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변혁

책 소개

1919년과 2019년의 대화를 통해 조명한 3·1 백주년

 

2019년 올 한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주체의 기념활동이 잇따랐으며, 관련 출판물의 성과도 풍성했다. 그러나 3·1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대를 꿰뚫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안목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던바, 이 책은 일찍이 ‘촛불혁명’론을 제기한 담론의 당사자로서 그 나름으로 3·1을 새롭게 조명한 계간 『창작과비평』의 올해 봄호 특집과 여름호의 3·1 관련 글들을 바탕으로 논의를 더 실차게 갈무리하기 위해 1919년과 2019년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역사학을 비롯해 한문학,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분과학문 횡단적 작업의 결실을 맺었다.

 

촛불의 눈으로 되돌아본 3·1

백낙청은 서장이라기보다 총론에 가까운 「3·1과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에서 3·1 자체보다 3·1이 꿈꾸었던 국가건설의 과제에 초점을 두어 성찰하면서, 한반도 근대의 나라만들기는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왔고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본다. 그는 3·1이 한반도에서 주체적 근대적응의 출발점이라고 보는데, 이는 3·1이 근대극복 노력의 본격적 출발이기도 했다는 명제를 동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개항 이전부터 준비해온 한반도의 이중과제 수행이 이때 드디어 본격화되는바, 근대적응은 근대극복 노력을 포함하는 이중과제의 일부로서만 장기적 성공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새로이 쓴 덧글을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최근의 한·일 경제전쟁에 대한 정세 분석까지 시도하며 치열한 현장감각을 보여준다. 그는 촛불혁명에 반대하는 한·일 수구세력의 연대행동이라는 전에 없는 현상이 지금 나타난 것을 남북화해의 진행과 연결시켜 구명하면서, (친일행위를 한 인물들과 그 인적 청산에 초점이 맞춰지는) ‘친일잔재’가 아니라 (‘친일파’의 국한을 넘는) ‘일제잔재’가 분단체제에서 어떻게 진화·온존해왔으며 분단체제의 재생산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야를 동아시아 차원으로 넓힌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 임형택은 「3·1운동, 한국 근현대에서 다시 묻다」에서 3·1의 정치적 지향이 ‘민국혁명’임을 논하는 한편, 3·1 이후 좌우 통합을 위한 사상운동에 각별히 역점을 두었던 사실에 주목해 홍명희와 조소앙의 사상을 조명하면서, 중도주의, 즉 절충론이 아닌 진정한 ‘바른 길’의 흐름을 부각한다. 그는 오늘의 촛불혁명이 21세기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한국 근현대가 3·1에 진 채무를 갚는 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72면)고 강조한다.

브루스 커밍스의 「독특한 식민지, 한국」은 세계체제 내에서 식민지 조선을 반주변부로 일본을 중심부로 위치짓고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한반도의 문제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인식하게 돕고 있다. 커밍스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화해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제기하며 20세기가 진행될수록 “일본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처럼 재앙으로 이끌려갔다”고 평가하면서,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원만하게 살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남아 있는 우려를 아직 불식하지” 못 일본이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로스”(86면)라고 우려한다.

도진순은 「시간(Kairos)과 기억(Memory)」을 통해 정치적 쟁점인 건국론의 역사적 맥락을 짚으면서, 이승만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1919년 건국론을 주장했으며, 그 장막 뒤에는 한성임시정부의 집정관으로 추대된 자신에 대한 선양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밝힌다. 도진순은 한반도 전체로 시선을 확대해보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대한민국의 건국, 이 세가지는 각각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연동하는 동아시아와 3·1운동」에서 백영서는 ‘연동하는 동아시아’와 ‘세계사적 동시성’의 관점에서 3·1을 재조명하는데, 이를 위해 중국의 반일 민족운동인 5·4를 발견적 장치로 삼아 반식민지와 식민지라는 차이가 갖는 의미를 염두에 두고 3·1을 재해석한다. 또한 3·1에 나타난 민의 결집 경험을 주체, 매체, 목표라는 측면에서 분석한 백영서는 3·1이 근대성의 지표인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정치제도화의 기준에서 볼 때는 단기적인 성취에 실패한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사회 전체의 대대적인 전환을 혁명으로 볼 때 그 결과가 ‘점진적·누적적 성취’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3·1이 ‘계속 학습되는 혁명’ 또는 ‘현재 진행 중인 혁명’이라는 주목할 만한 주장을 펼친다.

정혜정의 「3·1운동과 국가문명의 ‘교(敎)’」는 동학운동을 추동한 동학 및 (동학을 잇는) 천도교와 3·1의 연결고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서양의 종교 개념과 달리 동학이 표명한 교(敎)는 종교와 교육을 아우르는 동시에 정치적 의미를 띠며 또한 국가의 이상을 담지한다고 보는 정혜정은 손병희에 대한 재평가와 조소앙의 종교사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동학과 3·1의 연속성을 환기하면서, 특히 여성의 참정권을 규정한 ‘대한민국임시헌장’의 선진성의 배경에 동학 증산도의 남녀평등사상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남주는 「3·1운동, 촛불혁명 그리고 ‘진리사건’」에서 ‘민주공화’에 입각한 국민주권이란 측면에서 3·1운동과 촛불혁명의 연관을 고찰하면서, 촛불혁명 이후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평화와 협력’의 한반도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어낼지를 점검한다. 그는 바디우의 ‘진리사건’ 개념을 참조하여 3·1운동부터 촛불혁명까지의 과정을 분석하면서, 시민항쟁과 같은 저항운동을 통해 민주공화의 해방적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흐름이 지속되었으며, 그 속에서 근대적응 근대극복이라는 이중과제의 긴장도 유지되어왔다고 파악한다. 또한 촛불혁명으로 전환이 이루어진 남북관계에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형’ 통일의 조건을 형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선거법이 개정되어야 한반도체제로의 전환을 이룰 정치연합을 구축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3·1 이후 누적되어온 운동과 사상

이지원은 「3·1운동, 젠더, 평화」에서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3·1에 참여한 여성의 주체적 경험을 집중 분석한다. 그는 여성들이 자신들만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동하여 3·1운동을 조직하고 3·1운동 현장의 폭력적 진압과 구금 이후의 성적 폭력에 맞섰으며, 이를 통해 제국주의 지배와 남성 중심의 규범에 저항하는 민족적·젠더적 해방의 통쾌함을 맛봄으로써 사적 경험이 공적 영역으로 전화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여성이 인권의 주체로서 식민주 폭력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라 가부장적 규범을 넘어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발휘함을 밝히는 이지원의 연구는, 우리 근대가 단순히 적응이나 아니면 극복의 시각에서만 파악될 수 없는 복합적 과정임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홍석률은 「4월혁명, 민주항쟁의 가능성과 현실성」에서 한국전쟁 휴전 7년 만에 일어난 4·19의 전개과정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면서, 4·19를 비롯해 과거 거듭되었던 민주항쟁이,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주었음에도 번번이 중간에서 좌절되거나 아주 제한적인 성취만을 거둔 것은 냉전·분단 상황이라는 한국사회의 기본적인 구조가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촛불항쟁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특히 특정 집단이 항쟁의 성과를 전유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다른 요구들을 무시하거나 부차화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기욱의 「5·18 정신의 보편화를 위하여」는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지형이 형성되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5·18민주화운동을 개관한다. 신기욱은 5·18민주화운동이 1980년대 미국의 정책을 전세계적으로 제한된 형식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쪽으로 바뀌게 하는 데 기여했음을 강조하는 한편, 5·18 정신을 현재화하고 보편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운다.

6월항쟁과 87년체제」에서 김종엽은 87년체제를 사회세력 간의 경쟁의 관점 및 분단체제와의 관련 속에서 해명하고자 한다. 즉 그에 따르면 87년체제와 분단체제의 대립과 갈등은 표면헌법과 이면헌법의 대립으로 나타나며, 양자의 대립은 정치체제에서 표면헌법을 강제하려는 민주파와 이면헌법을 진정한 헌법으로 이해하는 보수파의 대립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는 6월항쟁이 수립한 87년체제와 그것의 작동원리를 담은 헌정체제는 30여년간의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취’ 결코 작지 않지만, 헌정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촛불혁명의 성과가 선거법 개정으로 집약되는 만큼 당면 과제인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87년체제 극복 작업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며 새로운 단계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재건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독특성과 6·15시대」에서 분단 후 최초로 남북 정상이 화해와 교류를 통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획기적 사건인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의 시기를 현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국지적 양상인 한반도 분단체제가 서서히 해체되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그는 이러한 분단체제의 극복이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와 함께 세계체제 전체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바, 촛불혁명으로 마련된 국내 개혁의 동력이 뒷받침된다 6·15공동선언이 제시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남북연합의 길이 충분히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미완의, 혹은 진행 중인 혁명」에서 정헌목은 비폭력 원칙과 도심 광장에서 열린 집회의 가시성을 중심으로 2016~17년의 촛불집회를 고찰하면서, 촛불집회를 통해 부패한 정권을 몰락시킨 집단적 경험과,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해결에 나서 변화를 끌어냈다는 역사적 사실이 부여하는 자신감에 주목한다. 그는 그래서 촛불집회가 마무리된 후 집회 기간의 동력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움직임이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는 가운데, “여성들 몸을 부딪치며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싶은 열망”도 나타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비폭력 대 폭력/정상 대 비정상이라는 이항대립 구조 아래 선별적으로 결합된 ‘비폭력-정상’의 프레임은 그 바깥의 존재들에 대해 지속적인 차별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촛불을 통해 ‘정상화’된 국민국가 대한민국이 포용 가능한 구성원은 누구이며, 어디까지였을까”(370면)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리하여 그는 이상적 대의를 위해 모인 사람들 현실적 조건은 복합적이었던 만큼 극우 포퓰리즘 정치세력이 세계 곳곳에서 부상하는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대안에 대한 상상력을 제약하는 문제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성에 대한 모색이라고 제안한다.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취의 변혁 과정

 책의 논지를 따라 100년의 우리 역사를 다시 볼 때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취” (incremental achievement)의 변혁 과정이라는 큰 흐름이 확연해지지만, 그 100년의 과정은 단선적 발전이 아니라 때로는 심각한 중단이나 퇴보도 겪는 굴곡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런 관점에서 3·1 이래 점진적으로 누적되어 우리 사회가 촛불혁명이라는 중요한 국면에 도달하는 데 작용해왔고 미래사에 영향을 미칠 우리의 주요 사상사적·운동사적 자원을 망라해 차분히 점검하고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 백영서

서장 3·1과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 백낙청

 

1부 촛불의 눈으로 되돌아본 3·1

1장 3·1운동, 한국 근현대에서 다시 묻다 | 임형택

2장 독특한 식민지, 한국: 식민화는 가장 늦게, 봉기는 가장 먼저 | 브루스 커밍스

3장 시간(Kairos)과 기억(Memory): 건국 원년, 건국기념일, 연호 | 도진순

4장 연동하는 동아시아와 3·1운동: 계속 학습되는 혁명 | 백영서

5장 3·1운동과 국가문명의 ‘교(敎)’: 천도교(동학)를 중심으로 | 정혜정

6장 3·1운동, 촛불혁명 그리고 ‘진리사건’ | 이남주

 

2부 3·1 이후 누적되어온 운동과 사상

7장 3·1운동, 젠더, 평화 | 이지원

8장 4월혁명, 민주항쟁의 가능성과 현실성 | 홍석률

9장 5·18 정신의 보편화를 위하여 | 신기욱

10장 6월항쟁과 87년체제: 헌정체제의 관점에서 | 김종엽

11장 한반도 분단체제의 독특성과 6·15시대 | 유재건

12장 미완의, 혹은 진행 중인 혁명: 촛불 이후 한국사회와 새로운 공동성의 모색 | 정헌목

 

수록문 출처

수상정보
저자 소개
  • 백낙청
    백낙청

    1938년생. 고교 졸업 후 도미하여 브라운대와 하바드대에서 수학. 후에 재도미하여 1972년 하바드대에서 D. H. 로런스 연구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했으며 서울대 영문과 교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시민방송 RTV 이사장,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등을 역임하며 민족문학론을 전개하고 분단체제의 체계적 인식과 실천적 극복에 매진해왔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으로 있다.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인간해방의 […]

  • 임형택

    목민심서』 200주년을 기념한 『역주 목민심서』 전면개정판 작업의 교열을 맡았다.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대표,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장, 동아시아학술원장, 연세대 용재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 명예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고문이다. 한문학을 중심으로 국문학‧역사‧사상에 걸쳐 폭넓은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실학의 원전을 발굴‧편역한 것으로 『백운 심대윤의 백운집』 『반계유고』가 있다. 도남국문학상‧만해문학상‧단재상‧다산학술상‧인촌상 등을 수상했다. Born in 1943 in Yeong’am, South Jeolla Province, […]

  • 도진순
    도진순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중국 북경대학교,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한국 민족주의와 남북 관계: 이승만·김구 시대의 정치사』로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하였다. MBC 「느낌표」 선정도서 『백범일지』는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되어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원본을 탈초 교감한 『정본 백범일지』도 출간하였다. 한중일 […]

  • 백영서

    1953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이자 국학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계간 『창작과비평』 주간으로 있다. 현대중국학회와 중국근현대사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계간 『香港中國近代史學報』 『台灣社會硏究』 등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중국현대대학문화연구』 『동아시아의 귀환』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공편) 『대만을 보는 눈』(공편)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思想東亞: 韓半島視角的歷史與實踐』, 역서로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공역) […]

  • 펼쳐보기접기

100주년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2019년 한해는 우리 정부가 추진한 각종 행사뿐 아니라 다양한 주체의 기념활동으로 활기를 띠었다. 이제 축제의 분위기 속에 100주년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을 넘어 성찰에 무게를 둘 때가 되었다. 이 책을 엮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1운동에서 촛불혁명으로”를 표방한 정부의 직·간접적 영향 속에 열린 학술활동도 잇따랐는데 과연 그것이 얼마나 튼실한 성과를 거두었는지 차분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 성과를 출판물에 한정해도 올해의 수확은 자못 풍성하다. 연구자 개인과 연구단체가 다투어 출간한 책들을 훑어보기만 해도, 여러 주제를 키워드 중심으로 서술하는 점이 눈에 뜨이고, 그만큼 다양한 시각이 어우러지고 다채로운 주제와 주체의 발굴이 이뤄진 것으로 높이 평가될 수 있을 성싶다. 그러나 3·1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대를 꿰뚫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안목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여 아쉽다.
계간 『창작과비평』은 올해 봄호 특집에 이어 여름호에 3·1 관련 글들을 연속 게재했는데, 그 취지는 ‘촛불혁명’론을 일찍이 제기한 담론의 당사자로서 그 나름으로 3·1을 새롭게 조명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하되 논의를 더 실차게 갈무리하기 위해 1919년과 2019년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촛불혁명의 눈으로 3·1을 다시 보는 동시에 3·1의 눈에 비춰 촛불혁명을 다시 보는 쌍방향성을 중시한다. 말하자면 역사를 보는 겹눈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난 100년의 우리 역사를 다시 볼 때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취”(incremental achievement)의 변혁 과정이라는 큰 흐름이 확연해진다. 그 100년의 과정이 단선적 발전이 아니라 때로는 심각한 중단이나 퇴보도 겪는 굴곡의 역사임을 깊이 인식하는 시각이기에 현재를 정당화하는 목적론적 역사관과 거리가 먼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3·1 이래 점진적으로 누적되어 우리 사회가 촛불혁명이라는 중요한 국면에 도달하는 데 작용해왔고 미래사에 영향을 미칠 우리의 사상사적·운동사적 자원을 점검하고자 한다.
 
한반도적, 세계사적, 문명론적 관점
여기 실린 글들은 공동연구의 성과가 아니라 필자들이 제각기 공들인 결실을 모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 내면에서 공유되고 있는 주요 특징들이 이 책의 독자적 가치를 빛내준다.
무엇보다 먼저 한반도적 시각이 도드라진다. 백낙청이 “한반도 남쪽(또는 북쪽)에서만 일어나는 변화가 아무리 획기적이라도 그 자체로는 임형택이 말한 ‘거족적’ 운동인 3·1의 나라만들기 기획에 부응했달 수 없다”(22면)고 강조한 대목은 첫번째 특징을 간명하게 표현한다. 이 관점이야말로 1919년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오늘의 현실을 상대화해 보게 촉진하는 핵심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근현대가 3·1에 진 채무를 갚는 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는 임형택의 표현은 깊은 함축을 담고 있다. 여기에 한반도 전체로 시선을 확대해본다면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대한민국의 건국, 이 세가지가 각각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지적한 도진순의 글도 호응한다.
한반도적 시각은 분단체제론에 뒷받침됨으로써 그 구체성을 확보한다 하겠는데, 이 관점은 여러 필자의 글에서 짙든 옅든 공유된다. 4·19의 값진 성과가 실종되어버리는 상황을 분단이라는 요인으로 설명하며 이렇듯 한국 현대사에서 변혁의 새로운 가능성이 빈번하게 좌절되거나 제한적으로 성취된 패턴이 4·19 이후에도 되풀이해 나타난다고 본 홍석률, 87년체제를 사회세력 사이의 경쟁과 투쟁의 관점과 더불어 분단체제와의 연관 속에서 해명하는 김종엽의 글, 촛불혁명 이후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한반도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어낼지를 점검한 이남주의 글이 대표적이다.
그다음으로 동아시아적 및 세계사적 시각도 주목된다. 3·1에 대한 시야를 동아시아 차원으로 넓혀 사고하려는 문제의식을 바탕에 둔 임형택, ‘연동하는 동아시아’와 ‘세계사적 동시성’의 관점에서 3·1을 재조명한 백영서, 세계체제 내에서 식민지 조선을 반주변부로 일본을 중심부로 위치짓고 일본이 한국을 식민화해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제기하면서 “일본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처럼 재앙으로 이끌려갔다”(86면)고 평가한 커밍스,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이 1980년대 미국의 대외정책을 세계 각지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쪽으로 바뀌게 하는 데 기여했음을 강조한 신기욱의 글이 있다. 또한 유재건처럼 6·15남북공동선언(2000) 이후 시기를 현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국지적 양상인 한반도 분단체제가 서서히 해체되는 과정으로 파악하면서, 이러한 분단체제의 극복이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와 함께 세계체제 전체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입장도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공간적인 범위에서 동아시아나 세계사로 넓힌 시각을 직접 구사하지 않지만, ‘근대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론은 근원적으로 세계사를 새롭게 보려는 노력이 응집된 창의적 이론이라 하겠다. 3·1이 한반도에서 주체적 근대(적응)의 출발점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이같은 명제도 3·1이 근대극복 노력의 본격적 출발이기도 했다는 명제를 동반해야 한다고 백낙청은 역설한다. 개항 이전부터 준비해온 한반도의 이중과제 수행이 이때 드디어 본격화되었는데, 근대극복 노력을 포함하는 이중과제의 일부로서만 근대적응이 장기적 성공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비롯해, 3·1과 5·4를 비교하고 두 운동에 대응하는 일본의 자세를 동시에 검토하는 데 이중과제론을 활용한 백영서, 3·1부터 촛불혁명까지 시민항쟁 같은 저항운동을 통해 민주공화의 해방적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흐름이 지속되었고, 그 속에서 이중과제의 긴장도 유지되어왔다고 파악한 이남주의 글이 이어진다. 그밖에 이중과제론을 직접 의식하고 있진 않더라도 그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문제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글들도 있다. 정혜정이 서양의 종교 개념과 달리 동학이 표명한 교(敎)는 종교와 교육을 아우르는 동시에 정치적 의미를 띠며 또한 국가의 이상을 담지한다고 보는 것이나, 이지원이 인권의 주체로서 여성은 식민주의 폭력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규범을 넘어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발휘한다고 보는 것은, 우리의 근대가 단순히 적응이나 아니면 극복의 시각에서만 파악될 수 없는 복합적 과정임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위의 두 특징보다 더 도드라진 것이 문명론에 대한 조명이다. 특히 동학운동을 추동한 동학과 3·1의 관련, 더 나아가 한국 근현대사상사에서 (동학을 잇는) 천도교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그간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감이 있다. 정혜정의 글은 이 한계를 넘어서 동학과 3·1의 연결고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백낙청이 지적하듯이, 동학운동을 거친 민족이기에 3·1의 대규모 민중운동이 가능했고 동학의 개벽사상이 있었기에 민주공화주의로의 전환과 새로운 인류문명에 대한 구상이 한결 수월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의 시야를 동학이나 천도교에 한정할 일은 아니다. 척사와 개화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또다른 노선에 해당하는 사상자원인 개벽사상을 계승하는 (원불교를 비롯한) 여러 민중종교와 사상조류를 지금 당면한 문명대전환의 시대적 과제와 연관시켜 숙고해볼 가치가 있다.
 
혁명 개념의 재구성
이제까지 설명한 세 특징을 연결시키는 고리는 다름 아닌 ‘혁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이 책의 상당수 필자는 ‘3·1혁명’과 ‘촛불혁명’이라는 용어 사용에 적극적인 편이다. 비록 그들이 완전히 합의된 혁명 개념을 구사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것을 새롭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고, 그래야 우리의 지난 100년사의 성취도 세계사 속에서 온전하게 규명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접근하고 있다. ‘촛불혁명’론을 정교하게 다듬은 백낙청은 그것이 다시 성찰하게 만든 혁명 개념을 3·1과 관련해서도 더 발전시키고 점검해볼 필요를 인식하고, 그 지표로 주민생활 전역에 걸쳐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민중의 주체적 역량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주목한다. 같은 시각에서 촛불항쟁으로 실현된 남한의 정권교체가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한반도 전역에 걸친 민중역량의 비약적 증대를 이룬다면 이는 ‘혁명’의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도 역설한다.
우리가 혁명 개념을 재구성하려는 것은 사회 전환에 대한 사유를 활성화하는 일, 다시 말해 이남주가 주목한 바 ‘정치적 가능성’을 다시 열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혁명은 무엇보다 자기 운명을 급진적으로 개선하려는 인간들의 집합적 운동인 동시에 어떤 사건이 ‘자유의 새로운 제도화’를 이룩했는가의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김종엽의 제안도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또한 백영서는 3·1과 5·4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운동 주체의 성취감에 주목하고, 그것이 그후 변혁운동의 지속을 가능케 한 동력이었음을 부각하는데, 이 관점은 정헌목도 공유한다. 그는 촛불집회를 통해 부패한 정권을 몰락시킨 집단적 경험,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해결에 나서 변화를 끌어냈다는 역사적 사실이 부여하는 자신감에 주목한다. 그래서 “여성들이 몸을 부딪치며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싶은 열망”(364면)이 나타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렇게 재해석된 혁명은 단기적 목표의 달성 여부에 따라 갈라지는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에 얽매이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기적 실패는 끝이 아니라 긴 변혁 과정의 구성 부분이고,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진행되고 있음이 실감된다면 혁명은 진행 중인 것이다. 혁명의 ‘도래’와 ‘완성’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35면) ‘현재 진행 중인 혁명’ 또는 ‘계속 학습되는 혁명’이란 인식은 여러 필자에게 공유되고 있다.
지난 100년의 우리 역사는 사상과 운동 경험이 계속 학습되는 ‘점진적·누적적 성취’의 변혁 과정, 달리 말하면 “반전이 거듭되는 굴곡을 감당한 점증하는 과정으로서의 변혁”(149면)이다. 이 특성에 기반한 혁명의 재인식은,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을 넘어 긴 변혁의 과정을 감당하고 있는 비서구의 여러 지역에서 전개되는 끈질긴 투쟁과 호응한다. 그들은 혁명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치고 그간 축적된 경험의 계보를 이론화하며 그로부터 변혁의지를 다지는 과제를 수행하는 중이다. 역사를 탈정치화하지 않고 ‘정치적 가능성’을 체감하며 민주적 약속을 전망하기 위해 우리가 혁명 개념을 재구성하려는 일이 지구적 차원에서 상호 연관된 것이자 한국인의 경험이 반영된 세계사적 작업임을 확인하는 일도 3·1에 대한 책무를 다하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1919년과 2019년의 치열한 대화
끝으로 이 책의 구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둔다. 먼저 서장이라기보다 총론에 가까운 백낙청의 글은 독자에게 이 책 전체를 이해하게 돕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특히 추기를 달아, 현재 직면한 정세의 분석까지 시도한 치열한 현장감이 돋보인다. 그는 촛불혁명에 반대하는 한·일 수구세력의 연대행동이라는 전에 없는 현상이 지금 나타난 것을 남북화해의 진행과 연결시켜 구명하면서, (‘친일잔재’가 아닌) ‘일제잔재’가 분단체제에서 어떻게 진화·온존해왔고 분단체제의 재생산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겹눈’의 견지는 제1부 ‘촛불의 눈으로 되돌아본 3·1’에 실린 여섯편의 글이 공유하고 있다. 3·1 이후 좌우 통합을 위한 중도주의, 곧 절충론이 아닌 진정 ‘바른 길’의 흐름을 부각한 임형택, 한반도의 문제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인식하게 돕는 커밍스, 정치적 쟁점인 건국론의 역사적 맥락을 짚으면서 1919년 건국론의 장막 뒤에는 한성임시정부의 집정관으로 추대된 이승만 자신에 대한 선양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밝힌 도진순, 5·4를 발견적 장치로 삼아 3·1을 재해석하면서 촛불혁명의 연원을 찾아본 백영서, ‘대한민국임시헌장’의 선진성의 배경에 동학과 증산도의 남녀평등사상이 있음을 보여주는 정혜정, 그리고 촛불혁명이 이끌어낸 남북관계의 전환에 ‘시민참여형’ 통일의 조건을 형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 선거법이 개정되어야 함을 강조한 이남주의 글들이 있다. 세분의 역사학자를 비롯해, 한문학연구자, 정치학연구자, 철학연구자가 국내외에서 참여한 분과학문 횡단적 작업임이 이채롭다.
제2부 ‘3·1 이후 누적되어온 운동과 사상’에는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취”의 변혁 과정으로서의 100년의 우리 역사를 다시 보게 하는 여섯편의 글이 실려 있다. 평화와 인권의 가치란 관점에서 3·1에 참여한 여성의 주체적 경험을 집중 분석한 이지원, 4·19가 분단체제하의 전국적 사태 변화와 맞물려 변전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묘사한 홍석률, 5·18민주화운동을 세계사적 시각에서 상세하게 개관하면서 그 정신을 현재화하고 보편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우는 신기욱의 글이 눈길을 끈다. 김종엽은 87년체제가 헌정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취가 결코 작지 않지만, 이제 당면 과제인 선거법 개정을 통해 87년체제 극복작업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다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금 덜 주목되는 감이 있는 ‘6·15시대’의 의미를 다시 환기하는 것이 유재건의 글이다. 그는 6·15공동선언이 제시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남북연합의 길은 촛불혁명으로 마련된 국내 개혁의 동력이 뒷받침된다면 값진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끝으로 정헌목은 극우 포퓰리즘 정치세력이 세계 곳곳에서 부상하는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대안에 대한 상상력을 제약하는 문제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성에 대한 모색이라고 제안한다. 여기에도 국내외에 걸쳐 역사학자 세분, 사회학자 두분, 인류학자 한분이 참여한 분과횡단적 특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은 이미 공간(公刊)된 적이 있지만 필자들이 전폭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수정하거나 덧글을 붙여 기고해주었다. 엮은이의 요청에 응했다기보다는 그분들이 이 책의 시대적 가치를 깊이 공감한 덕이다. 한분 한분의 정성어린 협력에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책의 기획에서부터 자잘한 실무 진행까지 주도적으로 챙긴 창비 인문사회출판부의 강영규 부장의 노고를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엮은이의 감사보다는 폭넓은 독자들의 성원이 그분들의 노고에 대한 실감나는 보답이 될 것이다. 일차적으로 한반도 안팎의 한국어권 독자를 염두에 두었으나, 점차 언어의 경계를 넘어 더 널리 소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9년 12월
엮은이 백영서
0 reviews
리뷰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