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3 2020년 3호

책 소개

‘불편함’에 대한 비평적인 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럼에도 우리가 읽는 이유,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서

 

주목: 불편한 문학, 불편하게 하는 문학

『문학3』 2020년 3호가 출간되었다. 이번호 주목란에서는 ‘불편한 문학, 불편하게 하는 문학’을 키워드로, ‘불편함’에 대한 비평적인 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묻는 네편의 글을 담았다.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는 때때로 ‘듣고 싶지 않은 말’ ‘보고 싶지 않은 것’ 혹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듣는다. 작품의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느끼고 끝내 마음에 걸린 나머지 읽기를 멈추거나, ‘지켜야 할’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 난감했던 적도 있을 것이다. ‘보고자/듣고자/읽고자’ 하는 욕망이 독자 개인의 윤리의식과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충돌하는 요즘, 문학작품에서 폭력이나 고통의 재현은 어떻게 다뤄져야 하며 독자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다룬 작품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불편한 문학’에 대한 비평적인 대화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할 때, 불편함에 대한 반응뿐 아니라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의 감흥을 표현할 언어 역시도 단순해지는 건 아닐까. 이번 『문학3』 주목란의 글 네편은 ‘좋아요’을 넘어선 비평적 대화는 어떻게 가능할지 나아가 ‘그럼에도 왜 읽(어야 하)는지’ 고민하고자 한다.

철학자 김애령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도할 수 있는 독서행위의 특징을 환기한다. 일회적으로 스토리를 확인하고 배후에 있는 하나의 ‘의미’를 찾는 과정만으로 문학작품을 읽을 게 아니라, 단번에 완결되지 않는 독서, 한정된 세계에서 벗어나 ‘타자성’을 겪고 뜻밖의 공기를 마시기 위한 독서를 만나보자고 다정하게 권유하는 글이다.

이어 소설가 최진영고통스러운 상황을 작품으로 표현해야 할 때 창작자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분투의 과정을 여실히 들려준다. 『이제야 언니에게』를 집필하면서 느꼈던 창작자의 죄책감에 대해, 제야의 이야기를 ‘불편해할’ 사람들을 뒤로하고 왜 제야의 이야기가 기존의 세계를 부수고 다른 이들에게 가닿아야 하는지에 대해 떠올리다보면, 특정한 문학작품에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누구에 의해 비롯되는 말일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영화평론가 이현재는 예술작품에서 폭력적인 장면이 그려질 때 해당 장면이 내포하는 위험성을 경계하면서도 결국 그러한 장면에 계속해서 눈이 가는 관객/독자들의 욕망이 지닌 이중성을 고민하는 글을 보내주었다. 폭력적인 장면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환경에 놓인 관객/독자들이 놓치지 말고 성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묻는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은 요즘 시에서 발견되는 ‘1인칭’이 이전 시들에서 발견되었던 것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고 말하는 최근의 비평적 입장들을 살피면서,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나’를 외부가 소거된 ‘자아’, 관계적 자아의 면모를 놓친 ‘자아’로만 한정하여 읽는 입장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비평이 시에서 만나는 ‘나’를 오염되지 않는 결백한 ‘나’로만 대할 때, 예술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충격의 강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음을 전하는 이 글은, 우리가 예술에 기대해왔던 것은 무엇이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를 다시금 따져보게 만든다.

 

목차

안희연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주목

불편한 문학, 불편하게 하는 문학

김애령 문학작품을 다시 읽는 이유

최진영 죄책감, 타인들, 고통

양경언 나의 모험: 최근 시의 ‘나’들이 만들어내는 자장들

이현재 보이(지 않)는 폭력

 

구현경 보이지 않는 마음 / 팔월

김경후 차렷 / 소매 없는 이별

박세랑 진화하는 영혼 / 밤길

박지일 책; 달로 가는 버스 / 연습

이은규 수박향, 은어 / 천칭자리 스티커북

중계    팔월의 낙차 / 김지연 이문경 황윤하

수상정보
저자 소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아름다운 사진 한장을 보았습니다. 독일의 젊은 작가 율리아 크리스테(Julia Christe)의 작품이었어요. 제목은 「White Sand」 . 우유니 소금사막을 연상케 하는 순백의 화면 속엔 푸른 치마를 입은 아주 작은 세 사람이 있고, 고요와 평온이 가득했습니다. 사람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풍경이 훨씬 강조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사람은 풍경 속으로 금세 사라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폭력적으로 삼켜지는 것이 아니라 아스라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스미듯이. 이따금 어떤 그림 앞에서 두 귀가 사라진 것 같은 경험을 할 때가 있는데 율리아 크리스테의 작품이 꼭 그러했습니다. 이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런데 그런 평온이 충격으로 변하기까지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눈부신 흰 모래사장의 이름은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White Sands National Monument)이며, 뉴멕시코의 이름난 관광 명소로도 손꼽히는 이곳은 본래 히로시마 원폭투하를 위한 미사일 실험 부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답다고 여긴 마음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어쩐지 겸허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외면(外面)과 내면(內面)과 이면(裏面)의 차이를 가늠해보기도 했습니다. 본 것, 보고자 한 것, 보아야 했던 것, 보았지만 볼 수 없었던 것을 섬세하게 구분하게 된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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