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눈뜨기

책 소개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

 

아리프 딜릭 지음/설준규•정남영 옮김

 

신국판, 180면, 7,500원

 

 

 

그 `해체적 재구성`이든 `전화`든, 현존 맑스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대안 이념•운동의 창출이 급박하다는 주장은 몇년 전 `맑스주의의 위기` 담론과 함께 번성하더니 요즘에 찾아보기 어렵다. 맑스주의 위기` 담론은 자연스럽게 각종 `포스트` 담론으로 전화해버렸고,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만개해 그 모순과 취약점들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급진적 대안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잠복중일 따름이다.

 

우리에게 생소한, 아리프 딜릭이라는 터키 출신의 역사학자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라는 짤막한 책(사실상 하나의 긴 에쎄이)을 통해 전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상황과 대결해 새로운 급진적 대안의 지평을 보이고자 한다. 맑스주의, 근대 서사의 목적론과 환원론, 유연생산, 지역주의와 각종 포스트주의 등 관련 쟁점들에 대한 섬세한 성찰과 명쾌한 정리, 발상의 신선함이 돋보이며,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지금 시기에 매우 유익한 저작으로 여겨진다.

 

역시 논의는 맑스주의로부터 출발한다. 딜릭이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논하는 것은 맑스주의의 (메타이론적인) 시간적•공간적 전제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적 공간상의 모든 차이를 철폐함으로써 진정한 세계사를 창조했으며 이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썼다. 공간상의 차이가 없어짐으로써 모든 민족•지역들은 자본주의라는 동일한 시간대에 속하게 되고, 동일한 문명을 공유하게 되며, 동일한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는 이 전제는 사실상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의 논리이며,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서사가, 그 공간성과 시간성이 역사적 유물론의 구조화원리가 되는 사태가 초래된다. 자본주의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의 진정한 대안을 구상하는 능력에 한계를 갖게 되었다고 딜릭은 주장한다.

 

이같은 동질화 전제가 포함하는 시간적•공간적 목적론은 사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난 맑스주의의 태생적 한계라고 할 수 있으며, 현실 사회주의사회의 몰락은 그에 대한 `서글픈 증언`이라고 딜릭은 표현한다. 사회를 무자비하게 착취해 생산의 토대를 확립하고 자본주의의 경제력을 능가하고자 했지만, 자급자족적인 사회주의경제가 전지구적인 자본주의경제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현실 사회주의를 붕괴시키고 맑스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출현이다. 오늘날 진행되는 생산의 초국적화는 전지구를 어느 때보다 더 동질화하지만, 또한 전세계에 자본주의 발전의 결절점들을 창출함으로써 자본주의를 탈중심화하였고 지역적 특성을 상품가치로 전환하기 위해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동질화 못지않게 분화 논리도 활용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서기 위해 딜릭은 30년대 마오주의의 실험에 주목한다. 비유럽사회에서 볼 때 맑스주의의 서사는 유럽중심주의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유럽은 역사상 자본주의를 낳은 `자궁`이었으며, 비유럽민족은 유럽이 낳은 자본주의에 편입됨으로써 보편적 세계사의 일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유럽사회에서 진행된 혁명운동이나 역사기술은 역사유물론에 적지 않은 긴장을 유발하게 된다. 결국 중국에서도 보편법칙이 작용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유럽중심적 시간성의 헤게모니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30년대 중국 맑스주의 및 마오주의는 유격전의 경험을 이론화해 이론적 공간을 분화시키고 모순개념을 중심으로 끌어올림으로써 “구체적인 것들과 대면”하였다고 딜릭은 강조한다.

 

딜릭이 오늘날 전지구적 자본주의 경영자의 언술에서 마오주의의 언어를 발견하는 대목(4장)은 매우 흥미롭다. 그들은 초국적기업의 전지구적 목적을 잊지 않으면서 다양한 지역들에 스스로 동화되고자 하며, 사회문화적 복합성을 한껏 살려서 파악하고자 한다. 근대서사의 목적론을 모두 부정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급진론에 비할 때 자본의 이런 유연한 방식은 더욱 위력적이다. 오늘날의 급진적 비판이념들은 겨우 비판대상인 자본의 `분화`를 패러디할 따름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목적론을 갖고 재구축할 희망을 가지고 있는 자본측과 달리 자신을 이끌 전망도 없으며 어떤 조직활동을 할 의향도 없다고 딜릭은 비판하고 있다. 특히 딜릭은 요즘 유행하는 탈식민주의 담론의 경우엔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일 뿐이라고 격렬히 비판하고 있다(5장).

 

이러한 포스트주의들을 비판하면서 딜릭은 계급개념과 총체성개념을 비환원론적인 방식으로 되살릴 것을 주장한다. 성이나 종족과 같은 범주들은 사회적 구성물이라 해도 사회적 (생물학적) 지시대상을 갖고 있는 반면 계급은 체제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추상물로서만 존재할 따름이다. 그래서 계급의식은 더 구체적인 사회관계에 쉽게 압도당하지만, 성 등의 범주는 그 구체성으로 인해 손쉬운 동일시가 가능해져 이데올로기 조작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추상성을 띤 까닭에 계급범주는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적시하는 데 있어 다른 범주보다 더 큰 분석적 효용성을 지니며 이들 범주를 관통하고, 자본주의 권력의 추상적 작용에 맞설 수 있게 한다. 총체성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차이`도 더 큰 총체성을 전제해야 가능하며, 총체성의 거부는 세계를 도해하는 능력을 위축시킬 따름이다. 딜릭이 결국 택하는 개념은 중층결정이 된다.

 

전지구를 동질화하는 동시에 지역적 특성을 상품가치로 활용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딜릭이 내놓는 방안은 비판적 지역주의에 근거한 전지구적 연계로 압축된다. 비판적 지역주의란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장악된 현재를 지역의 토착적 과거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대면하되 근대성이 제공하는 과거에 대한 비판적 평가도 동시에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딜릭의 이러한 입장은 최근 진행되는 `동아시아 논의`에도 귀중한 함축을 담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종합국면`적 상황에서 지역적인 문화는 다른 문화와 일상적으로 대면함으로써 그 물신성이 벗겨져 일상적인 실천 속에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문화의 지속적인 구축•재구축이 부단히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동화의 수단으로 지역을 착취하는 것에 대항해 진정으로 지역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과부화`를 줘서 바로 그 자본주의를 분화 상태로 몰고갈 수도 있다.

 

딜릭의 이 책은 최근 변혁이론이 부닥친 각종 문제들에 대해 통일성있는 대안을 제출하기보다는 대안을 자유로이 `상상`할 수 있도록 씌어져 있다. 특정한 이론적 정식화를 찾아보긴 어렵지만, 각 장 앞에 붙은 머리글들과 본문 중의 다양한 교차참조를 통해 지은이 생각의 윤곽과 그 실천적 형태를 볼 수 있다.

목차

[차례]

서문
에쎄이를 시작하며

1. 맑스주의는 어디로?
2. 발전의 맑스주의적 서사와 중국적 맑스주의
3. 역사 속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4. 유연생산 시대의 맑스주의
5. 경계영역의 급진주의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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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저자 소개
  • 아리프 딜릭

    터키 출신의 중국사학자. 이스탄불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한 뒤 뉴욕 로체스터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듀크대 역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오리건대 역사학과와 인류학과 겸임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또한 ‘비판적 이론과 초민족학 연구소’ 소장도 겸하며 왕성한 지적 활동을 벌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The Postcolonial Aura: Third World Criticism in the Age of Global Capitalism, Marxism in the Chinese Revolution이 있으며, […]

  • 설준규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한신대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지구화시대의 영문학』(공편) 등이, 역서로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햄릿』 『어둠 속의 희망』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공역) 등이 있다.

  • 정남영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디킨즈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원대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리얼리즘과 그 너머』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공저) 등이, 역서로 『마그나카르타 선언』 『공통체』(공역) 『다중』(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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