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책 소개

“굉장하고 쓸쓸한 나의 편협이

굉장하고 쓸쓸한 너의 편협을 다정히 사랑해서”

이질적인 언어로 치열한 사랑을 구축해내는 새로운 시인의 등장

 

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영재 시인의 첫 시집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가 출간되었다등단 당시 언어에 대한 민첩하고 세련된 감각과 존재의 미세한 기척들에 대한 민감함이 어우러진다는 호평을 받았던 시인은그동안 개성적인 화법으로 시의 음역을 넓히며 독자적인 시세계를 꾸려왔다등단 6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과 발랄하면서도 묵직한 시적 사유가 돋보이는 매혹적인 시편들을 선보인다기존의 문법을 거침없이 뒤흔드는 참신한 언어 형식과 형이상학인 동시에 흥미진진한 서사가 독특한 재미(이원추천사)를 선사한다.

 

 

자주 길을 잃게 하는 낯선 문장과 형식

무너뜨린 언어를 통해 만나는 새로운 가능성

 

이영재의 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관습적인 의미 체계를 뛰어넘는 모호한 언어와 일상의 어법을 허무는 낯선 문장 속에서 자주 길을 잃게 된다시인은 기존의 익숙한 문법을 무너뜨리고 능동의 언어를 비틀어 생각되되/생각될 것(「생각되되 생각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피동형의 언어를 자유로이 구사함으로써 존재의 능동성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치밀하게 짜인 문장 안에 논리적 질서와 상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언어가 돌올하다. “생각된 생각을 생각(「검열」)하고, “적을 수 없는 너머의/너머(「위하여」)를 관통하는 그의 시를 읽다보면 미로 속을 걷는 듯하면서도 무언가 되어가는 기분(「슬럼」)이다.

언어의 한계와 가능성에 관해 골몰하는 시인은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알기 위해(「지나가면서」) 의도적으로 기존의 언어 체계를 허물어뜨린다그렇다고 비단 언어에 대한 탐구에만 관심이 머무는 것은 아니다시인은 무엇 하나 다행스러운 것이 없(「지나가면서」)고 누군가 행복하다면 누군가 불행(「청사진」)할 수밖에 없는 지금이곳의 삶의 고통과 슬픔을 절실한 언어로 담아내면서 현실을 비판하기도 한다이처럼 삶의 구체성에 뿌리를 둔 작품들은 뒤틀린 세월과 어긋나버린 시간을 환기하면서 오랜 교육으로 축조된 희망과 기대(「청사진」)라는 허울에 가려진 사회 구조의 본질을 드러내 보인다.

이영재의 시적 사유는 언어와 실존에 대한 인식에 깊숙이 닿아 있다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탐구하면서도자신의 세대가 경험하는 삶의 문제에 대해 뚜렷이 인식한다시인은 가능성의/가능성을 향해(「위하여」) 움직이고,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내가 알던 A의 기쁨」)을 더듬으며자신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그것이 바로 허위가 아닌, “우리가 연 가능성(「미지」)이 아닐까. “자라지 않는 걸 키우기 위해 나는 멀리를 걸어왔다(「먼 밭」)는 이 젊은 시인의 첫 시집은확실히 독자에게 다른 시집(이원추천사)으로 기억될 것이다.

추천사
  • ‘다른’ 시집이다. 달라서 ‘자리’가 있는 첫 시집이다. 다른 관점이 펼쳐 보이는 공간은 생경하고 사실적이다. 다른 방법론으로 써지는 문장은 치밀하고 여유롭다. 형이상학인 동시에 흥미진진한 서사다. 독특한 재미를 가졌다. 양립이 어려운 이 다른 대위법은 “존재에게 접속사를 더할 수 없다는 A의 신념”에서 탄생되었다. 유사 또는 차이, 사고의 중심이 되는 두 축 중에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은 “상식과 다른 상식”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생각되되 생각될 것”이라는 “피동”의 강력하고 일관된 시선은, 다름에 “골몰”하던 기하학자로 하여금, “길게 삶는” 흰 국수 사이로 닭과 염소를 들락날락하게 하는, 이질적이고 “치열한 사랑을 구축”해내게 한다.

목차

1부 상쇄

흰검정

내가 알던 A의 기쁨

코끼리

싸움

대위법

슬럼

새의 간격을 보며

낭만의 우아하고 폭력적인 습성에 관하여

카무플라주

겁과 겹

모카와 모카빵

검열

상태

방패

 

2부 기형

기우

외곬

캐러멜라이즈

파수

정물 b의 당위

회복

생각되되 생각될 것

조화

개미를 구별하는 취미

그릇되는 동안

미지

암묵

위하여

 

3부 상대성

검은 돌의 촉감

청사진

임상연구센터

먼 밭

서정에 대하여

관조

환하고 더딘 방

이 사과는 없다

텍스트

주방장은 쓴다

지나가면서

법과 빵

모를

쐐기

잔여

 

4부 투명

흰 벽

마당을 쓴다

잔잔한 붕어 낚시

위독 1

위독 2

투명에 투명을 덧대며

어쩌면 조금은 굉장한 슬픔

깨지기 직전의 유리컵

자정(自淨)

편집자의 시끄럽고 조용한 정원

연루

여름 귤

탱자나무 아래

노루잠

 

해설|전병준

시인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이영재

    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알고 싶었습니다.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그게 무엇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모르는 채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 내가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착각이라는 걸 이제야 압니다. 내가 아니라, 시가 나를 기록해왔습니다. 시에 의해 기록된 내가 보고 생각하고 씁니다. 가한다는 건 뭘까요. 가한다는 건 무엇이어야 할까요. 가한다는 건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무엇도 무엇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시에 의해 이 꼴이 되고 있습니다. 타당해 보이는 핑계를 대면서 나는 된 것, 되는 것, 될 것 따위를 믿지 않습니다. 시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시에 의해 구축된 내가 시를 구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내가 택한 건 아니지만, 시를 택하길 잘했습니다. 시는 충분히 매력적이며 충분히 옳고 충분히 그르고 충분히 충분치 않습니다.

2020년 첫,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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