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커스의 밤

책 소개

▶제임트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 수상작

․ 모든 기준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가디언』

․ 앤젤러 카터는 신선하지만 외설적이고, 그래서 어딘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여주인공 페버스를 창조해냈다. ―『더 타임즈』

․ 눈부신 매력이 가득하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언어에 기반을 둔 매력이다. 넋을 잃게 만드는 작품이다. ―『리터러리 리뷰』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글쓰기로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앤젤러 카터의 대표작이자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을 수상한 『써커스의 밤』(Nights at the Circus)이 번역 출간되었다. 날개 달린 공중곡예사 여인의 존재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밝히려고 써커스단에 합류한 미국 남성 신문기자의 이야기를 담은 카니발적인 환상소설로, 비판적 사실주의와 마술적 리얼리즘을 적절하게 융합하는 솜씨가 탁월한 앤젤러 카터의 소설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날개 달린 기형을 가진 여주인공 ‘페버스’가 매음굴, 괴물 박물관, 써커스단을 두루 거치는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에서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삶을 다룬 리얼리즘의 성격을, 기자라는 직업으로 지성인의 표상인 양 굴었으나 페버스를 만나 써커스단을 따라다니면서 서서히 진정한 자아를 찾는 ‘잭 월써’의 변모를 다룬 성장소설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날개 달린 공중곡예사 페버스와 신문기자 월써의 사랑이야기

 

 

『써커스의 밤』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마다 화자를 달리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1부 「런던」에서는 미국인 신문기자 잭 월써가 화자로 등장하여 유럽 전역에 화제를 몰고온 공중곡예사 페버스의 정체를 파헤친다. 런던 동부의 매음굴 앞에 버려진 페버스는 양엄마 리지와 여섯 창녀들 손에 키워지고 사춘기 무렵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날개로 나는 연습을 한다. 처녀 창녀로 이름을 날리던 페버스는 마 넬슨의 매음굴이 문을 닫자 생계 때문에 제 발로 찾아간 괴물 박물관에서 전시물이 되는 신세로 전락한다. 잠만 자는 공주, 난쟁이 여자, 자웅동체의 기형인 등 인간세에서 보기 힘든 기형적인 괴물들을 모아 박물관을 만든 마담 슈렉의 노동력 착취와 임금 체불 등에 항의하며 탈출했던 페버스는 자신을 이용해 영생을 얻고자 꿈꾸는 로젠크로이츠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가족들에게 돌아온 페버스 앞에 커니 대령이 나타나 써커스단에 함께할 것을 권하고 공중곡예사로서 본격적인 쇼에 나서게 된다. 여기까지 페버스의 인생 역정을 추적하던 월써는 설명할 수 없는 페버스의 마력에 빠지고,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미궁 속으로 빨려들어가자 그녀의 정체를 좀더 파헤치고자 스스로 써커스단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제2부 『쌍뜨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로 건너간 커니 대령의 써커스단에 동행한 월써의 시선으로 진행되다가 끝부분에는 다시 페버스의 시선으로 바뀌는 전개이다. 써커스단의 광대가 된 월써는 시간이 지날수록 취재를 위해 잠입한 기자라는 신분을 잊고 호랑이에게 팔을 다치면서 글을 쓸 수 없게 될뿐더러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에 빠져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커니 대령의 써커스단은 사고로 중요한 단원들을 잃고 씨베리아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한편 장난감 수집광인 대공의 초대를 받은 페버스는 로젠크로이츠보다 극악한 대공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다시 기차로 돌아온다.

 

제3부『씨베리아』에서는 써커스단이 탄 열차가 전복사고를 당하면서 뿔뿔이 흩어진 단원들, 헤어지게 된 페버스와 월써의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진행된다. 열차 사고로 페버스는 날개가 부러진 채 씨베리아 한복판을 헤매고, 기억을 잃은 페버스는 토착부족의 손에 목숨을 부지하고 그곳 무당의 도제가 된다. 갖은 고생 끝에 페버스와 월써는 재회하고 20세기를 알리는 신새벽에 두 사람은 신인류를 꿈꾸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사랑의 결합을 하게 된다. 3부는 현실보다 비현실적인 사건사고들이 여러 인물들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 섞여 있어 다성적인 이야기가 복잡하게 전개된다.

 

 

 

 

 

입체적인 인물군상의 변화와 신세기의 사랑

 

 

 

페미니즘적 시각을 담지한 포스트모던한 글쓰기로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앤젤러 카터는 『써커스의 밤』에서 페버스의 인생역정, 월써의 자아 찾기 외에도 다양한 인물군상들이 입체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다룬 각축상을 선보인다. 우선 자신의 기형적인 모습과 굴곡진 삶 탓에 세상에 대해 한껏 냉소적이기만 했던 페버스는 월써를 만나 사랑에 눈을 뜨고 한쪽 날개가 부러진 채 “나는 사실인가? 아니면 허구인가? 나는 내가 아는 나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기에 이른다. 날개 달린 기형을 무기로 스스로를 “금빛 새장 속의 한마리 새”로만 인식하고 가두던 페버스의 변화는 출산을 앞둔 여자를 제물로 바치는 씨베리아 한 부족의 희생제의를 목격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그 사람은 이제 우리가 말하려는 그 모든 이야기를 쓰는 대필가라고 생각하세요. 그러지 않았다면 이름도 없이 잊히고,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역사에서 삭제된 그런 여자들의 역사를 말이에요. 그 사람이 미약하나마 열심히 수레바퀴를 밀어서, 내일 시작될 새로운 시대로 세계가 한걸음 더 나가도록 도와줄 테니까요.

 

일단 구세계가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 아아, 그때는 새로운 동이 트겠죠! 모든 여자들은 나처럼 날개를 가지게 되겠죠. 내가 안고 가는 이 젊은 여자는 소름끼치는 의식의 굴레에 손발이 묶인 채 발견되었지만, 이제 더이상은 그런 고통을 겪지 않겠죠. 여자는 자신의 마음에서 벼려진 족쇄를 끊고 일어나 날아오르게 될 거예요. 인형의 집은 모든 문이 열릴 것이고 창녀촌은 그 안에 가뒀던 사람들을 쏟아낼 것이고 온 세상, 모든 곳의 금빛 그리고 다른 새장들도 그 안에 가두어둔 새를 내보내 새들이 이 새롭게 변화된 세상에서 새벽의 합창을 함께 부르게 될 거예요.” (…) “그 찬란한 날, 나도 더이상 특이한 존재가 아니고 세상 모든 여자가 더이상 상상의 허구가 아니라 평범한 사실이 되면, 그땐 그 사람이 자기 수첩을 내던지고 나란 존재와 내 예언적 역할에 대한 증인이 되어줄 거예요.”

 

 

살면서 자신의 전부라고 믿었던 날개가 부러진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페버스는 “페버스이기도 하고, 페버스가 아니기도 한” 존재로 분열되어 혼란을 겪고 다시금 인간으로서, 여자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새롭게 태어난다.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의 세계에 갇혀 있던 미국 출신 신문기자로, “역사상 최고의 사기꾼”이라 믿는 페버스의 정체를 파헤치려던 잭 월써의 급격한 변모 역시 의미심장한 메씨지를 담고 있다. “내가 그 사람을 알에서 깨어나게 할 거고, 새로운 남자를 만들어낼 거야. 그를 새 남자로 만들어서, 사실상, 신여성에 걸맞은 신남성으로 만들어버리겠어요. 그리고 우린 서로 손을 잡고 신세기를 향해 걸어갈 거예요”라는 페버스의 결의는, 열차 사고로 기억을 잃은 채 씨베리아 한 부족의 주술사의 도제로 살고 있던 자신 앞에 나타난 페버스 앞에서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새로이 구성되고 재조합하는 자아를 깨달은 월써의 고백으로 완성된다.

 

 

“잭, 언제나 모험을 좋아하던 남자는 염색한 금발 여자 때문에 써커스단과 함께 도망쳤고, 금발 여인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 여인이 하라는 대로 했다. 자신을 마모시켜 없애고 또 없앴으며 암호랑이와 춤을 추고 공연에서 구운 치킨 역할을 맡았고, 마침내 날 완전히 속인 교활한 늙은 남색가의 지도를 받아 더 고차원적인 형태의 사기술에 스스로 견습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삼인칭으로 일어난 것만 같다. 마치 내 평생 대부분을 내 삶을 바라보기마 했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제 머리에 받은 충격과 성적인 황홀경의 날카로운 떨림이 결합되어 알 수 없는 껍질을 깨고 나온 이 순간, 나는 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밖에 써커스단에서 남편의 학대를 받던 ‘미뇽’은 아비씨아니 공주를 만나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영혼의 교감을 나누며, 남성성을 자랑하며 힘만 믿고 살던 차력사 삼손은 연인 미뇽의 변화에 충격을 받고 오히려 새로이 자아를 찾기에 이른다.

 

 

“평생껏 살면서 저는 힘이 세고 단순했습니다. 그리고 약한 영혼을 강한 몸 뒤에 숨기고 살던 겁쟁이였죠. 나는 여자들을 못살게 굴고 또 그들을 헐뜯었습니다. 근육에 관해서라면 어떤 여자보다 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사실 난 어떤 여자의 사랑도 어깨에 질 수 없을 정도로 약한 남자였지만 말입니다. 언젠가 미뇽이나 공주가 나를 남자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될 거란 헛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언젠가 둘은 날 형제로 소중히 여기겠지요. 그 희망만으로도 마음속 두려움이 사라지니, 나는 호랑이 속에서 사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내가 열심히 봉사할수록 내 영혼도 강해질 테니까요.”

『써커스의 밤』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은 20세기로의 전환과 함께 여성성․남성성, 수동성․능동성 등의 이분법을 와해하는 주체가 된다. 또 써커스단이라는 배경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탈을 쓰고 동물 역할을 하고, 차라리 동물이 사람처럼 행동하는 등 인간과 동물의 구분마저 모호해지거나 파괴된다. 결국 이 작품은 전통적인 관념이나 패러다임을 전복하고 뒤흔드는 혼성적인 목소리의 향연이다. 그리고 그 전복은 ‘사랑’을 매개로 신세기의 새로운 인간형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결합을 완성하는 결말로 귀결된다.
1984년 발표된 『써커스의 밤』은 스코틀랜드의 가장 유서깊은 문학상이자 코맥 맥카시가 2006년 『로드』로 수상하기도 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최근 몇년 새 『매직 토이숍』(창비 2010) 『피로 물든 방』 『현명한 아이들』 등 국내에 활발하게 번역소개되고 있는 앤젤러 카터의 문학세계를 집약해놓은 대표작이다.

 

 

 

『써커스의 밤』은 다양한 인물들의 복잡한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다성악적 카니발 소설이지만, 무엇보다 페버스와 월써의 사랑 이야기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거구의 공중곡예사 페버스와 객관적 진실만을 신봉하는 신문기자 월써의 사랑이 새로운 세기를 빛낼 신세기의 사랑, 신인류의 탄생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결합은 진실/허구, 처녀/창녀, 남성성/여성성, 인간/동물, 이성/감성, 객관성/주관성의 이분법을 폭발적으로 허무는 패러디적 웃음으로 온 세계에 울려퍼진다. 보는 그대로 믿지 마시길! 보이는 것은 믿을 수 없으니 여러분의 찬란한 상상력을 발휘하시길! 어쨌거나 이 작품은 날개 달린 공중곡예사와 무당이 된 기자의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신세기의 사랑 이야기이다. ―「옮긴이의 말」

목차

제1부 런던
제2부 쌍뜨뻬쩨르부르그
제3부 씨베리아
결미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앤젤러 카터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며 마술적 리얼리즘, 초현실주의, 판타지, SF, 고딕,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폭넓게 해석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40년 영국의 남부 해안도시 이스트본에서 태어났으며, 전쟁을 피해 요크셔에 있는 할머니 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기자였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열아홉살 때 신문기자로 일했으며, 스물두살 때 브리스틀 대학 영문학과에 들어가 중세 로망스와 우화에 흥미를 품었다. […]

  • 조현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후마니타스 교수. 저서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이 있고, 역서로 『젠더 트러블』 『안티고네의 주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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