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책 소개

분단의 상징 베를린은 어떻게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었나

냉전을 무너뜨린 일상의 힘에서 분단 극복의 희망을 찾는다

 

베를린장벽 붕괴(1989) 및 독일 재통일(1990) 30주년을 맞아 냉전체제의 상징에서 분단극복의 모델이자 세계문화의 중심이 된 도시 베를린의 극적인 변모 과정을 복원해낸 『베를린베를린』이 출간되었다. 2차대전 이후 베를린은 냉전체제의 최전선으로서 40년을 보냈다당시 동독 영토 한가운데 떠 있는 섬과 같았던 서베를린은 동서독의 갈등 원인이기도 했지만양측 정부로 하여금 교류를 모색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저자 이은정(베를린자유대학교 한국학과 교수)은 1945년 2차대전 종료부터 2019년 현재까지 독일 통일의 역사적 순간을 두루 살피면서 이제껏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던 베를린 주민들의 생활상과 동서독 교류의 구체적 양상당국 간 협상의 막전막후를 생생하게 추적한다국내외의 기존 관련 도서가 대부분 베를린장벽 붕괴 전후의 지정학을 주목하거나 정치지도자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데 반해이 책은 1984년부터 독일에서 생활해온 저자가 방대한 자료를 직접 살피고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분단된 베를린의 실상을 입체적이고 균형감 있게 집약해냈다베를린과 독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협력 방안의 구체적 로드맵을 연구하고 한반도 평화구축 문제를 세계정세 속에서 파악해온 저자는 대립하는 두 체제 간의 타협과 협력끊임없는 교류가 결국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었음을 드러낸다촛불혁명의 힘으로 급진전을 이룬 남북관계를 소통과 교류의 방향으로 전환시킬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나침반 같은 의미를 제공할 책이라 기대한다

 

 

분단도시 베를린을 둘러싼 다양한 힘의 경합을 그려내다

2019년 11월 9일은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베를린장벽 붕괴 11개월 뒤 독일은 전세계에 통일을 공식 선언했다통일 이후 독일은 유럽연합의 맹주이자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고통일독일의 수도가 된 베를린은 문화와 예술이 가장 자유롭게 펼쳐지는 도시로 자리잡았다『베를린베를린』은 아픈 역사를 딛고 오늘날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문화도시가 된 베를린의 변화를 추적하면서이러한 변화가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음을 밝혀낸다지금의 베를린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 이은정은 동독의 한가운데에 있는 베를린이 어째서 동독의 도시로 귀속되지 못하고 동서로 분단되었는지 그 과정을 1장 독일의 분단과 베를린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베를린의 분단이 기정사실화되기까지 찾아온 두차례의 위기 베를린 봉쇄’(1948.6~1949.5)와 베를린 최후통첩’(1959.1)은 미국과 소련두 냉전세력의 대결에서 비롯한 것이었다베를린 최후통첩 당시 베를린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힘겨루기가 격화되어 핵전쟁까지 거론되었지만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진 않았는데 베를린에서의 전쟁은 유럽 안보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고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위험까지 있었기 때문이다베를린은 강대국의 타협 아래 분단을 맞았고이러한 맥락 속에서 형성된 동서베를린은 통일이 될 때까지 내내 갈등을 빚는 원인이기도 했지만 동독과 서독을 연결해주는 가교가 되기도 했음을 저자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증명해 보인다

베를린 문제는 동독과 서독 간의 문제만이 아니었고 냉전 당시 세계정세를 주도하던 미국과 소련동서진영이 만들어내는 갈등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했다하지만 그러한 세계정세의 체제에 종속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베를린에서 일상을 살아내던 주민들의 열망그리고 분단으로 겪는 주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베를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정치인들의 원칙 속에서 베를린은 독자적이고도 실용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해냈다저자 이은정은 동독과 서독정부와 주민세계정세와 독일정치 등 베를린 문제를 둘러싼 여러 주체들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이 각각의 주체가 만들어낸 동서베를린의 분단의 장면들을 풍성하게 그려낸다

 

 

분단이라는 정치적 구획을 초월하는 일상과 생활의 힘

『베를린베를린』에서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분단 당시 동서베를린 주민들이 어떻게 분단을 의식하며 살았는지 그 생활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2장 차단이 아닌 분단 3장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저자는 분단도 막을 수 없었던 동서베를린 주민들의 출퇴근과 경제활동삼엄한 감시와 검열 속에서도 왕래하던 우편통신실무적·기술적 차원의 협력을 가능하게 한 하수도 시설일상적인 접촉과 교류를 만들어낸 대중교통 체계 등을 섬세하게 포착해 동서독 교류사를 흥미롭게 풀어낸다같은 일터에서 동서독 주민이 함께 일하는 광경을 묘사한 부분이나 도시철도를 타고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주민들의 경험을 읽다보면분단이라는 정치적 구획을 초월하는 일상과 생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또한 19세기에 이미 베를린 전체에 구축되어 있던 인프라망(우편체계상하수도도시철도 등)은 분단되었다고 바로 폐기하거나 차단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분단 이후에도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물론 이러한 시설들이 반드시 탈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때로는 동독과 서독이 자신의 체제를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했고동서독 간의 관계가 경색될 경우 사용이 통제되기도 했지만시설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실무자 간의 교류와 협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저자는 이 과정에서 작성된 협상문들과 논의 내용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서베를린과 동독이 합리적인 접근 방법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고정치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사안은 배제한 채 기술적 교류에 집중했음을 밝혀낸다이러한 최소한의 소통이 베를린장벽이라는 거대한 분단의 벽에 끊임없이 구멍을 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냉전 속에서도 합의점을 만들어낸 협상의 기술을 파헤치다

이 책의 또다른 백미는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긴장감 넘치는 협상 과정과 극적인 타협의 순간들이다저자는 4장 장벽접근을 통한 변화의 시작에서 네개의 협정을 맺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통행증협정4대국협정통과협정여행방문협정을 거치면서 동독과 서독(서베를린)이 합의가 불가능한 부분을 인지하고 합의가 가능한 사안부터 협상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인상적으로 펼쳐진다양측의 협상 과정에서 가장 합의하기 힘들었던 문제는 베를린의 법적 지위에 대한 부분이었다소련과 동독은 동베를린을 동독의 수도로 정하고 서베를린을 독립된 주권적 단위로 규정해 서독과 분리시키려 했다이와 달리 서독과 서방연합국은 동서베를린 전체에 대한 연합국의 공동관리 원칙을 고수하며서베를린을 서독 연방주의 하나로 간주했다이러한 명백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협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민감한 내용은 협상 테이블에 아예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서베를린의 시장이었던 빌리 브란트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정치인으로 꼽을 수 있다. ‘작은 걸음 정책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처음부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고한 걸음도 내딛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걸음이라도 내딛는 것이 좋다는 믿음 아래 추진한 브란트의 정책은 동서베를린더 나아가 동서독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데 발판이 되어주었다

독일 특유의 실용적 접근은 통일 이후에도 이어졌다현재 베를린에는 국립도서관국립대학예술극장 등이 모두 두개씩인데 이는 분단시절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대표 기관들을 한쪽으로 통합하거나 폐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지금까지도 원래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는 여러 기관들 덕분에 베를린은 세계 그 어느 도시보다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도시가 되었다이는 분단이라는 어두운 경험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적 태도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실용적 관점은 분단체제 전환을 앞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목차

여는 글

 

1장 독일의 분단과 베를린

   첫번째 위기, 베를린 봉쇄

   두번째 위기, 베를린 최후통첩

 

2장 차단이 아닌 분단

   경계를 넘어 통근하는 사람들

   중단되지 않은 우편통신

 

3장 막을 수 없는 흐름

   지하의 연결망, 하수도

   지상의 연결망, 대중교통

 

4장 장벽, 접근을 통한 변화의 시작

   분단으로 인한 고통의 극복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

 

5장 장벽을 넘어 부는 바람

   베를린을 위한 콘서트

   무너진 장벽

 

6장 다시 하나가 된 베를린의 열망

   통일독일의 수도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닫는 글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이은정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수학하고, 독일 괴팅겐대학교 정치사상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할레대학교에서 교수자격(Habilitation)을 받았다. 1984년부터 독일에서 생활하며 정치사상과 지식의 변동, 통일과 체제전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정치사상사에 새로운 분석틀을 도입하여 상호문화적인 연구를 개척한 공로로 아시아 출신 최초로 베를린–브란덴부르크 학술원 정회원에 선출되었다. 한국과 독일 문화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제8회 이미륵상을 수상했다. 2008년 베를린자유대학교 한국학연구소를 창설했으며, 현재 한국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다.

1992년 겨울날, 어느 오후를 잊지 못한다. 그날 나는 스승 리하르트 자게 교수님과 함께 베를린 시내를 걷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제자에게 독일 역사의 현장을 꼭 보여주고 싶어하는 자게 선생님과 베를린 도시 역사를 전공한 사모님과 함께 며칠에 걸쳐 아직 분단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베를린의 구석구석을 답사하듯 걸어 다녔다. 포츠담 광장을 가르던 장벽은 없어졌지만 넓은 공터는 폐허인 채로 개발을 기다리고 있었고, 제국의회 의사당 건물에는 전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브란덴부르크문과 동베를린 거리의 건물들은 모두 매연 때문에 검은색을 띠었다. 동베를린의 중심가였던 프리드리히 거리는 서베를린의 중심가인 쿠르퓌르스텐담 거리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고 어두웠다.
그즈음 누군가 나에게 언젠가 베를리너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면 나는 웃으며 장난치지 말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 온 지 35년이 된 나는 그 절반의 시간이 지난 2008년부터 베를리너로 살고 있다. 이제 내 삶의 터전은 베를린이다. 베를린의 하늘 아래 사는 일은 행복하다. 그전의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는 1990년대 후반부터 베를린을 오가며 이 도시가 새롭게 변해가는 모습을 잘 지켜볼 수 있었다. 베를린장벽 너머 동쪽 지역은 이전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졌다.
21세기 베를린은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꿈과 열망을 안고 모여드는 도시가 되었다. 저녁이면 한산해지는 독일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서는 밤에도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곳곳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는 다양한 실험극들이 무대에 올라오고, 젊은 음악가들과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이벤트가 계속 열린다.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베를린은 가슴을 뛰게 만드는 도시다.
또한 베를린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포츠담 광장과 브란덴부르크문을 잇는 도로 바닥에 가늘게 새겨져 있는 장벽의 흔적은 어떠한 분단도 영원하지 않고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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