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코스키가 간다

책 소개

우리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2007년 제정된 창비장편소설상의 제2회 수상작인 한재호 장편소설 『부코스키가 간다』가 출간되었다. 『부코스키가 간다』는 청년실업이 만연한 시대, 상실만 있고 성장은 없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재기발랄한 착상과 개성적인 어조로 그려낸 작품으로, 현실에 섣불리 분노하거나 체념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현실을 전유해내는 능력을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이 평가받았다. 막연한 희망과 불안 사이에서 지리멸렬한 일생을 감내하며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이 청년백수의 수상한 모험담은 발칙하면서도 건강한 우리 시대 청춘의 자화상이다. 한국문학의 또다른 예외적인 시선의 출현을 알리는 신인의 등장이 반갑다.

 

 

 

수상한 여름에 시작된 이상한 미행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몇년째 학교 근처에서 소득없는 구직활동을 되풀이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고, 온종일 집에서 인터넷을 떠돌며 시간을 보내거나 구직공고를 찾아 이력서를 밀어넣는 것이 하루 일과다. 어쩌다 술자리에서 처음 본 후배와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나’는 식당에서 우연히 비오는 날만 되면 늘 가게문을 닫고 어디론가 외출한다는 ‘부코스키’라는 수상한 인물에 관한 소문을 듣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취방에 눌러앉은 그녀 ‘거북이’에게 부코스키의 소문을 전한다. 어색함을 무마하려고 던진 실없는 농담처럼, 그렇게 긴 여름날의 이상한 미행은 시작된다.

 

 

 

“자세히 말해봐요.”

 

“뭘?”

 

“부코스키 말예요. 그거 꽤 재밌겠는데요?”

 

 

 

딱히 대단한 호기심을 느낀 것도 아니면서, 둘은 비오는 날 아침을 기다려 부코스키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나’는 소설 내내 부코스키를 따라 종로를, 여의도를, 강남역을, 이대를, 서울 곳곳을 걷고 또 걷는다. 어느날은 무덥고, 어느날은 비가 오고, 어느날은 방구석에서 이력서를 쓰고, 어느날은 부코스키를 따라 걷는다. 비슷비슷한 뜻 모를 낙서가 곳곳에 출몰하고,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인물들과 부코스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소설은 비슷비슷한 세부를 미묘하게 변주하며 천천히 나아간다. 풀리는 듯 풀리지 않는 듯, 부코스키에 대한 의문도, 취업전선도 커다란 진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난다.

 

 

 

“시시하네요.”

 

“우리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가?”

 

“누구나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죠.”

 

 

 

부코스키에게 무슨 비밀이 있기나 한지, 이 미행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슬슬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거북이’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듯 스스로 세운 룰을 지키며 성실하게(?) 미행에 임한다. 조금만 더 가보면 무언가 찾아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를 품고 ‘나’의 미행에 동참하는 독자도 마찬가지로 발견보다는 의심을, 해답보다는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게 맞다. 정해진 수순인 듯 하나하나 단서가 찾아지고, 그럴듯한 위기와 반전을 거쳐 마침내 범인이 밝혀지는 모범적인 탐정 이야기가 과연 정말로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준비하고 또 준비하면 손에 쥘 수 있다”는 소문 같은 믿음이 횡행하지만, 실업이 더이상 예외상황이 아닌 오늘날의 세계에서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순진한 청춘은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여름의 거리는 어디나 똑같아요.

 

직접 다녀보면 알게 되죠. 어디나 다 잘 흘러간다고 할까?”

 

 

 

미행이 반복되고 부코스키가 다닌 지명을 체크해놓은 지하철노선도가 지저분해질수록, 여름의 거리는 ‘어디나 똑같아진다’. 충무로부터 종로3가, 범계, 홍대, 화곡, 등등 모두가 제각각의 이름과 제각각의 풍경을 지니고 있지만, 할일없는 이 백수산책자, 아니 미행자에게는 어디나 거기서 거기, 익숙한 익명의 거리들일 뿐이다. 거기에 아리송해 보이는 수상한 단서들까지 반복해서 출현하면―강아지, UFO, 빨간 야구모자를 쓴 여자, 낡고 땡땡한 가방, 알 듯 모를 듯한 낙서―서울 곳곳에 있는 낙서들이 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 할일없는 산책자에 의해 서울은 어디나 똑같이 낯설고 이상한 공간으로 새롭게 발견된다. 그리고 그 이상한 거리에 사는 주민들, ‘노점상 주인’ ‘지하철 사나이’ ‘79번 면접자’ ‘중년남자’ 들은 곳곳에서 뜬금없이 ‘나’ 앞에 나타나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지고 사라진다. 미행이 반복될수록, 서울 거리는 한없이 이상하고 낯설고, 그래서 흥미로워진다.

 

 

 

“근데, 우리뿐일까?”

 

“뭐가요?”

 

“부코스키를 쫓는 사람 말이야. 사실 내가 주워듣기 전부터도 오랫동안 존재했던 소문이잖아?”

 

 

 

그리고 그런 의문에 걸맞게, 어느날 ‘나’는 언젠가부터 ‘나’의 뒤를 쫓고 있는 ‘검은 우산’의 존재를 눈치챈다. 이제 미행에 동참한 인원은 셋, ‘나’는 부코스키를 쫓고, ‘검은 우산’은 부코스키를 쫓는 ‘나’를 쫓고, 그렇게 비오는 날이면 우산 셋이 나란히 서울 거리를 걸어가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연출된다. 장난스레 시작한 여름날의 미행은 어느덧 깨닫고 보니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한 연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연쇄의 정체가 아니라, 그 연쇄 속에 있는 ‘나’의 자리다. 그 별것 아니지만 거대한 연쇄 안에서는 부코스키 또한 누군가를 쫓고 있을 수도, 부코스키를 쫓는 ‘나’가 부코스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는 이제 선택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 연쇄를 이어갈 것인가, 끊어낼 것인가, 또는 다른 길을 택할 것인가. 선택은 어디까지나 ‘나’의 자유, 아니 어쩌면 독자의 자유다. “걸어야 할 거리는 서울에 널려 있”으니까.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성장통소설’

 

 

 

해설을 쓴 평론가 조연정은 이 소설을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성장통소설’이라 칭한다. 만성적인 상실감과 박탈감 속에서 세계와 화해하지 못하고 주변만을 맴돌 수밖에 없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이전과 같은 모범적인 성장의 서사는 더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시대에 적합한 성장의 서사란 답이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데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과연, 소설은 ‘부코스키’가 누구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그로부터 새어나오는 여러 가능한 다른 질문들을 탐색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게 그럴 법한 것이, 막연한 희망과 불안 사이에서 한숨 같은 장난과 공상으로 매일매일의 무의미를 견뎌야 하는 이 청춘들에게, 끝없는 반문과 자문 외에 무슨 무기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럴 때 이 장난과 공상이란 실은 현실의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되묻기 위한 우회로가 아닐 것인가.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가능성’을 정직하게 되물으며 성실하게 앞을 향해 걸어가기를 멈추지 않는 건강한 청춘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희망을 손쉽게 믿지 않고, 질문을 멈추지 않고, 달라지는 게 없을지라도, 다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나’가 내내 관철하는 원칙이자, 지금 청춘의 수칙으로 가장 어울리는 덕목일 것이다.

 

그 원칙을 관철함으로써, 또한 『부코스키가 간다』는 우리 시대 서사의 가능성을 예리하게 되묻는 소설이 되기도 한다. 세계와 화해할 가능성이 차단된 세계에서, 아니 세계 자체가 화해롭지 않은 세계에서, 손쉬운 파멸과 공상적인 희망과 온갖 빠지기 쉬운 비현실을 배제하고 나면 대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서 성장을 회의하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성장서사가 어떻게 스스로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이런 질문 자체가 어려운 형편에서 이를 정면으로 감당하려는 신인의 등장은 그래서 분명 예외적이고 또 고무적이다.

목차

부코스키가 간다

해설|조연정
심사평
수상소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한재호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레이먼드 챈들러와 찰스 부코우스키 등을 읽으며 빈틈과 군더더기가 뒤섞인 소설을 구상했다. 3년간의 노력을 거쳐 2008년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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