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구두

책 소개

김인숙 소설집

 

『유리 구두』

 

(신국판 272면/값 7,500원)

 

 

 

 

 

저자 김인숙(金仁淑)씨는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고, 대학

 

재학중 약관 스무살의 나이로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장편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먼 길』, 소설집 『함께 걷는 길』

 

『칼날과 사랑』 등 치열한 사회의식에 입각한 문제작들을 꾸준히 발표해왔습니다. 93년 호주

 

로 가기 직전에 펴낸 『칼날과 사랑』에서 실생활 자체를 있는 그대로 소설화하면서도 자본주

 

의 제도의 틀 속에서 겪게 되는 개인적 번민과 고뇌에 큰 관심을 보였던 저자는 95년 귀국

 

한 이후 발표한 단편을 모은 이번 세번째 소설집에서 80년대를 거쳐온 개인의 상처와 여성

 

의 내밀한 갈등을 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표제작 「유리 구두」를 비롯하여 자전적인 내용의 「바다에서」 「풍경」 등은 80년대가 남긴

 

상처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개인이 90년대 중반에 겪고 있는 절망감을 그리고 있습니다.

 

「유리 구두」는 젊음을 바친 분노의 시대에 자기만은 대단하게 살아지리라고 믿었으나 지금

 

은 대기업 사원으로 대학동창인 유선과의 의미 없는 육체관계에 빠져 있으면서 대학원생인

 

경윤과 `결혼이라는 거래`를 하려 하는 주인공 `그`와, 한때 유리 구두를 찾아 신는 꿈을 꾸

 

었으나 이제 월간지 기자로서 섹스 외에는 삶의 의욕이 없는 유선이라는, 80년대를 거치면

 

서 절망과 환멸로 가득한 두 남녀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미국에 가 있는 고등학

 

교 때부터 친구인 J의 전화를 받고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의 자전소설로서, 집안이

 

부유하고 글쓰는 주인공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주인공이 하는 데모를 이해는 못하지만 주인

 

공이 하기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는 J,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J를 동경한 주인공의 이야기

 

를 담으면서 80년대의 또다른 삶에 대한 저자의 이해와 포용을 보여주고 있고, 「풍경」은 남

 

편을 떠나 쌍계사로 여행온 작가인 주인공은 아버지 사후 어머니가 하숙생을 치던 어렸을

 

때의 기억, 20대 초반 학생운동을 하면서 겪은 `피세일`과 여행지에서 경험한 중년 남자의

 

유혹을 반추하기도 하고, 현재 쌍계사 주위의 비오는 풍경을 묘사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중편으로 90년대에 대한 저자의 착잡한 심정을 드러내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나비의 춤」은

 

국민학교 때 무용을 하며 스포트라이트 받은 경험을 잊지 못해 평범한 가정주부의 위치를

 

박차고 카바레를 드나들다 이혼당한 여자의 자식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새로운 삶을 찾으려

 

는 욕구를 담았습니다. 이밖에도 이번 소설집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아이를 여러번 유

 

산한 딸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내용의 「거울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혼자 사는 여성

 

의 내밀한 갈등과 심리를 묘사한 「그 여자의 자전거」 「그림 그리는 여자」, 일찍부터 가장이

 

란 무거운 짐을 떠맡은 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미국에 유학간 동생에게 주인공이 차 안에

 

서 카폰으로 알리는 내용으로 해체되어가는 이 시대의 가족을 그리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

 

등이 들어 있습니다.

 

 

 

 

 

발문

 

 

 

기억의 저편과 이편

 

 

 

김남일 (소설가)

 

 

 

 

 

세월은 얼마나 많은 기억을 지워버리는가, 잔인하게! 「풍경(風磬)」의 교정쇄를 읽다가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다음과 같은 부분 때문이었다.

 

 

 

길눈이 밝은 사람은 그녀처럼 길눈이 어두운 사람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가 대학

 

교 삼학년 때, 소위 `피세일`이라는 유인물 돌리기를 하기 위해 창신동 산동네를 올라갔을 때의

 

일이다. 창신동을 종로 5가와 동대문 사이에서 올라갔던 그녀…… 내려올 때는, 난데없이 대학

 

로 방통대가 보였다. 그녀는 겁에 질렸다. 대학로가 어떻게 종로 5가와 동대문 사이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바로 스무살이군요. 돌아내려오며, 스무살인 그가 내게 묻습니다. 80년대 초반에 학

 

교를 다니셨으면 데모도 많이 하셨겠네요? 나는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땐 그랬죠……

 

 

 

전체 문맥으로 볼 때 이 부분들은 송유관이 파열되어 갑자기 솟아난 기름처럼 둥둥 뜨는 느

 

낌이었다. 「풍경」의 주인공을 묘사하기 위해서 “길눈이 어두운 사람의 공포”는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위한 삽화가 대학 시절의 `피세일`이어야 할 필요까지는 없지 싶었다. 게다가 불영폭포

 

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낯선 대학생들이 던지는 질문이 굳이 “데모도 많이 하셨겠

 

네요?”라니! 소설에서 이런 대목들은 그것이 아무리 비중이 적다 할지라도 결혼생활의 한 고

 

비에 이르러 남편과 아이를 두고 혼자 여행을 떠나온 주인공에게 썩 어울리는 건 못되었다.

 

아니, 어색하기까지 했다. 지난 시절에 대한 그런 기억들은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갈등에 어떤

 

필연적인 동기로 작용한다고 보여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교정쇄를 덮고 났을 때,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그 대목에서 쓸데없이 왜 그런 기억들을 끼

 

워 넣었어,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랬다. 앞뒤 문맥을 거듭 읽어봐도 그건 쓸데없는 되새김질

 

이었다. 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는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수 없었다. 불만은 여전히

 

삭이기 어려웠지만 그건 이미 `미련한` 김인숙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김인숙과 내가 아등바등

 

함께 건너온 시대,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이미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만 그 시대

 

에 대한 불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김인숙의 그런 되새김질을 미련한 것으로 만드는 오

 

늘의 상황에 대한 불만이었다고나 할까.

 

내가 만일 이런 점을 지적한다면 김인숙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반응이야 어떻든 내

 

가 아는 김인숙은 `아직` 그런 사람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아무리 그 시대와 멀리 떨어

 

져 있다손 치더라도, 김인숙은 자신이 탄생시킨 새 주인공들에게서 그 시대의 흔적까지 완전

 

히 지워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흔적이란 게 어떤 것일까.

 

1980년대의 어느 굽잇길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을 것이다. 마포경찰서 건너편의 자유실천문

 

인협의회? 출판사 공동체 사무실? 아니면 신촌의 까페 섬? 어쩌면 떡볶이집이 많았던 충정로

 

어느 골목의 허름한 사무실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방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그곳엔 당시 제

 

법 호기를 부리던 몇몇 작가들과 그들을 `배후조종`하던 몇몇 평론가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그

 

이층방에는 그때로선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던 삼보 컴퓨터도 있었고, 유난히 주인 행세를 즐기

 

던 키 작은 한 평론가는 보석글인가 하는 워드프로세서를 배운답시고 A드라이브와 B드라이브

 

에 번갈아 시커먼 디스켓을 갈아끼우곤 했다. 그랬다. 분명히 C드라이브는 없었던 시대였다.

 

언제부턴가 김인숙은 나보다 한 발짝은 앞서나가고 있었다.

 

내가 철산리 골방에서 한 시대의 역사를 소설로 담아낸답시고 혼자서 끙끙거릴 때, 김인숙

 

은 똑같은 일을 공동창작이라는 희귀한 작업을 통해 너끈히 마무리지었다. 장편소설 『`79∼`80

 

겨울에서 봄 사이』는 그렇게 해서 햇빛을 보았고, 나는 그게 부러웠다. 어떤 의미로든 우리 소

 

설사에 남을 만한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김인숙은 또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

 

던 노동자들을 쉽게도 잘 만났는데, 나는 그게 김인숙이 나와 다른 성(性)이요 게다가 예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한 질투까지 느꼈다. 콜트악기 노동자를 취재해 어떤

 

글인가를 쓸 때의 김인숙을 기억한다. 그때 김인숙의 볼은 국광 사과처럼 늘 빨가스름했다. 나

 

는 그게 『핏줄』을 써서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스무살짜리 여대생작가가 스스로 선택한 존재의

 

변신 과정에서 겪는 볼거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만큼 바쁘고 신이 난 김인숙을 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김인숙은 아예 공단 지대로 생활의 터를 옮기기까지 했다. 그런 경험면에서도

 

나는 김인숙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자고 나면 누가 죽고 또 누가 끌려갔다는 소문이 참으로 흉흉하던 시대였다. 아직 죽지 않

 

은 선배 평론가 채광석은 대통령을 `주꾸미`라고 부르며 쉴새없이 육두문자를 중얼거렸고, 그때

 

나 지금이나 배가 나오긴 마찬가지인 선배 시인 김정환은 그때도 지금처럼 배짱이 좋아 무엇

 

하나 있는 게 없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형편무인지경 살림을 기막히게 꾸려나갔다. 여당을

 

거쳐 지금은 야당의 국회의원이 된 김아무개씨가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지하노동자단체를

 

만들었다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고문을 당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관절빼기, 칠성판, 물고문,

 

전기고문, 비행기태우기, 마침내 성고문까지 등장했다. 작가로서도 도대체 글을 쓴다는 게 성명

 

서를 쓰는 것하고 왜 달라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즐겁게 잘 놀았다. 김인숙의 집에 가서 고스톱을 몇 번이나 쳤을까. 나는 집

 

들이 밑천까지 다 털어낸 다음 돈 한푼 들어있지 않은 지갑마저 땄다. 그랬던 것 같다. 착한

 

김인숙은 그래도 울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형, 살림에 보태.”

 

그리고 깔깔거리던 특유의 웃음. 그런 김인숙은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내 기를 죽이기에 충

 

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제목부터가 그랬다.

 

「성조기 앞에 다시 서다」

 

나는 그렇게 멋진 제목을 붙일 줄 아는 작가를 본 적이 없었다.

 

『실천문학』에 나와 김인숙의 소설이 나란히 실렸던 적이 있었다. 나는 6월항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써서 「명동부르스」라고 제법 물기젖은 제목을 붙였는데, 읽어보니 참 잘 썼다. 흐뭇한

 

마음으로, 조금은 자만심에 차서, 김인숙의 소설을 읽어보았다. 제목이 심심하게 그저 「강」이었

 

다. 그런데…… 아아, 내가 느꼈던 열패감이란! 지금 그 내용은 잊었지만 딱 한 가지 등장인물

 

이 불심검문인가에 걸려 파출소에 들어갔는데 순경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은 오늘 새벽 꿈처럼

 

생생하다.

 

“모르긴 뭘 몰루? 아무것도 모르는 게 이따위로 간댕이 부은 짓을 한단 말이오?”

 

한 마디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몰라?` `몰라요?`가 아니라 `몰루?` 그 장면에서는 꼭 그렇

 

게 말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다리 건너뜀을 해서 들은 얘기지만, 그때 『실천문학』

 

의 주간이었던 송기원 선배는 그 호에 실린 네 편의 소설 중 내것이 제일 볼품없다고 말했다.

 

눈물을 삼키며 나는 그의 말을 인정했다. 「내딛는 첫발은」을 쓴 방현석이라는 신인, 「전령」을

 

쓴 김하경이란 신인, 그리고 김인숙까지…… 며칠 후 나는 소설을 포기하기 위해 짐을 꾸려

 

남도 저 지독한 유형의 땅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식으로라면 나는 세월의 갈피에서 얼마든지 김인숙의 모습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물론 이 자리에서 밝히기 힘든 사실들도 꽤 있을 것이다. 특히 가족사에 관한……

 

하지만 지금, 이 소설집의 발문을 쓰는 자리에서 그런 기억들을 끌어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나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았어요.

 

나 역시 세상을 바꾸려 하지는 않았다. 세상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던 것일까.(「그 여자의 자전거」)

 

 

 

나는 당황했다. 내가 아는, 아니,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핏줄』에서 시작해 『`79-`80 겨울에

 

서 봄 사이』를 거쳐 『함께 걷는 길』에 이르는 김인숙이었다. 그것은 한 작가는 물론이고 한

 

인간에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존재의 탈피 과정일 터였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았

 

다”라니! 김인숙을 잘못 알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잘 몰랐거나…… 나는 베를린장벽이 무너

 

지는 순간부터 느끼기 시작했던 멀미를 다시 느꼈다.

 

 

 

삶은 결국, 문고리를 붙든 채 문 안도, 문 바깥도 아닌 곳에서 마냥 서성거리는 짓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그냥 안전하게 살라구. 문을 열려고 하지 않으면 아예 문이라는 것이

 

없는 곳에서, 살아, 안전하게 살아, 긴 숨을 짧게 끊어 쉬면서, 살란 말이야. 안전하게! (「문」)

 

 

 

그 시기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 특별함에 바칠 열정이 있었다. 그 시기에는 타락까지도 열

 

정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제 그들에게 추억이었다. 어느날 아침 눈떠 보니 그들은 추억 밖의

 

세상에 던져져 있었다. (「유리 구두」)

 

 

 

문이라는 것이 없는 세상, 추억 밖의 세상.

 

거기서 서성거리는 김인숙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서. 나는 겨우 어

 

떤 한 장면으로 기억의 더듬이를 뻗을 수 있었다. 몇 년 전이던가, 김인숙은 호주로 가야겠다

 

고 말했다. 어렵게 그런 말이라도 전해주고 떠나려는 김인숙이 고마워서 잠자코 고개만 끄덕

 

였다. 그 무렵 김인숙이 감당해야 했던 현실은 참으로 난감했을 터. 빌미가 되었을 경제적인

 

문제는 차라리 뒷전이겠구나, 나는 직감했다. 까짓 아파트쯤이야 나중에 다시 사면 되지……

 

며칠 후, 김인숙은 추억만을 안고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1년 반인가 뒤에 이제 초

 

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딸아이 선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왔다는 전화에 나는 이런 식으로 농담을 건넸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 바탕이 예쁘다고 멍청히 있어서는 안돼. 화장도

 

해야 된다구, 알아? 여긴 옛날의 그 동네가 아냐.”

 

그러나 나 같은 작가에게는 그게 그저 해보는 농담이 아닐 만큼 세상은, 특히 90년대 중반

 

의 문학동네는 완전히 판갈이를 `당하던` 중이었다. 민족문학이 죽었느니 살았느니 찧고 빠는

 

이야기로부터 문학을 그야말로 소인주의(素人主義)로 대중화하는 상업성, 서사 대신 이미지만

 

으로 시종하는 저 당당한 대세, 마침내 영어를 모국어로 하자는 주장까지……

 

앞서 언급했던 하나방 시절의 그 키 작고 무슨 문제만 생기면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던 평론

 

가는 『창비문화』의 지면을 빌려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야, 내가 친정오빠나 다름없으니까 너에게만 하는 말인데, 90년대는 머리만 바꾸면 안돼. 몸

 

을 바꿔야 해. 몸을 바꾸는 건 어렵지. 머리 바꾸는 건 오히려 쉬워. 하지만 90년대를 살아가

 

려면 몸을 바꿔야 해. 이게 중요한 거야. 예를 들어 재즈나 하드 록은 어렵거나 시끄럽지? 하

 

지만 이 정도는 듣고 살아야 당대를 이해할 수 있는 거야.”

 

긴 방황에서 돌아온 김인숙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비슷한 농담을 하긴 했지만, 나

 

로서는 제발 그 `친정오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면 한다.

 

“아방가르드(전위파)의 핵심은 죽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데에 있고 아리에가르드(후위

 

파)의 핵심은 그것을 아직 좋아하는 데 있다.”

 

롤랑 바르뜨가 말했고, 그 `친정오빠`가 자신의 『나는 삐끼다』(푸른미디어)라는 문화비평집에

 

서 인용했던 이 말에서 내가 어느 편에 손을 들지는 자명하다. 나는 김인숙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아방가르드는 못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것`이 무엇이든 미련하지만 열

 

심히 좋아하는 수밖에 없을 텐데…… 글쎄, 핑핑 돌아가는 세상이 김인숙을 가만히 놔둘까. 착

 

한 김인숙이 거친 들에 핀 한 송이 꽃처럼 불안하지만, 나는 그래도 믿음을 갖는다. 들국화는

 

“눈을 뜬 채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법 아닌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이 혹시 있지 않으냐고.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아무것

 

도 바꾸려고 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한때 세상을 믿은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무언가를 믿고 기다려야 할 것이 있지 않겠느냐고…… (「그 여자의 자전거」)

 

 

 

요즘, 우리는 시상식장 같은 데서 이따금 만나면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뻐졌네?”

 

“고마워.”

 

“잘 살아?”

 

“그렇지 뭐.”

 

 

 

자,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 내가 아는 김인숙은 이런 정도. 처음 발문 청탁을 완곡하게

 

거부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는 김인숙의 90년대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좀더 풍부한 글을 써야 한다는 핑계로 술 한잔 사라고 하지 않았다. 꼭 이런

 

글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정말이지 듣고 싶었다. 하지만 때로는 포

 

기하는 것이 더 나은 때도 있는 법.

 

김인숙은 내게 당부했다.

 

“그 얘기는 쓰지 마, 형.”

 

그 얘기…… 나는 약속을 지켰다. 독자에게는 다만 다음과 같은 김인숙의 고백을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소설은 이미, 너무나 많다. 어떤 열성적인 독자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소설―싸구려를 대

 

부분 제외한다고 치더라도 그 나머지의 소설―모두를 다 읽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녀가 그

 

수없이 많은 소설 더미 위에 자신의 소설을 더 얹으려고 드는 것은, 그것이 세상을 빛나게 하

 

리라는 기대보다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목차

[차례]

유리 구두
아버지의 얼굴
풍경(風磬)
나비의 춤
그림 그리는 여자
거울에 관한 이야기
그 여자의 자전거
문(門)
바다에서

발문/김남일
후기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김인숙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고,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함께 걷는 길』 『칼날과 사랑』 『유리 구두』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그 여자의 자서전』 『안녕, 엘레나』, 장편소설 『핏줄』 『불꽃』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 『그래서 너를 안는다』 『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 『먼 길』 『그늘, 깊은 곳』 『꽃의 기억』 『우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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