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책 소개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예작가 천운영(千雲寧, 1971년생)의 첫소설집 『바늘』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다. 천운영은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

 

창작과를 졸업했고, 2001년 제9회 대산문학상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은 우리 소설계의 젊은 유망주이다.

 

이 소설집은 등단작 [바늘]을 비롯하여 2000년 1월부터 2001년 10월까지 약 2년간 발표된 아홉 편의 단편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천운영의 신예답지 않은 만만찮은 저력은 “독자를

 

위태로운 공격성과 관능과 탐미의 벼랑끝으로 밀고가는 발군의 역량”(신춘문예 심사평)이 돋보인다고 평가된 바 있는데, 수록작품 모두 편차 없이 고른 성취를 보이고 있다.

 

표제작 [바늘]은 문신시술을 하는 여주인공 화자와 그녀의 홀어머니, 그리고 거세된 남성성을 상징하는 암자의 주지승, 강인한 남성적 힘을 갈망하는 청년이 엮어내는 밀도있는 단편이다. 주지승의 살해사건을 둘러싸고 팽팽하고 긴장감있게 사건이 전개되는 가운데, “제도화된 여성성과 거세된 남성적 문화를 돌파하는”(이광호) 특유의 힘을 보여준다.

 

[숨]은 소골을 탐식하는 육식성의 노파와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일하는 그녀의 손자, 그리고 노파와 대척적인 자리에 있는 식물성 인간형인 손자의 애인(미연)이 등장한다. 결혼승낙을 받으려고 노파가 요구하는 송아지 태아를 구하기 위해 소머리에 물을 먹이던 화자는 단속반에 쫓겨 밀림 같은 거리를 헤매다 미연의 품속으로 숨어드는데, 원초적 생명력을 은유하는 ‘숨’이라는 상징으로 갈무리되는 결말이 의미심장하다.

 

소년의 눈에 보이는, 닿을 수 없는 어머니의 여성성에 대한 갈망과 동경을 부라보콘과 그 아류인 눈보라콘이란 상징으로 표현해낸 [눈보라콘]은 관능적인 아름다움까지 포함한 독특한 성장소설이며, 월경(越境)과 월경(月經)의 중의성을 가지는 [월경]은 어릴적 어머니의 간통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 빚어진 가정파탄으로 성장이 멈추어버린 여성화자가 자신을 옥죄던 일그러진 욕망의 금기선을 넘어서 새로운 여성성으로 나아가는 소설이다.

 

아버지가 떠나간 먼 바다를 항상 그리워하는 주인공을 아내의 연민이 넘치는 시선으로 그린 [당신의 바다], 맹목적으로 달려들던 지긋지긋한 여자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오히려 그녀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게 되는 남자가 등장하는 [등뼈]에서는 상실의 아픔과 존재에 대한 갈망이 잘 드러난다. [행복고물상]은 폭력을 일삼는 아내와 고물상을 경영하는 그의 무력한 남편, 그리고 식물인간이 된 영감을 수발하는 노파의 이야기이고, [유령의 집]은 반대로 상습적으로 아내를 폭행하는 밀렵꾼 남편과 그의 어린아이가 등장하는데, 난폭하고 가학적인 인물들을 둘러싸고 그려지는 두 작품의 분위기는 사뭇 대조적이어서 흥미롭게 읽힌다.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지닌 곱사등이 여자와, 주인노인과 잠자리를 같이하며 생활을 꾸려나가는 나어린 처녀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자기의 존재를 찾아가는 그들의 여정이 펼쳐지는 [포옹]은 소설집에 수록된 마지막 작품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90년대 (여성)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적 감각의 전문직 중산층 여성이나 소설의 단골 소재였던 애정과 불륜관계와도 차별성이 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권말의 해설에서 등장인물들이 “제도화된 여성적 자아의 내부에 머물지 않는다. 그 제도적인 영역의 바깥으로 질주하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여성적 에너지를 드러낸다”고 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식물적인 여성성으로부터 동물적인 여성성으로의, 혹은 타자로서의 여성성으로부터 창조적인 부재와 이질적인 복수항(複數項)로서의 여성성으로의 탈주라는 존재론적 전환의 사건이 벌어진다”고 평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운영의 미학적 위반은 문화적인 이탈의 의미를 얻고, 천운영을 통해 한국의 여성소설은 독특한 야생의 미학을 자기 목록에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대상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그 세목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출중한 묘사력”(황종연)은 천운영 소설이 가진 또다른 장점이며, 이는 천운영의 작가적 역량과 더불어 철저한 현장취재가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마장동 축산시장과 횟집 주방에서의 실전 같은 체험은 소설 속에서 소머리를 가르고([숨]) 곰장어를 잡는([당신의 바다]) 충격적으로 리얼한 장면을 가능하게 했는데, 비계를 타고 빌딩 유리창을 청소하면서까지([등뼈]) 삶의 현장에 밀착하여 써낸 그의 작품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작가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신인의 처녀 소설집 『바늘』은 새로운 돌파구를 갈망하는 우리 소설계에 신선한 청량제가 될 것이다. (*)

목차

작가의 말

바늘

월경
눈보라콘
당신의 바다
등뼈
행복고물상
유령의 집
포옹

해설/이광호

수상정보
  • 2003년 제21회 신동엽문학상
저자 소개
  • 천운영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신문방송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바늘」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과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가 있다. 신동엽창작상, 올해의 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Although Cheon Woon-young is a young author with only two volumes of short stories, she is considered a pioneer of a n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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