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체제와 아프리카

책 소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이행을 예고한 월러스틴의 마지막 질문

세계체제의 위기, 아프리카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

세계체제 분석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잘 알려진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70여년에 걸쳐 아프리카를 연구하고 30여년에 걸쳐 쓴 글을 묶어낸 『세계체제와 아프리카』가 출간되었다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한 국가단위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자본주의가 형성되었다고 상정하는 통념에 대한 도전이었으며근대 세계사에 대한 인식틀뿐 아니라 이론적 차원에서도 통상적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었다『세계체제와 아프리카』는 이 같은 세계체제 분석의 거시적 시각에서 아프리카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을 조명한다아프리카는 1955년 무렵부터 십여년 동안 월러스틴의 주요 연구주제였고그의 학문 이력의 출발점이었다그 자신이 현대 세계의 뜨거운 정치적 문제들과 근대 세계체제의 역사를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학문적 문제들에 대해 주시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프리카 연구 덕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월러스틴은 지금 세계는 500여년 동안 근대의 모습을 빚어내온 자본주의체제로부터 그 후속체제로 가는 이행과정에 있다고 진단하며그 투쟁을 분석하고 더 나은 미래를 일구는 데 영향을 끼치려 노력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이 책에서 그는 근대 세계체제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특히 아프리카가 적절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역할을 맡으려면여기에 어떤 심각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지어떤 도덕적정치적 전략을 따라야 하는지 등에 관해 철저한 토론과 사유를 지속해야 함을 강조했다냉철한 이론가를 넘어서 윤리적 개인으로정치적 인간으로 일평생을 살았던 월러스틴의 마지막 질문과 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월러스틴의 저작을 꾸준히 번역하며 그의 이론과 교감해온 성백용(한남대 교수)이 번역을 맡았고유재건(부산대 명예교수)이 추모 발문을 실었다.

 

아프리카는 세계체제의 이행 과정에서 희망적 요인이 될 것이다

1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에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와 이행그리고 이것이 아프리카에 미친 영향에 대해 주로 논의한다특히 저자는 1960년을 전후로 정치적 독립을 성취했지만 경제적 발전이라는 약속을 실현할 수 없었던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 세력들의 딜레마에 눈길을 돌린다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에서 집권에 성공한 운동 세력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근본적인 변혁을 훗날로 미룬 채 부유한 나라 따라잡기에 매진했고그럼으로써 현 세계체제를 침식하는 동시에 강화하기도 했다고 분석한다그럼에도 저자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투쟁이 현존 세계체제의 안정성을 조금이라도 약화하는 쪽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며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이행에서 아프리카가 관건이 되는 지역이 될 거라는 희망을 내비친다아프리카는 근대 세계체제에서 소외되어 현 체제를 지탱하는 서구의 보편주의 이데올로기에 지적으로 덜 포섭되어 있으며따라서 아프리카야말로 가장 창조적인 통찰조직적 사고의 전환이 가능한 곳일 수 있기 때문이다이렇듯 저자는 흔히 절망의 대륙으로 묘사되는 아프리카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지만그렇다고 해서 아프리카를 특이하고 예외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아프리카의 변화는 세계체제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통찰을 놓치지 않으면서아프리카가 직면한 딜레마와 변화들(민족해방운동들의 권위 실추국가 기능의 쇠퇴사회 인프라의 악화 등)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계체제 전반의 문제임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이 책은 월러스틴의 방대한 세계체제론을 압축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효과적이다세계체제론의 핵심 사유가 그가 아프리카와 자본주의체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빠짐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특히 6장 발전주의와 세계화 다음은 무엇인가?’에서는 지금의 세계체제가 지속 가능한지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종류의 대안적 체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가능한 후보안들을 하나씩 열거하며 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위계제와 양극화를 온존시키는 체제로 갈 것인가한층 민주적이고 평등한 대안적 체제로 갈 것인가 하는 혼돈의 분기점에서 월러스틴은 사람들의 집단적 실천이 그 방향을 좌우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종, 민족, 종족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적 산물이다

2부 정체성 정치의 등장에서는 근래에 와서 정치적 투쟁의 큰 쟁점이 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관점에서 아프리카의 딜레마들을 다루고 있다특히 흑인백인인도인혼혈인 등 매우 다양한 종족집단이 모여 살고 피부색에 따른 주민등록과 거주구역 제한이 법률로 시행되었던 남아프리카에서 이 문제는 뜨거운 사회적 쟁점이었다저자는 5장 민족성의 구성인종주의민족주의종족성에서 1984년 아프리카민족회의의 공식기관지 지면에서 소위 유색인’(so-called Coloured)이라는 표현을 놓고 벌어진 논쟁을 자세히 소개한다. ‘소위라는 표현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유색인의 범주는 무엇이며 그 용어는 정당한 것인지이 용어에 따옴표를 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논쟁은 이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쟁점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월러스틴은 민족성 같은 특정한 인구 집단의 범주 자체가 원초적이거나 본질적인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제도적 구성물일 뿐이라는 상식에서 한발 더 나아간 논의를 펼친다유전적 범주인 인종사회정치적 범주인 민족/국민문화적 범주인 종족집단(ethnic group)과 같은 주요 범주들이 구조적 불평등과 생산노동의 주기적인 재배치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7장 집단 이름 붙이기에서는 오늘날 사회과학계에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범주인 인종계급젠더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논의한다어떤 집단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 것각 집단에 위계질서를 부여하고 무엇에 우선권을 둘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쟁점이자 도덕적 과제임을 강조한다따라서 월러스틴은 우리가 집단을 범주화하고 정체성을 규정할 때 대단히 조심해야 하며정체성을 범주화하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누가 어떤 이득을 끌어내는지를 예의주시해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이러한 통찰은 그 어느 때보다 정체성 정치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다

 

냉철한 이론가, 윤리적 개인, 정치적 인간 월러스틴의 실천적 사유

3부 아프리카 사상가들의 시각에서는 세계체제와 아프리카에 관한 사유와 연구의 두드러진 사례들을 주요 사상가들의 글을 꼼꼼히 분석하며 다루고 있다아프리카 연구의 전반적인 발전 과정을 큰 붓으로 그린 10장 아프리카 연구아프리카 학자들의 진화하는 역할은 아프리카에 대한 월러스틴의 깊은 관심과 통찰을 보여준다. 1950년 무렵까지 주로 인류학의 연구 영역이었던 아프리카는 주로 유럽 세계와의 접촉 이후에 나타난 문화 접변을 중심으로 기술되었으며인류학자들은 부족과 식민 당국 사이의 자유주의적 매개자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이후가 되어서야 학계 내부의 반성과 비판이 제기되고 갈등과 분열이 일어났다고 정리하면서 이 같은 아프리카 학계의 현안들이 세계체제의 변형과 아프리카 내 정치적 투쟁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한다이어지는 네편의 글은 아프리카 연구와 세계체제론에 큰 영향을 준 선구자들을 조명한다현대 아프리카 연구의 개척자 역할을 한 배즐 데이빗슨(11), 세계경제의 작동 과정에서 유럽의 식민지 사회들이 겪은 변화를 연구한 가이아나의 역사가 월터 로드니(12), 세계체제론이 공식적으로 등장하기 10여년 전에 이미 그 이론의 골간을 구축한 올리버 콕스(13), 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영웅이자 20세기 후반 탈식민주의 이론의 상징적 인물 프란츠 파농(14), 이 사상가들의 텍스트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 의미를 거시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읽어내는 월러스틴의 독해를 따라가다 보면 엄정한 이론가이자 분석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글에서 월러스틴은 현 세계체제의 위기와 이행의 문제를 거론한다그는 현 세계체제가 어떤 반체제운동이나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현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막다른 궁지로 내모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그 자체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키워진 모순들이다우리 앞에 진정한 토론과 집단적 선택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행기이며바로 지금 우리가 그 이행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월러스틴은 판단한다이 책을 포함하여 저자가 사유와 글쓰기에 쏟은 한평생의 열정은 이 기회의 시간에 열린 진정한 토론의 장에 개입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목차

서문

 

1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

1장 아프리카와 세계체제: 독립 이후 얼마나 변화했는가?

2장 세계경제 속의 남부 아프리카, 1870~2000

3장 아프리카민족회의와 남아프리카: 해방운동들의 과거와 미래

4장 아프리카에 어떤 희망? 세계에 어떤 희망?

 

2부 정체성 정치의 등장: 세계체제를 통해서 본 아프리카의 딜레마들

5장 민족성의 구성: 인종주의, 민족주의, 종족성

6장 발전주의와 세계화 다음은 무엇인가?

7장 집단 이름 붙이기: 범주화와 정체성의 정치

8장 근대 세계체제에서 이슬람의 정치적 구성

 

3부 아프리카 사상가들의 시각

9장 아프리카는 무엇인가?: 인식론에 대한 논평

10장 아프리카 연구: 아프리카 학자들의 진화하는 역할

11장 배즐 데이빗슨의 아프리카 오디세이

12장 월터 로드니: 역사적 세력들의 대변인으로서의 역사가

13장 세계체제 분석가 올리버 콕스

14장 21세기에 파농 읽기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추모 발문

찾아보기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 분석’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 석학 월러스틴은 193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컬럼비아대에서 아프리카 연구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 맥길대, 뉴욕주립 빙엄튼대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고 페르낭브로델센터 명예소장, 예일대 수석연구학자, 국제사회학회(ISA)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9년 8월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월러스틴은 개별 국가 단위를 넘어 중심부-주변부의 비대칭적 분업체계로 세계 자본주의 구조와 역사를 분석한 논쟁적 저서 『근대 세계체제』(4권)로 사회과학계의 세계화 담론을 주도해왔다. 한국에 소개된 저서로는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반체제운동』(공저)『자유주의 이후』『사회과학의 개방』(공저)『이행의 시대』(공저)『유토피스틱스』『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미국 패권의 몰락』『지식의 불확실성』 『유럽적 보편주의』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공저) 등이 있다. 그외 주요저서로는 The Capitalist World-Economy, the Politics of the World-Economy, Geopolitics and Geoculture, Africa and the Modern World(공저), Race, Nation, Class(공저) 등이 있다.

  • 성백용

    서울대 사양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남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영웅 만들기』(공저), 역서로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세 위계: 봉건제의 상상세계』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생활의 역사』(공역) 등이 있다.

30여년 전에 나는 세계체제에서 아프리카의 역할에 대해 쓴 글들을 책으로 묶어낸 적이 있다. 책 제목은 『아프리카와 근대세계』( Africa and the Modern World )였다. 그 이후로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세계체제 전체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참에 그동안 쓴 글들을 다시 묶어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평론집에서 논의할 문제는 세가지다. 먼저, 내가 근대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라고 불러왔던 문제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거의 500년 동안 근대세계의 모습을 빚어내온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그 후속 체제 또는 체제들로 가는 특이한 이행 과정에 있다. 이 구조적 위기는 향후 30년 내지 40년 동안 지속할 것이다. 있을 수 있는 결과는 두가지로, 우리가 살아온 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일 수도 있고 더 나쁜 체제일 수도 있다. 결과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그 투쟁을 분석하고 그것에 영향을 끼치도록 노력할 수는 있다. 윌리엄 마틴(William G. Martin)과 함께 쓴 것을 포함하여 모두 네편의 글에서 나는 전세계에 걸친 이 구조적 위기가 아프리카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자 했다.
다음으로 논의할 주제는 지난 30년 동안 두드러지게 나타난 정치적 태도인 정체성 정치( identity politics)의 문제다. 정체성 정치는 아프리카에만 특유한 것이 아니라 세계체제 어디서나 정치적 투쟁의 주요 쟁점이 되어왔다. 여기 실린 네편의 글에서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제기되는 아프리카의 딜레마들을 세계체제의 맥락에서 살펴볼 것이다.
끝으로, 그다음 여섯편의 글에서는 세계체제와 아프리카에 걸쳐 일어난 최근의 사태들에 대한 아프리카 사상가들의 분석을 곱씹어볼 것이다.
근대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아프리카가 적절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역할을 맡으려면, 여기에 어떤 심각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지, 어떠한 도덕적 선택안들이 있는지, 또 어떠한 정치적 전략을 따라야 하는지 등에 관한 지적으로 적절하고 면밀한 토론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책은 바로 이 토론에 참여하려는 뜻을 담은 것이다. 그것은 아프리카 사람은 아니지만, 70여년 동안 아프리카에 대한 글쓰기에 관여해왔고 이 지역에 대한 이 같은 관여를 통해 자신이 안다고 주장하는 것의 대부분을 알게 된 어느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다

0 reviews
리뷰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