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

책 소개

『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작가 현기영 10년 만의 신작!

 

치밀한 구성과 탁월한 서정적 묘사, 중후한 문체로 제주 4·3항쟁을 비롯해 잊혀져간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조명하면서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작품들을 발표해온 작가 현기영이 『지상에 숟가락 하나』 이후 10년 만에 신작장편 『누란』을 발표했다. 민주적 가치에 대한 믿음과 수많은 개인들의 헌신으로 사회 민주화가 진전되었으나 물신주의, 배금주의에 지배당하게 된 오늘의 세태를 386세대를 주인공으로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역작이다.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모진 고문 끝에 함께 운동하던 친구들과 조직을 배신하게 되고 자신을 고문했던 김일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신적·경제적 노예가 되어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노숙생활을 택하게 되는 주인공 허무성의 행로는 급변하는 세대적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채 저마다의 가치를 앞세워 경쟁하는 모든 이에게 진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던 1980년대에 대학시절과 청춘기를 보낸 386세대 중에는 허무성처럼 과거를 괴로워하며 트라우마를 앓는 이가 있는가 하면 운동 경력을 앞세워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들도 있다. 그에 비해 경제적·정치적 안정기를 누리며 성장한 2천년대의 젊은이들은 소비향락주의와 대중문화에 이끌려 사회·정치에 무비판적이고 무감한 세대들이다. 작가는 두 세대를 대비시킴으로써 시대가 변해도 지켜야 할 가치와 젊음과 청춘의 열정이 지향할 바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본질을 꿰뚫는 질문들을 풍성하게 던져주고자 했다. 2003년부터 구상과 집필을 시작해 드디어 완성한 현기영 장편 『누란』은 오랜만에 만나는 선 굵은 서사와 작가 특유의 중후한 문체의 매력이 읽은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된 시간적 배경은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이다. 때아닌 황사가 두 달 남짓 지속되면서 서울 하늘을 자욱하게 뒤덮은 그해, 마치 고대 중국의 왕국 누란을 삼켜버린 모래바람처럼 전국이 월드컵 열기로 뒤덮였고, 그 이면에 가려진 무비판적 대중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작가 현기영은 『누란』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87년 6월항쟁을 이끄는 전위에 섰던 주인공 허무성은 오랜 수배생활 끝에 검거되어 남산 지하고문실에서 김일강 등의 손에 모진 고문을 당한다. 겁똥을 쌀 지경에 이른 허무성은 끝내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과 운동조직에 대해 자백을 하고, 장학금으로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김일강의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여 일본에서 유학생을 한다. 역사를 전공한 허무성은 귀국 후 김일강의 사촌형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고 김일강은 국회의원이 된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관계를 지속하며 김일강의 정신적 노예가 된 허무성은 자신의 무기력한 현실과 잊히지 않는 고문의 기억으로 인한 공포, 과거의 배신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정신적·육체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허무성이 겪은 고문과 자백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 떠났던 옛 연인 문정선과 재회한다. 방송국 피디인 문정선은 갓난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으면서 전남편과 이혼한 채 역시 상처받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다. 허무성은 문정선에게 함께 살기를 제안하고 동거를 시작하지만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문정선과 애정 없는 결혼생활로 두 사람은 서로 위안이 되지 못한 채 무감한 관계를 지속할 뿐이다. 결국 직장과 가정 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문정선은 인도로 떠난다. 김일강을 만난 허무성은 박정희 정신의 부활과 현대판 파시즘을 꿈꾸는 김일강과 한판 논쟁을 벌이며 그동안 족쇄처럼 묶여 있던 그와의 관계를 끊는 계기를 마련하고, 한때 운동권 동지였다가 자신의 배신으로 검거된 적이 있는 친구 강한일을 만나 지난 시절에 대한 죄의식을 다소간 털어버린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막하여 전국이 온통 응원 열기로 뜨거워진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같은 학교 교수이자 김일강과 사돈지간인 여자친구 송난주의 유혹을 뿌리친 허무성은 그라피티 작업으로 자유와 반항 정신을 표현하는 학생 오용미와 가까이 어울리다가 본의 아니게 학생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교수직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다. 진실된 감정을 고백하는 오용미와 교수직을 모두 버리기로 결심한 허무성은 스스로 노숙생활을 택한다.

 

 

 

한때 사회변혁의 중심세력이었다가 이제 기성세대로 일정한 기득권층을 이루고 있는 386세대에 대한 평가는 소설 밖에서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에 청춘을 보냈으며, 전격적으로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그들은 사회 민주화의 추동력이었던 지난날의 행보에 비추어 기대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특히 화려한 운동경력을 앞세워 정계에 입문한 이들을 필두로 이들 세대는 비난과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

 

『누란』의 주인공 허무성은 고문과 자백으로 운동권 내부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스스로의 과거를 멍에처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1980년대 가장 첨예한 사회적 문제를 온몸으로 겪은 허무성이 10여년 동안이나 자신의 영혼을 노예처럼 속박당한 채 살았다면, 한편으로 허무성에 의해 고발당한 세 친구는 서로 다른 행보를 걷는다. 학교 앞에서 사회과학 서점을 운영하는 이종구, 학원강사를 하는 강한일, 그리고 운동권 경력을 앞세워 정치판에 뛰어들어 국회의원이 된 한석민이 있다.

 

 

“야, 한석민, 만난 김에 한마디 해야겠다. 저번에 텔레비전에 나와서 뭐라고 했어?” // “뭘?” //

“당선소감 말이야.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너 이렇게 말했잖아. 나의 당선은 나 개인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80년대의 동지들, 그들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이 만들어낸 것입니다,라고. 당선된 다른 놈들도 똑같이 말했어. 아아, 제발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80년대가 너네들 사유물이냐? 아하, 우리만 좆돼버렸네. 완전 죽 쒀서 개바라지한 꼴이야. 이 강한일의 피와 땀을 왜 네가 팔아먹냐? 야야, 이젠 80년대 그만 팔아먹어!” // “흥, 네가 정 원한다면 80년대의 피와 땀에서 네 것만 빼줄게.”

 

 

<p align=”justify” />허무성이 고문의 기억으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와 김일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에 시달리며 보낸 시간 동안, 한석민으로 대변되는 또다른 386세대는 자신들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른바 적이었던 정치판에 투항하여 변절의 길을 걸어간 셈이다. 이 두 인물들의 대비를 통해 작가는 과연 진정한 배신은 무엇인가, 누가 더 배신의 과오가 큰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자 했다.(현기영, 동영상 인터뷰 참조 ☞ <a href=”http://asp.mymovieup.com/player/v20/?key=PC00099001@F772433ec46ec439a9971caad164fd5b0&autoPlay=true&skinID=1″ target=”_blank”>동영상 보기</a>)

 

 

 

허무성으로 대변되는 386세대가 어떤 식으로 비판을 받든 그들이 사회개혁과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한편 2천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과연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교수인 허무성이 학생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나누는 대화를 통해 작가는 요즘의 대학사회와 대학생, 그리고 대학문화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교수: 발견은 웬 발견? 발견이 아니라 베끼기일 뿐이지. 참, 옷 벗기기도 베끼기이지. 미국, 일본 같은 남의 나라 풍습 베끼기와 옷 베끼기를 가지고 제발 발견이니, 진보니 하지 말자!

학생1: 교수님은 왜 그걸 꼭 나쁘게만 보세요? 표절, 모방이 무슨 문제예요? 창조를 위해서도 모방은 일차적으로 불가피한 거 아닙니까? (…)

학생2: 리포트 건은 교수님이 좀 양해해주셔야죠. 저희가 취직시험 준비에 바빠서 그래요. 아무리 역사가 전공이라지만 취직시험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데, 죽자고 거기에 매달릴 수는 없죠. 교수님도 제자들이 취직 잘돼서 나쁠 건 없잖아요. (…)

학생4: 글로벌한 세상인데, 뭐. 너무 우리 것, 우리 것 하지 마세요.

교수: (…)너희는 대학생인데도 나름의 문화가 없어. 거기엔 교양이 빠져 있단 말이야. 교양에서 우러나온 정당한 비판정신이 없어. 대학생이라면 저항문화잖아. 너희에겐 그게 없다고. 창피하게시리 미국, 일본 것 흉내내는 십대의 저질 풍속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잖아.

학생1: 우린 젊어요. 젊으니까 이것저것 해보는 거죠. 발견을 위해서 연습으로서의 모방은 불가피한 것 아닙니까?

 

 

끝없는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왔으나 한층 치열해진 취직경쟁에 맞닥뜨려 젊은 열정과 문화를 향유할 수도 창조할 수도 없다고 항변하는 대학생들을 바라보는 교수 허무성은 그런 세태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이는 단순히 윗세대가 아랫세대를 걱정하는 마음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오늘의 젊음은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했으나 열정과 패기를 잃지 않고 저항문화의 선두에 서고자 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에 비해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무감한 이십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실패와 절망에 관한 기록이다”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 현기영은 2천년대 오늘을 실패와 절망의 시대로 보고 있다. 그 옛날 누란 왕국을 뒤엎어 삼켜버린 황사바람처럼 우리 사회에 팽배한 소비향락주의, 현대판 파시즘, 값싼 대중추수의 문화 등이 우리의 정신과 문화와, 결국에는 역사를 삼켜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위기감에서 출발한 『누란』은 묵시론적이고 비관적인 경고의 목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려 있다. 그리고 이 절망과 위기를 절망과 위기 그 자체로 인식하고 넘어서야만 진정한 희망이 솟아오른다는 것이 작가의 전언이다.

 

 

나의 절망은 과연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을까? 너무 과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운동권은 나를 향해 모든 역량을 모아 싸워야 할 때 희망을 버리고 있다고, 배신이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패배를 사랑하고 절망을 은밀히 즐기는 마조히스트라고 매도할지도 모른다. // 그러나 희망을 말하면서 낙관론을 펼치려면 나 같은 비관주의자의 목소리도 조금은 경청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비관론은 적어도 우리의 타격대상이 얼마나 완강한 철벽인가를 일깨워준다. (「작가의 말」에서)

 

 

386세대로 자백과 고문의 과거사로 괴로워하는 허무성이든, 아무 모자람 없는 성장기를 거쳐 저항정신이 결여된 오늘날의 젊은이들이든 그들이 겪는 절망은 결코 개인적인 잘못에서 비롯하지 않았으며 사회적·구조적 문제임이 분명하다. 해서 철저한 절망과 비관으로 바닥을 치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자아’와 진정한 희망을 발견할 것이라는 작가의 바람은 단순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우리 시대와 사회에 던져주는 암시가 적지 않다.

 

 

 

2003년부터 구상하여 6년여에 걸쳐 집필한 현기영 장편 『누란』은 얼핏 익숙한 소설문법을 넘어서 작가의 사유와 해석을 자유로이 풀어내는 에쎄이 같은 형식으로 작금의 정치·사회·문화에 던지는 우려와 근심을 직설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어느덧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로 자리매김한 386세대에게는 지난날의 젊은 열정과 오늘날의 현주소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2천년대를 살아가는 이십대와 대학생들에게는 눈앞의 현실에 연연하기보다 큰 자아와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제언을 담은 이 소설은 세대를 뛰어넘어 우리 모두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목차

누란
작가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현기영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한 이래, 제주도 현대사의 비극과 자연 속 인간의 삶을 깊이있게 성찰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소설집 『순이 삼촌』(1979) 『아스팔트』(1986) 『마지막 테우리』(1994),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1983) 『바람 타는 섬』(1989)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 『누란』(2009), 산문집 『바다와 술잔』(2002) 『젊은 대지를 위하여』(2004)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2016)가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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