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책 소개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절필의 시간을 벼려, 8년 만에 펴내는 안도현 신작 시집

중년을 지나며 바야흐로 귀향길에 오른 안도현 문학의 새 발걸음

 

‘시인 안도현’이 돌아왔다. 안도현 시인이 신작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를 펴냈다. “절필이라는 긴 침묵 시위”(도종환)를 끝내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지 4년, 시집으로는 『북향』(문학동네 2012)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열한번째 시집이다. 4년간의 절필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음에도 시심(詩心)의 붓이 무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 세상을 늘 새롭게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과 그동안 겪어온 “인생살이의 깊이와 넓이”(염무웅, 추천사)가 오롯이 담긴 정결한 시편들이 가슴을 깊이 울린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시인 안도현’을 만나 ‘안도현 시’를 읽는 반가움과 즐거움이 크다. 그의 시집을 기다려온 독자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귀한 시집인 만큼 두께는 얇아도 내용은 아주 묵직하다.

 

추천사
  •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이 멋진 말을 기억하며 오랜만에 안도현의 시를 읽는다. 언어를 다루는 그의 손끝이 맵고도 섬세하리란 건 능히 예상했던 일, 놀라울 것이 없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그의 손길이 깎고 쪼고 다듬어낸 우리말은 새로운 광채로 빛을 발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시인의 손끝에 이런 감각의 예리함을 부여하는 것은 손끝 자신이 아니라 시인의 남다른 시선이고 그가 겪은 인생살이의 깊이와 넓이다. “허공의 물기가 한밤중 순식간에 나뭇가지에 맺혀 꽃을 피우는 현상”을 노래한 시 「무빙(霧氷)」이 단순한 자연 관찰에서 출발하되, “멋조롱박딱정벌레가 무릎이 시리다는 기별을 보내올 것 같다”는 귀신같은 예감을 넘어 “상강(霜降) 전이라도 옥양목 홑이불을 시쳐 보낼 것이니 그리 알아라” 같은 옛 세시풍속을 호출하다니, 중년을 지나며 바야흐로 귀향길에 오른 안도현 문학의 새 발걸음에 괄목(刮目)의 기대를 보낸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목차

제1부_얼굴을 뵌 지 오래되었다

그릇

수치에 대하여

당하

연못을 들이다

꽃밭의 경계

편지

호미

배차적

안동

환한 사무실

삼례에서 전주까지

너머

시 창작 강의

고모

임홍교 여사 약전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연어 이야기』 『관계』,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냠냠』 『기러기는 차갑다』, 산문집 『가슴으로도 쓰고 […]

8년 만에 시집을 낸다. 강가에 이삿짐을 푸느라 발목이 붉어졌다.
 
갈수록 내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누군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고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 말하는 사람일 뿐, 내가 정작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대체로 무지몽매한 자일수록 시로 무엇을 말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돌담을 쌓고 나니 팔꿈치에 통증이 가시질 않는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통증이 병이지만 몸의 입장에서는 통증도 새로 생긴 식솔이다. 돌을 주워 상자에 담는 일과 풀을 뽑아 거머쥐는 일과 새소리를 듣고 귀에 담아두는 일에 더 매진해야겠다. 손톱에 때가 끼고 귓등에 새털이 내려앉으리라.
 
나무는 그 어떤 감각의 쇄신도 없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2020년 9월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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