 동아시아 공동역사교과서를 향한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아편전쟁과 메이지유신
제2장 청일전쟁과 대만할양
제3장 러일전쟁과 조선의 식민지화
제4장 신해혁명과 민중운동
제5장 만주사변과 ‘만주국’
제6장 중일전쟁
제7장 아시아·태평양전쟁과 국공내전
제8장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제9장 국교정상화
제10장 개혁·개방과 민주화
심포지엄 역사화해를 위하여

맺음말
자문진 소개
한국어판 해설대담
참고문헌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아사히신문 취재반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은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취재반이 지난 2007년 6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월 1회씩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특집기사(「역사는 살아있다: 동아시아의 150년」)와 심포지엄 등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동아시아 4국의 역사적 사건을 현장에서 취재하는 동시에 각 나라의 교과서를 면밀히 비교함으로써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를 향해 나아가는 작은 이정표를 마련한다.

  • 백영서

    1953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이자 국학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계간 『창작과비평』 주간으로 있다. 현대중국학회와 중국근현대사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계간 『香港中國近代史學報』 『台灣社會硏究』 등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중국현대대학문화연구』 『동아시아의 귀환』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공편) 『대만을 보는 눈』(공편)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思想東亞: 韓半島視角的歷史與實踐』, 역서로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공역) […]

  • 김항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및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오꾜오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말하는 입과 먹는 입』, 공저로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 변동』, 역서로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근대초극론』 『예외상태』 『정치신학』 『세계를 아는 힘』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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