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판사

책 소개

판결문에 미처 담지 못한 온갖 맛의 세상만사

휴머니스트 판사의 밥상에 오르다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 ‘혼밥’의 순간에 판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음식을 먹으며 사건과 사람, 세상에 대해 떠올린 단상을 엮은 정재민 작가의 에세이 『혼밥 판사』가 출간되었다. 오랜 시간 판사로 일하다 현재는 방위사업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작가가 판사 시절 경험한 달콤쌉싸름한 일화들이 유쾌한 필치로 펼쳐진다.

판사의 식사시간을 한번 상상해보자. 그들은 음식 앞에서도 감성보다는 합리적 판단이 앞설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혼밥 시간을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편견임을 확인하게 된다. 건강을 위해 라면을 끊겠다는 결심은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길을 걷다 풍겨오는 냄새에 홀린 듯 갈빗집으로 들어가 소주 한잔을 곁들여 돼지갈비를 뜯는다. 누구와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혼밥’과 ‘판사’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조합이 조금씩 친숙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저자에게 식사 시간은 회복의 순간이다. 재판은 언제나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의 상처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그 사연을 낱낱이 청취하고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 역시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바라보며 회의에 빠지고 상처를 입곤 한다. 저자는 그럴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혼자 밥을 먹었다. 따뜻한 밥상을 마주하면 울적함도 녹아내리고, 허한 마음도 훈훈하게 채워진다. 밥상 맞은편에는 사건의 당사자들, 옛 기억 속 사람들을 상상으로 불러 앉힌다. 냉철해야만 하는 판결문에는 채 다 담아내지 못한 인간사의 사정과 각자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며 밥상 위 자신만의 법정을 꾸린다. 이 책은 혼밥을 통해 위안을 얻은 한 판사의 기록이자, 복잡한 세상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저자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다.

 

 

공소장과 재판 기록이 말해주지 않는

달콤쌉싸름한 인생의 장면들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우리 일상에서도 친숙한 음식들을 매개로 하여 소개된다. 1~2장은 주로 판사로서 직접 판결을 내렸거나 당시 전해들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3~4장은 일상 이야기와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하며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1~2장에서 소개되는 사건과 사람들은 에세이보다는 신문 사회면에 더 어울릴 법하다. 군대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 부부싸움으로 일어난 상해·치사 사건, 강도상해죄를 저지른 사람 등 공소장과 판결문에 적힌 내용만 놓고 보면 선뜻 이해도, 용서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보통 그들이 ‘나쁜 놈’이기 때문에, 나와는 먼 이야기이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혀를 한번 쯧 차고 넘길 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판사로서 법리적 해석과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통해 그들의 죄에 합당한 판결과 분쟁에 대한 합의 사항을 선고하는 동시에, 자연인으로서 그 사건에 얽힌 여러 상황과 사정을 마주하며 사건 뒤의 사람을 보려 애쓴다. 사건 당사자를 제외하면 사건을 가장 가까이, 깊게 보게 되는 판사가 느끼는 감정은 그만치 복잡하다. 그래서 저자는 음식을 앞에 둔 채 사람과 사건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그때 그는 왜 그랬을까, 지금은 잘 살고 있을까 생각하며 먹는 저자의 혼밥은 겉으로 보기에는 혼자 먹는 밥이지만 사실은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하는 밥상인 셈이다.

3~4장은 법정 밖 세상에서 저자가 마주한 사람과 경험이 주로 소개된다. 특급 호텔 총괄 셰프를 만나 판사와 셰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해보고, 여행을 떠나 먹었던 두부 맛도 떠올려 본다. 지인의 결혼식에 가서는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잔칫상의 모습을 떠올리며 여유와 사랑이 메말라가는 지금 우리의 사회를 돌아보기도 한다. 저자가 기꺼이 내보이는 일상 속 오르내리는 감정과 행복을 읽으며 독자들 역시 자신의 일상을 한번 더 긍정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 가장 열심히 밥 먹는 판사

 

이 책에는 다른 에세이와 차별되는 몇가지 매력 포인트가 있다. 먼저 저자는 판사로서의 경험을 살려 사건에 대한 법리적인 해석과 판결 과정에 대한 설명을 곳곳에 담아내 독자가 공적 사안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마련해두었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법률적 요소를 책 전체의 온도에 맞도록 알기 쉽게 서술해놓았다. 저자가 책에서 내내 보여주는 공감의 말들은 객관적 사실을 무시한 채 덮어놓고 감싸는 것이 결코 아니기에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또 하나의 매력은 음식을 정말 열심히, 맛있게 먹는다는 점이다. 저자의 식사시간을 구경하다보면 책을 든 채 허기를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칼국수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는 소리가 귀에 들릴 듯하고, 이사 직후 먹는 짜장면과 가족이 모여 함께 먹는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치킨의 맛은 우리도 너무나 잘 아는 터라 참기가 힘들다. 저자가 그날의 메뉴를 찾아 밥을 먹는 과정은 마치 유명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이렇듯 진중함과 유쾌함을 거침없이 오가는 서술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혼자면서도 혼자가 아니었던

한끼 한끼의 기록이 건네는 위로

 

저자는 “음식의 세계와 법의 세계를 나란히 놓아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음식을 성분과 레시피가 아닌 음식 자체의 맛과 냄새와 온기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사람과 인생도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루룩 넘기는 밥 한술 뒤에 숨은 시간과 애씀의 더께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단편적인 어느 순간의 모습 뒤에 더 큰 인생의 연속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책을 통해 삶의 순간순간을 꼭꼭 씹어 삼키듯 돌아보며 ‘사는 듯 사는 삶’을 향한 고민을 이어나갔다. “혼자서 밥을 먹는 모든 이들에게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면, 사는 듯 사는 데 필요한 힘이 되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이 담긴 이 책은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위로를 선사하며 삶에 대한 긍정을 한술 더해줄 것이다.

추천사
  • 평범한 식당 한구석에서 조용히 식사하는 한 남자. 잔업 탓에 식탁에는 소주 대신 사이다 잔이 놓여 있다. 앞자리에는 오늘 판결을 받은 피고나 원고가 상상 속 인물로 앉아 있고, 주인공은 그들의 앞접시에 김치찌개를 덜어 권한다. 그렇다. 이 책은 그들만의 세상에 살 것 같은 차가운 ‘판사님’의 식도락 이야기가 아니다. 장르 드라마에 판사가 등장한다면, 으레 고급스러운 바에 앉아 얼굴엔 짙은 그늘을 드리운 채 고뇌하는 모습을 떠올리리라. 하지만 『혼밥 판사』 속 주인공의 식사는 휴먼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앞치마를 두른 채 집게로 고기를 뒤집거나, 끼니로 포장해온 샌드위치의 반을 뚝 떼어 내주는, 생활인의 밥 먹는 이야기라 정겹고 따뜻하다. 이 따뜻한 한끼를 같이 나누고 나면 읽는 사람의 마음도 든든해질 것이다. / 드라마작가 홍자매(홍정은, 홍미란)

목차

프롤로그 / 혼밥의 시대에 혼자 먹는 일

 

1장 상처 입은 날이면 따뜻한 밥상이 그리워진다

라면, 구불구불 인생을 닮아 더 가까운

돼지갈비, 사람 사는 일도 이렇게 달큼할 수 있다면

칼국수, 세상 가장 푸근한 ‘칼’

홍어, 인생을 닮은 듯 톡 쏘는 맛

 

2장 죄는 미워해도 사람과 음식은 미워하지 말라

도시락, 이름만으로 추억이 되는

갈비탕, 뼈에 새겨진 기억을 좇다

곰탕, 한 그릇에 뭉그러진 사실과 마음

통닭, 아무하고나 먹을 수 없는

순대, 호불호의 경계에서 만나는 인생

 

3장 식사는 결국 사람의 일이다

두부, 순한 맛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청포도 빙수와 셰프, 그리고 판사

잔칫상은 어디에 더 어울리는가

 

4장 언제나, 일상다반사

짜장면, 그야말로 인생의 동반자

피자와 맥주, 새로움은 또다른 익숙함이 되고

커피와 소주, 사뭇 다른 어른의 맛

 

에필로그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정재민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판사, 외교부 독도법률자문관, 유엔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연구관, 국방부 정책실 법무관, 군검사, 국제법 박사 등 법률가로만 살았다. 한번뿐인 인생, 법 말고 더 생산적이고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2017년 판사직을 사직하고 방위사업청에 들어가 무기체계를 수출하거나 만드는 일을 해오고 있다. 최대 관심사는 ‘사는 듯 사는 삶’이며 그렇게 사는 방법 중 하나로 글을 쓴다.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 『소설 이사부』 『독도 인 더 헤이그』와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등을 썼고, 세계문학상, 매일신문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을 받았다. 미식가도, 음식 전문가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맛있게, 열심히 먹는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했던 한가지를 더 말할 수 있다면, 음식의 세계와 법의 세계를 나란히 놓아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얼핏 미술관 옆 동물원처럼 어색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재판이 이루어지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은 그 속에 들어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나트륨이 각각 몇 퍼센트인지, 레시피가 무엇인지로 치환할 수 없습니다. 같은 성분, 같은 레시피라도 음식의 모양과 냄새와 맛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사람도, 사람의 행위도, 그 사람의 인생도 말과 글로, 법과 판례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음식을 알면 알수록 맛이 있다, 혹은 없다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을 살면 살수록 인간을, 그의 행위를, 그의 인생을 유죄와 무죄, 위법과 적법,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음식을 성분과 레시피가 아닌 음식 자체의 맛과 냄새와 온기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사람과 인생도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법과대학에서도, 법학 서적에서도, 선배 판사들에게서도 좀처럼 배울 수 없는 일입니다.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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