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미술을 꿈꾸다
민족예술운동의 선구자 고(故) 김윤수 선생의 저작집 출간
국립현대미술관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맹 이사장, 계간 『창작과비평』 발행인 등을 역임한 고 김윤수 선생의 1주기를 맞아 『김윤수 저작집』(전3권)이 출간되었다. 선생은 1960년대 이래로 민족예술과 민중미술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얼리즘 미학 이론의 대부로 활동하며 예술계를 대표했던 미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이다. 또한 군사독재 시기 예술계의 사회참여를 이끌며 민주화운동에 굵직한 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2018년 향년 82세로 선생이 별세한 뒤 구성된 ‘김윤수 저작집 간행위원회(위원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지난 1년 동안 선생의 생전 저술을 모으고 다듬어 세권의 저작집으로 엮어냈다. 미술비평과 명작해설, 전시회 소개문 등 당대의 예술현장에 몸담았던 고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을 주제별로 묶었고, 후학들의 회고담과 인터뷰를 부록에 담아 선생을 기리는 마음을 남겼다. 이 저작집에 한데 엮인 김윤수 선생의 저술은 예술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 했던 한 시대의 예술비평이 성취한 빛나는 유산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또 하나의 현장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김윤수 저작집』은 선생의 삶을 세가지 모습으로 조명한다. 제1권 『리얼리즘 미학과 예술론』은 미학자로서, 제2권 『한국 근현대미술사와 작가론』은 미술사가로서, 제3권 『현대미술의 현장에서』는 미술평론가로서 선생이 남긴 글들이다. 미술인들의 영원한 스승이자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선생은 이처럼 성실한 학자이자 예리한 비평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치열하게 살며 시대의 부름에 사명을 다했다. 그리고 이 다양한 모습들은 다시 ‘민족의 길, 예술의 길’이라는 큰 줄기에 모여 시대를 밝힌 스승 김윤수의 삶을 단단하게 증언한다.
“참된 리얼리즘은 휴머니즘”
예술과 사회를 사랑했던 미학자, 미술사가, 미술평론가의 삶
오늘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대중은 기득권에 기대는 엘리트주의 예술을 더이상 반기지 않고, 예술가에게 그 존재가치를 증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급변하면서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바람직한 공존, 새로운 인간성을 상상하는 데 예술가가 기여해줄 것을 기대한다. 오늘날 김윤수 선생의 글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선생은 일생 동안 누구보다도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예술가와 독자를 설득해왔다. 또한 예술의 창조성이 가장 빛날 때야 비로소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선생이 화두로 삼았던 리얼리즘은 예술을 통해 인간을 더욱 존중하는 세상을 열기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이 저작집의 글들이 씌어진 이후 시간이 흐르고 세상도 어느정도 바뀌었지만 김윤수 선생이 남긴 인간과 예술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은 또다른 변화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우리 근현대미술과 작가 재조명
진보적이고 날카로운 미술사가의 시각
김윤수 선생이 미술계에 남긴 큰 업적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정리하고 재조명한 것이 꼽힌다. 제2권 『한국 근현대미술사와 작가론』에는 우리 미술사를 날카롭게 분석‧정리하고 근현대 작가들에 관한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작가론을 발표하며 미술사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 글을 모았다. 선생이 민중미술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우리 미술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해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선생은 생전에 단 한권의 저서를 펴냈다. 우리 미술계의 뿌리를 정신사‧사회사적 시각에서 조명한 5편의 원고를 엮은 『한국현대회화사』(한국일보사 1975)다. 제2권의 제1부 ‘한국현대회화사’에는 지금은 절판된 이 책을 그대로 실어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한다. 한국미술사가 편년 중심에 머무르는 것을 극복하고 발전적인 예술론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 선생의 목소리가 담겼다.
제2부 ‘한국 근현대미술사 논고’에는 우리 현대미술을 거시적인 시각에서 조명한 평론을 묶었다. 1980년대 들어 생긴 화단의 변화에 주목하며 화단 안팎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전망과 과제를 제시한 「한국미술의 새 단계」, 우리 근대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전통회화와 서양회화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동양화 모색을 촉구한 「문인화의 종언과 현대적 변모」 등을 모았다.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운동의 태동 과정을 소개하고 ‘한국화’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비평문들이다.
1977년 미술 전문지 『계간미술』이 창간됐다. 유신독재와 군사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옥고를 치르고 대학에서 강제 해직되며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김윤수 선생에게 『계간미술』은 훌륭한 지면이 되었다. 선생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평론활동을 시작했는데, 선생의 비평에 있어서 주요한 주제는 작가론이었다. 『계간미술』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발표한 선생의 작가론을 제3부 ‘작가론’에 담았다. 선생은 대표적인 근현대 작가는 물론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살폈는데, 특히 민중미술계 작가들의 작가론을 게재한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눈에 띄는 기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