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축제

책 소개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강영숙(姜英淑)의 두번째 소설집 『날마다 축제』가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강영숙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첫번째 창작집 『흔들리다』를 펴내면서 “소설 속 인물들의, 발화점에 이른 긴장과 뜨거움과 위태로움이 독특한 미학을 이루며” “인간이 자기 안의 공동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어가는가를 마치 임상보고서처럼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로 섬뜩하게 그려내고”(오정희, 소설가) 있다는 평을 받으며 문단의 관심을 모았다.

 

이번 소설집은 2002년 봄부터 2004년 봄 사이에 발표된 9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일상과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꼼꼼한 묘사, 삶의 이면에 감춰진 불안과 고통이 떠오르는 섬뜩한 기미를 포착하는 민감한 시선 등은 다른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겠지만, “당대 그 어떤 소설가도 이토록 참담하고 그로테스크한 배경을 마련해놓고 그 속에 자신의 등장인물들을 데려다놓은 적은 없었다”고(김형중, 문학평론가) 지적될 만큼, 강영숙은 현대사회에서 불화를 겪거나 피로에 지쳐 부유하는 주변부적 존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아왔다.

 

「씨티투어버스」는 오랜 불황 끝에 공항폐쇄조치가 예고된 불길한 도시에서 씨티투어버스를 타는 여자가 화자로 나온다. 씨티투어버스는 광화문, 이태원, 남산, 동대문시장 등을 거쳐 처음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는 도심순환버스이다. 날마다 씨티투어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은 공항폐쇄 위기에 처한 암울한 도시 풍경을 바라볼 뿐 달리 할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때 사랑했으나 서로 폭력을 가하고 상처를 입히는 부부, 남편에게 맞아 멍든 몸을 가리기 위해 검은 터틀넥 원피스를 입고 음식을 우적우적 먹어치움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는 여자.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는 삶의 순간순간에 문득 대평원을 달리는 들소떼의 환영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벼랑끝을 향해 맹렬히 질주하는 들소떼 꿈은 공항이 폐쇄되고 부부관계가 파탄나는 어두운 현실을 짐작케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의 배경인 폐쇄된 도시와 그 속의 인물들을 “도시가 매머드처럼 커질수록 사람은 벌레처럼 작아진다. 내가 본 도시인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고층에서 일하다가 담배를 피우려고 수십층을 내려와야 하는 피로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또 이 작품 속의 들소떼의 환영에 대해 “환상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엄청난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 현실과 밀착하면 할수록 환상이 가깝게 느껴진다”(한국일보)고 설명하고 있다.

 

「봄밤」에서는 경춘국도변에서 흰장갑을 끼고 구운 오징어를 파는 여자가 나온다. 여자가 살고 있는 곳은 놀이공원 ‘매직스노랜드’가 있는 인공호수 주변이다. 놀이공원이 열려 있을 때, 그곳은 화려한 모형과 캐릭터인형, 행락객 들로 떠들썩하고 화려하지만, 불이 꺼지면 거리에는 오물이 넘쳐나고 모형비둘기는 날기를 멈춘 채 허공에 박히고, 캐릭터인형들은 볼품없이 접힌 채 트럭에 실린다. 놀이공원을 채웠던 사람들이 빠져나간 거리에는 고양이떼가 배회한다. 여자는 이렇게 황량해진 놀이공원 속에서 문득 “누가 내 몸 한가운데다 집을 짓”고 있음을(임신을 했음을) 깨닫는다. 강렬한 정서를 품은 여러 이미지들은 피곤에 찌든 인물들의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

 

「태국풍의 상아색 쌘들」에는 투자에서 실패해 큰 빚을 진 채 여행을 떠나는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대화는 무척 경쾌하게 처리되어 있다. 죽을까 말까 망설이던 그들은 온가족이 동반자살한 모습을 보기도 하고 마지막 추억을 공유하며 밥을 먹고 술 마시고 별 의미 없는 수다도 떨어보지만 결국은 죽지 못하고 도시로 돌아와 덤덤한 듯 일상에 돌아간다.

 

「날마다 축제」의 여자는 아이를 낳았지만 남자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만다. 아이의 행방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고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싶은 여자는 다만 환상을 그려볼 뿐이다. 아이를 찾다가 들른 과수원 너머의 집에서 여자는 아이와 함께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데, 이런 아름다운 순간은 이미 홍수에 쓸러나간 폐허 속에서 화자가 환영으로만 겨우 되살려낸 것에 불과하다. 아름다운 시간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환각인가가 암울한 현실과 대비됨으로써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강영숙 소설에서 척박한 현실 속에서 피어올린 환상적인 장면들은 비루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의 온기를 향한 몸부림이나 가슴 저릿한 삶의 향기를 연상시킨다. 환상은 생생한 구체적 실감을 갖추고 있으며, 개인의 의식 너머에서 일렁이는 현실의 또다른 모습처럼 그려져 있다.

 

연말 저녁, 아이의 유치원행사에 참여한 주인공에게 걸려온 옛 고향친구의 영문 모를 전화 한통으로 뒤흔들린 서너 시간 동안의 일상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 「빙고의 계절」, 극심한 황사바람에 휩싸인 도시를 배경으로 결벽증에 걸린 옛 여자친구와 암으로 한쪽 유방을 도려내는 어머니가 등장하는 「오아시스」, 해변 까페의 종업원을 꿈꾸어왔지만 부실공사로 말썽 많은 호텔에서 일하는 서른아홉의 외로운 여자가 나오는 「별빛은, 별빛은」 등 역시 흥미롭게 읽힌다. 이 작품들에서 절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의 구체성이 명확하면 할수록 환상의 이미지와 그것이 주는 실감은 도드라져 보이고 현실성과 환상성의 경계에는 치욕의 일상을 견디고 하루아침에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실려 있다.

 

강영숙은 평범하고 소박한 꿈마저 이룰 수 없는 현실의 가혹함을 꾸밈없이 드러내고 이를 환상으로 대비하는 예외적 재능을 보여준다. 이번 소설집은 문학적 감동이 날로 귀해져가는 요즘 세태에 독자들에게 특별한 기쁨이 될 것이다.

목차

씨티투어버스
봄밤
태국풍의 상아색 쌘들
날마다 축제
빙고의 계절
오아시스
별빛은, 별빛은
연인들

해설/김형중
작가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강영숙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8월의 식사」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아령 하는 밤』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회색문헌』, 장편소설 『리나』 『라이팅 클럽』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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