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홍시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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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발랄한 문장 뒤에 숨겨진 애틋한 슬픔, 단숨에 읽히는 따뜻한 이야기의 등장

 

한국소설의 참신한 상상력을 발굴하기 위해 2007년 창비가 제정한 ‘창비장편소설상’의 제12회 수상작 김설원 장편소설 『내게는 홍시뿐이야』가 출간되었다.

김설원의 『내게는 홍시뿐이야』는 어른들의 파산선고 이후 홀로서기를 하게 된 열여덟살 ‘아란’이 혼자서도 어떻게든 삶을 꾸려나가는 과정을 통해, 파산 이후 모두가 떠난 도시와 그 안에 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연대하는 모습을 애틋하게 그려낸다. 따스함을 잃지 않는 섬세한 시선으로 남은 자와 떠난 자들의 현실적인 비극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우리로 하여금 묘한 뭉클함을 자아내게 한다. 단숨에 읽히는 탄탄한 문장 뒤에 숨겨진 애틋한 슬픔은 불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우리 사회에 따뜻한 비극의 힘을 증명해낼 것이다.

 

이 가족들은 자식들에게 파산선고를 하기 이전에 파산된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아란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닮아가기 마련”이라고. 나는 김설원 작가와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소설을 읽자 이 문장이 가슴에 쏙 박혔다. 이 문장으로 소설을 다시 바라보자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저 질문들을 통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주인공이 거쳐간 공간들. 낡고 비좁은 임대아파트.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가 지내던 문간방. 한 집안의 가장이 죽었던 방. 이 공간의 이동이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공인 아란은 자기가 살고 있는 방을 닮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 작가는 왜 고향을 불러와 파산선고를 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세계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인터뷰’ 중에서

 

 

인생의 떫은맛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열여덟살의 파란만장 독립기

 

임대아파트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아온 ‘아란’은 당분간 떨어져 지내자는 엄마의 통보에 ‘또와 아저씨’네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임대아파트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모녀가 함께 지낼 집이 사라진 탓이다. 엄마에게 빚이 있다는 ‘또와 아저씨’는 제지회사에 다니다가 퇴직하고 “또와 아귀찜, 또와막창구이, 또와해장국, 또와김밥” 등등을 차렸다가 다 망한 전력이 있는 가장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란이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와 아저씨네도 완전히 파산하게 되고 아란은 졸지에 집과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버스 종점이 있는 동네에 “보증금 무, 월세 십만원”짜리 집을 운 좋게 구하게 된 아란은 학교를 자퇴하고 나이를 숨긴 채 치킨집에서 일을 시작한다. 아란은 유난히 홍시를 좋아했던 엄마가 돌아올 날을 위해 홍시가 눈에 보일 때마다 그것들을 사 모으지만 엄마는 급기야 연락이 두절된다. 한편 치킨집 사장 ‘치킨홍’은 지적장애가 있는 배다른 남동생 ‘양보’와, 외삼촌이 베트남 출신 아내를 얻어 낳은 자식 ‘첸’을 혼자 돌보며 치킨집을 운영하는 40대 싱글 여성이다. ‘치킨홍’은 타지를 떠돌다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엄마 없이 방치된 ‘양보’와 ‘첸’을 거둔다.

‘아란’은 포기하지 않고 엄마를 기다리며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다. 때로 원망 섞인 목소리로 엄마를 질타하기도 하지만 “꿈을 찾아 고향을 떠”난 엄마를 이해하려 한다. “엄마의 얼굴이고, 목소리이고, 웃음”인 홍시를 들여다보면서.

 

“쌀 구하러 나간 엄마를 찾아다니는 이야기구나. 떡 팔러 간 엄마를 기다리는 우리 동화랑 비슷하네. 예나 지금이나, 또 국경을 초월해서 어째 엄마들은 하나같이 식량을 구하러 나가면 돌아오질 않냐. 아버지들은 죄다 어디 있나 몰라.” (156면)

 

이들의 아버지는 전부 망하거나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생계를 책임지게 된 엄마들 또한 사라지자, 남은 자식들은 준비할 새도 없이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이들은 철길이 멈춘 도시, 이제 더는 기차가 달리지 않는 파산한 도시와 운명을 같이한다.

 

철길은 그해 겨울 숨이 멎었다. 이 소식을 엄마한테 들었는데 그날 공교롭게도 이른 첫눈이 내렸다. 눈을 맞으며 귀가한 엄마가 멍한 표정으로 “철길이 죽었어야? 기차는 어디로 가지?”라고 말했다. 자기를 어딘가로 안내해줄 유일한 철길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안절부절못하는 이방인처럼. 어쩌면 엄마는 그때부터 자기만의 새로운 철길을 찾아 남몰래 헤맸을지도 모른다. (128~29면)

 

안정감 있는 구도와 흡인력 있는 서술로 ‘아란’의 파란만장한 독립기를 그려낸 김설원 작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사람들의 연대를 특유의 따뜻한 감성으로 보여준다. 특히 함께 소풍을 떠난 곳에서 ‘아란’이 ‘치킨홍’과 ‘양보’의 사진을 찍어주는 마지막 장면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감동을 안겨준다. 김설원 작가가 오랜 시간 다져온 소설적 깊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리지 않은 삶을 향한 긍정이 우리 소설의 지평을 한층 넓혀주리라 기대한다.

한편 이 책 말미에는 심사위원인 소설가 윤성희와 함께한 ‘작가 인터뷰’가 실려 있다.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몇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던 작가는 그간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며 소설쓰기를 멈추지 않은바 창비장편소설상으로 두번째 등단을 한 셈이기도 하다. 창비로서는 3년 만에 수상작을 냈다. 오랜 소설쓰기의 연륜에서 발한 탄탄한 문장과, 그럼에도 신예의 패기가 느껴지는 서사가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해줄 것이다.

추천사
  • 김설원의 『내게는 홍시뿐이야』는 ‘엄마를 찾아서’라는 낯익은 모티프를 바탕에 깔면서도 이를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시킨다. 고등학생인 ‘나’의 엄마는 임대아파트에서 나와야 할 형편이 되자 돈을 빌려주었던 지인의 집에 ‘나’를 맡기는데, 이 집도 망하게 되면서 이제 ‘나’는 온전히 혼자 힘으로 세상에서 버텨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시종일관 너무 당당하며 연락을 끊어버리는 데서도 일말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엄마마저 부재한 상황에서 화자가 스스로의 자원을 동원하여 삶을 도모하는 가운데 우리 시대 가난한 약자들과 관계 맺고 ‘대안가족’까지 형성하는 곡진한 과정과 거기서 드러나는 화자 특유의 감성적 통찰이 이 작품의 주된 매력이다.
    _제12회 창비장편소설상 심사위원 강영숙 강지희 김형수 윤성희 한기욱 황정아

목차

내게는 홍시뿐이야

 

작가 인터뷰|윤성희

심사평

수상소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김설원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2009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었다. 장편소설 『내게는 홍시뿐이야』로 제12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은빛 지렁이』, 장편소설 『이별 다섯 번』 『나의 요리사 마은숙』 등이 있다.

혼자만의 놀이처럼 꾸준히 소설을 쓰면서 기쁨보다는,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와 그래도 차마 놓지 못하겠다는 미련 사이에서 쓸쓸했는데 한가지는 확실히 얻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직 어설프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그 때문에 내 소설의 인물들을 돌로 만들었다는 자기반성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내가 뒤늦게 꽃을 피웠다. 대번 온몸에 생기가 감돈다. 하지만 들뜬 마음도 잠시, 그 꽃에 은은한 향기라도 풍기게 하려면 내 소설의 집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햇살과 공기와 바람이 되어준 그들이 눈앞에서 계속 살랑댄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내 작은 방에 불빛을 비춰준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2020년 3월
김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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