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마리오네뜨

책 소개

신예작가로서 200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과 언론의 각별한 주목을 받은 권지예의 첫소설집『꿈꾸는 마리오네뜨』가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다. 권지예는 1960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7년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91년 프랑스 유학생활을 시작하여, 빠리 7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근대문학의 여성문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1997년 문예지『라쁠륨』에 단편「꿈꾸는 마리오네뜨」, 중편「상자 속의 푸른 칼」이 추천되어 등단한 이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단편「뱀장어 스튜」로 제2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올해 동해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되어 강의와 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 소설집은 등단작「꿈꾸는 마리오네뜨」를 비롯하여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약 5년간 발표된 십여 편의 소설 가운데 여덟 편의 중단편소설을 선하여 묶은 것이다. ‘마리오네뜨’는 줄을 매달아 놀리는 서양의 인형극 또는 인형을 말한다. 작가는 그 인형놀이를 통해 권태로운 운명의 줄을 끊고 일어서려는 여러 인물들을 형상화하며,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시차’와 ‘거리’ 속에서 자기정체성을 모색한다. 실제로 이 작품집에는 작가가 오랜 기간 머문 프랑스에서의 생활담과 그곳의 개성적이고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작중 여성화자들의 애욕과 한데 어우러져 있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백지연도 지적하듯이 이 소설집에는 “삶의 격정적인 순간을 희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 작가의 중단편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사랑의 테마이다. 낭만적인 사랑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부스러지고 자취를 감추는가를 여성의 심리를 통해서 세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소설집은 독특한 색감을 갖고 있다.” 작가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분야의 하나는 결혼제도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일상성 속에서 사랑이 어떻게 퇴색되어가는가 하는 점이고 이를 딛고 일어서려는 현대인들의 몸부림과 좌절인데, 특히 다음의 작품들이 그러한 주제를 잘 그려내고 있다.

 

 

 

[고요한 나날]은 계간「창작과비평」에 발표되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유부남 애인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온 여성화자 ‘나’는 깨어난 후,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고가 나던 날, 나의 임신소식을 채 알리기도 전에 그는 세상을 떠나고, 뱃속의 생명은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그런데 나는 그가 며칠 후면 아내와 함께 이민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고 심한 충격을 받는다.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나는 갑작스런 재앙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악착 같은 집착이 삶에 대한 간절한 확인이란 것을 깨닫고, 점차 그들을 이해하게 되며 자신을 돌아본다. 핸드폰에 입력되어 영원히 남아 있을 그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삭제해버리고, 그간 모아두었던 수면제도 연못에 던져버림으로써 나는 새로운 삶의 각오를 되새긴다.

 

 

 

표제작『꿈꾸는 마리오네뜨』는『라쁠륨』에 ‘두 개의 꼭두각시 인형’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한국에서 임시교사와 과외를 하는 아내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는 빠리 유학생인 남편은 자신들이 지구의 반대편에서 대롱거리는 줄이 끊어지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벗어나기 힘든 관계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외로울 때 만나곤 하던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내는 빠리로 찾아와 남편에게 고백하고 용서받고자 한다. 그러나 남편의 서랍장에서 발견된 쓰다 남은 콘돔 상자와 양탄자에 엉겨붙어 있는 낯선 털오라기들을 발견하고 오히려 질투감에 불타오른다.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음으로써 남편에게 복수하고자 하지만, 빠리를 떠나오기 전 생리가 터지고 복수계획은 허무하게 되어버린다. 아내는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남편의 불륜의 증거물인 다섯 오라기 털을 변기 속에 털어내버리고, 주술에서 풀려난 마리오네뜨 인형처럼 깊은 숨을 내쉰다.

 

 

 

세번째로 수록된「정육점 여자」 역시 껍데기만 남은 부부관계와 그 속에서 방황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다. 빠리의 중국인 거리에서 만났던 연인 라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던 날은 아내가 두번째 아이를 지운 날이다. 내가 첫아내와 이혼하고 빠리에서 생활할 때 만난 정육점 여자 라라는 어릴 적 한국에서 입양된 여자다. 갑작스레 귀국을 하게 되면서 라라와 함께 떠나기로 약속하나,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훗날 라라는 냉동고에서 다른 한국인 남자와 꼭 껴안은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나는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지만, 지금의 아내는 나와 결혼 후 두번째로 아이를 지우고 오히려 나를 원망한다. 나는 가끔 여자를 사러 홍등가로 간다. 분홍색 불빛은 정육점의 그것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단편「섬」「나무물고기」가 수록되어 있으며, 중편 「상자 속의 푸른 칼」「투우」「사라진 마녀」 같은 작품들에서는 순수한 예술적 정열에 대한 동경과 지나가버린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갈망들이 쓰라린 현실세계와 대비되어 그려진다.

 

 

 

권지예의 소설은 부부관계의 균열과 격정적인 삶에 대한 현대인들의 욕망을 그리되, 사랑의 환상을 딛고 서려는 힘겹고도 간절한 몸짓을 절절하게 드러냄으로써 자기만의 세계를 확보해가고 있다. 이것이 이방인의 공간에서 타오르는 육체적인 정염의 강렬함이 속됨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

목차

작가의 말

고요한 나날
꿈꾸는 마리오네뜨
정육점 여자

나무물고기
상자 속의 푸른 칼
투우
사라진 마녀

해설/백지연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권지예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 1991년 프랑스 유학생활을 시작하여, 빠리 7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근대문학의 여성문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음. 1997년 문예지『라쁠륨』에 단편「두 개의 꼭두각시 인형」, 중편「상자 속의 푸른 칼」이 추천되어 등단.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꽃게무덤』,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 등이 있음.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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