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3 2020년 2호

책 소개

동물의 자리에서 인간중심주의 다시 보기

사람들은 상자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미 알고 있다 

 

주목: 동물과 인간중심주의

『문학3』 2020년 2호가 출간되었다. 이번호 주목란에서는 ‘비인간동물’을 화두로,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의 관계를 돌아보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어떻게 상상할지 고민하는 다섯 필자의 글을 담았다.우리가 중심, 보편의 이야기라고 믿고 익숙하게 보아온 것들 뒤에 어떤 목소리가 은폐되어 있었는지, 페미니즘의 질문과 문제의식을 통해 모색해보는 시간을 거쳤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역시 우리 앞에 명백히 놓여 있는 듯하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누구의 말과 목소리를, 권리를 그리고 생명 그 자체를 취했는지, 이 착취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만든 것은 무엇인지 ‘상자를 열어보는 것’ 그리고 지금 인간-비인간동물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상상해보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세계를 구상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세계가 작동해온 원리를 근본적으로 짚는 두 글로 주목을 시작한다. 정치학자 채효정은 오늘날 동물문제가 자본주의적 착취구조와 근대적 법의 체계 속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인간 대 동물의 구도를 넘어, 말을 빼앗긴 동물들 그리고 모든 동물과 가까운 존재에 가해지는 착취를 중단하고 죽음의 체제에 저항하는 생명들의 연대를 역설하는 그의 사유가 깊은 파문을 남긴다. 한편 반려견 ‘오디’ 그리고 퀴어, 페미니즘 이론과의 만남을 통해 비거니즘을 일상에 받아들인 시인 성다영이 경험에서 비롯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명제를 당연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폭력에 반대해야 한다는, 그렇게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것을 끊어내는 비거니즘이라는 결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어 인간-동물이 연루된 이 세계를 어떻게 다시 구상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동물권연구활동모임 알림(ALiM:)의 활동가이자 변호사 김도희가 법과 정치 그리고 언어를 통해 ‘동물정치’의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동물해방이 실현된 미래에 대한 급진적이며 구체적인 상상이 담긴 그의 글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알림의 또다른 활동가인 독립연구자 심아정은 인간이 동물과 맺는 관계의 변화를 견인하는 실마리로써의 언어를 고민한다. ‘침략종’이라는 수사(修辭)를 중심으로 인간 언어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퀴어적 사유와 실천으로 ‘다른 미래’를 상상하자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수의사 박종무가 인간-동물의 관계를 전체 생태계의 문제 속에서 질문하며, 기후위기를 포함해 오늘날 무수한 ‘위기’의 논의를 어떻게 연결 지을지 고민하는 글을 보내주었다. 인간의 행위로 인한 결과 앞에서 채식은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윤리적 의무임을, 그리고 나아가 인간중심적인 행위 양식을 바꾸는 반성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그의 목소리가 우리의 일상에 문제의식을 던진다. 

 

창작과 중계

이번호 소설란은 김보영 최제훈 한유주의 신작과 원고모집으로 선정한 나수경의 작품으로 채웠다. 다양한 서사에 각기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인상 깊은 작품들이다. 중계 코너에서는 에세이스트 고수리, 미술비평가 이빛나, 소설가 임국영이 수록 소설들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어주었다. 시란에는 유이우 유진목 이정훈 정한아의 신작시와 함께 원고모집을 통해 선정한 서요나의 작품을 수록했다. 서로 다른 시선과 세계가 담긴 작품이 어느 때보다 다채롭고 풍성하다. 시 중계에는 시인 박다래, 『아레나』 피처에디터 이예지, 방송작가이자 동시인인 정진아가 함께해주었다.

 

현장과 시선

트랜스젠더이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변호사인 박한희가 올 2월 초 있었던 트랜스젠더 학생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와 일련의 사태에 대한 글을 보내주었다.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과연 우리는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그들이 겪는 구조적 차별의 문제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물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나은 사회로 한발짝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다음으로 장애인과의 공존이 손쉬운 배제로 나타나는 현실을 진단하며 더불어 살아갈 다른 방식을 상상하는 두 글이 이어진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유기훈은 폐쇄병동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에 감추어진 것들을 질문한다. 이번 집단 감염을 통해 코로나19 훨씬 이전부터 이미 세상과 격리, 수용되어 있던 정신장애인들의 현실을 짚으며 ‘시설’이라는 특수한 경계가 나눠버리는 ‘이쪽’과 ‘저쪽’의 낙차를 환기한다. 이어 발달장애인허브 ‘사부작’의 활동가 이남실이 ‘시설’을 넘어 마을이라는 지역사회의 장에서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부작’의 여러 활동을 기록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부작’이 우리의 주변에 생기기를 〔문학3〕도 바라본다. 시선란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최명인이 ‘Face’라는 제목으로 여러 모습의 얼굴들을 보내주었다. 우울과 무력감이 겹쳐진 표정들로부터 공감과 작은 위로가 느껴지기를 바라는 그림들이다. 이어 일러스트레이터 쩡찌의 단편 만화 「좋아하는 것」이 실렸다. 좋아하는 일상 속 평범한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자신에 대한 긍정이 진솔하게 담겼다. 

 

문학웹과 문학몹

문학웹(www.munhak3.com)의 새로운 시 연재 코너 ‘비밀의 책’은 문보영 시인을 시작으로 신두호 한여진 임승유 박시하 차도하 김상혁 손유미 이원하의 신작시와 비밀에 관한 에세이를 선보였다. 앞으로 이어질 강지혜 이원 이소호 이자켓 이수명 등의 연재에도 많은 관심을 바란다. ‘3×100’ 코너의 조해진 「완벽한 생애」 곽재식 「신라 공주 해적전」도 성황리에 연재를 마쳤다. 6월부터 새로 시작될 박문영 강성은의 새 연재에도 변함없는 사랑을 부탁드린다. 5월 중에는 키워드3의 산문 연재가 이어진다. 코로나19-( )-생활을 주제로 이랑 정용주 박정훈이 어느 때보다 흔들리는 요즈음을 살핀다. 이번 문학몹 열두번째 현장은 코로나19로 인해 한데 모이는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한 제로 웨이스트 실천기로 안부를 나누었다. 예기치 못하게 생긴 우리 사이의 거리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좁혀보고자 했다. 이 위기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데 참여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목차

양경언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

 

주목

동물의 자리에서 인간중심주의 다시 보기

채효정            ‘사람-되기’와 ‘동물-되기’

성다영            생명 하나 생명 둘 생명 셋

김도희            우화(寓話) 우화(遇畫)

심아정            어떤 ‘야생화’ 돼지의 삶과 죽음

박종무            기후위기 시대, 축산업과 지속 가능성

 

서요나            봄날의 서스펜스/물과 민율

유이우            숨/멈춰 선 곳

유진목            모르핀/모르핀

이정훈            두루안지/소착(燒着)

정한아            고양이를 개처럼 데리고 다닐 수 있다면/人力

중계                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불고           / 박다래 이예지 정진아

 

소설

김보영            고래 눈이 내리다

나수경            구르기 클럽

최제훈            48시 편의점

한유주            유령 개

중계                만나본 사람 같아요 / 고수리 임국영 이빛나

 

현장

박한희            트랜스젠더, 구조적 차별을 변화시키기 위한 질문을 해야 할 때

유기훈            정신질환, 코로나19, 인간의 조건

이남실            마을마다 발달장애청년허브가 있는 풍경

 

시선

최명인            Face

쩡찌                좋아하는 것

수상정보
저자 소개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

 
레이첼 서스만(Rachel Sussman)의 『위대한 생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윌북 2015)에는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오래된 생물들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현대예술가인 저자가 2004년부터 약 십여년간 전세계 학자들과 협업하여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 유럽, 남극 등을 오가며 2천살의 바오밥나무, 8만살의 사시나무 무성번식 군락 같은 생물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포착한 프로젝트이지요.    
 
사진은 시간의 찰나를 붙잡는 예술이라고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을 굳이 ‘움직임’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서스만의 작업에는 오래 산 나무를 떠올릴 때 우리가 으레 상상하게 되는, 커다란 둥치를 가진 나무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닙니다. 멀리서는 숲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체가 한그루인 나무에서부터 백년에 1cm씩 자라는 이끼, 날카롭고 뾰족한 잎으로 덤불을 이루고 있어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자칫 지나치기 십상인 나무 등 여러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자기 삶의 몫을 다하기 위해 주변의 환경과 어울리는 자세, 생존 방식을 끊임없이 찾아나섭니다. 그렇게 살아온 삶이란, 인간의 인식으로는 가늠이 잘 되지 않는 심원한 시간성으로 채워진 것이겠지요. 저자의 말마따나 “인간종이 세상에 등장한 지 20만년쯤 지난 뒤, 인류가 시간을 다시 0으로 설정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고령의 나무가 인간사적 사건들뿐 아니라 자연사적인 사건들을 몸에 새기며 한층한층 쌓아온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장대한 우주의 소박한 구성원인 인간에게 필요한 ‘겸허’에 관해 떠올립니다. 인간인 우리는 결코 지금 이곳의 많은 일들을 장악하지 못합니다. 다만 이해하고, 적응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따름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기간 중에 많은 이들이 소셜미디어에 실내에서 가꾸는 식물이나 창밖으로 비치는 나무의 사진을 올려두곤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식물을 곁에 두면 좀처럼 소란이 느껴지지 않으므로 그로부터 위안을 구하기 위해 식물에 눈길을 주는 것이리라 짐작하는 이도 있겠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가 순탄치 않으니 대신 선택한 방식 아니겠느냐는 걱정에서 비롯한 생각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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