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3 2019년 3호(통권9호)

책 소개

여행, 다른 가치를 실천하는 이동

일상과 일상 바깥을 함께 질문하기 

 

주목: 여행, 다른 가치를 실천하는 이동

『문학3』 2019년 3호가 출간되었다. 이번호 주목란에서는 ‘여행, 다른 가치를 실천하는 이동’이라는 주제로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삶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으로써의 여행에 대해 살펴보았다. ‘일상 바깥을 향한 이동’이라는 제한적인 의미를 넘어, 자신이 있는 곳에서부터 삶의 풍경을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이번 기획을 통해 우리가 이동을 통해서 무엇과 만나(려 하)는지,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동시에 지금 있는 곳에서 만들어내는 시작의 방향성을 어떻게 구축할지 그 상상의 범위를 넓힐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청년문제 연구자 류연미의 글은 최근 청년 세대의 여행을 진단한다. 청년 세대의 여행 경험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지만 여행을 떠나는 장소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시도는 늘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짚고, 그럼에도 “자아를 두고 떠나온” 여행이라는 시공간적 단절이 일상에 대한 실험으로써 갖는 의미를 경쾌하게 환기한다. 이어 문학평론가 오은교는 장류진 장희원 이현석 박서련 지혜 황정은의 소설을 중심으로 최근의 한국 소설에서 나타나는 여행과 동행의 장면을 살핀다. 오늘날의 여행 서사가 인간관계의 갈등과 화합의 조건을 어떤 방식으로 탐색하는지, 그 속에서 한 인물이 처한 현실과 인식의 지정학적 위치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논하고, 여행 서사가 가질 수 있는 희미한 연결감의 가능성을 가늠해본다. 

각기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방식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세편의 글이 이어진다. 영상 제작자 이주영은 현재 가족과 함께 캠핑버스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기를 보내주었다. 현지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한 단편 영화 제작 워크숍 이야기와 “땅이 아닌 ‘살아 있음’으로 뿌리 내리”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을 진솔하고도 담백하게 다룬다. 이어 여행 작가 정효정이 그동안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행과 안전한 여행의 실천을 고민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란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게 된 과정과 여성 여행 작가로서 그간 받아온 악플에 대한 분석을 유쾌한 필치로 그린다. 마지막으로 공공문화기획자이자 제주 여행 공간인 삼달다방의 대표 이상엽이 삼달다방에서 기획한 장애인 여행의 순간을 되짚는다. ‘삶은 여행이고 여행이 자유로워야 한다면 그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해야 한다’는 말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글이다. 

 

창작과 중계

이번호 소설란은 박선우 손보미 장희원 조갑상의 작품과 원고모집으로 선정한 서수진의 작품으로 채웠다. 다양한 서사에 각기 다른 시선과 세계가 담겨 여느 때보다 풍성하다. 중계 코너에서는 바둑TV 진행자 강나연, 디지털 콘텐츠 PD 김보미, 연극 연출가 김진아가 수록 소설들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었다. 시란에는 이현승 장혜령 허연, 그리고 원고모집을 통해 이문경의 작품을 선정해 수록했다. 여운이 길게 남는 아름다운 시편들이다. 시 중계는 김복희 시인, 미술작가 나미나, 에세이스트 송은정이 함께해주었다.

 

현장과 시선

2018년 6월 청계천 베를린 장벽에 그래피티를 했다는 이유로 한 미술작가가 기소되었다. 피고인을 변호했던 강태리 변호사가 사건의 발단과 국민참여재판의 진행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예술의 표현 영역에 대한 질문과 함께 공공의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가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글이다. 한편 난민현장 활동가 송다금은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에서의 발언, ‘난민도 사람이다’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을 좇아 동물권까지 세심하게 환기하며 피해자를 정형화하고, 피해의 굴레를 반복시키는 사고방식에 대해 논한다. 이어 같은 난민현장 활동가이자 시각문화 연구자인 전솔비가 일상 속 미디어를 통해 전시되는 난민 이미지를 점검하고 우리 안의 난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묻는 글을 보내주었다. 최근 한국 사회의 난민수용에 대한 논의가 깊어지는 가운데, 각기 다른 관점으로 치열하게 난민을 사유하는 두 글이 난민을 상상하는 방식과 태도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본다. 시선란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조우리가 경북 상주에서의 일상을 그린 일러스트와 짧은 글을 보내주었다. 자연이 주는 온전한 휴식과 여유가 느껴지는 그림으로, 「문득 하늘」이라는 작품은 이번호의 표지로 쓰였다. 『올해의 미숙』의 작가 정원은 「구십구 프로 프라다」라는 제목의 단편 만화를 선보인다. 아파트 건설 전의 매립지를 배경으로 상실에 대한 감각이 겹겹이 쌓이며 긴 여운을 남긴다. 

 

문학웹과 문학몹

1월부터 시작한 문학웹(www.munhak3.com)의 시 연재 코너 ‘시작하는 사전’은 노국희 정다연 정은영 박승열 강지이 한연희 정재율 이정훈의 신작시로 연재를 이어왔다. 12월 연재 마무리까지 이다희 김기형 조온윤 전호석 김지연의 작품이 계속 올라갈 예정이니 끝까지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3×100’ 코너는 6월부터 8월까지 강화길 소설가의 「대불호텔의 유령」을 연재했다. 매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7월에는 문학몹 열번째 이야기 ‘오싹오싹 낭독회─대불호텔의 유령’을 기획해 독자들의 참여를 받아 작품 대부분을 함께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장류진 서현경 아다니아 시블리의 각기 개성 강한 단편도 연재를 마쳤다. 오는 10월부터 새로 시작되는 김성중 소설가의 연재와 함께 ‘여성과 몸’이라는 주제로 선보일 산문 연재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목차

안희연           유념의 계절입니다

 

주목           여행, 다른 가치를 실천하는 이동

류연미           비장소의 이방인과 자아를 찾지 않는 여행

오은교           손절과 벤딩

이주영           우리 네 식구는 바퀴 위에서 산다

정효정           쫓아오는 조상신 없다

이상엽           제주로 떠나는 사람 여행, 삼달다방 이야기

 

이문경           흉몽/하지

이현승           천국의 문/질문 있는 사람

장혜령           검은 돌은 걷는다/모래의 책

허연           트램펄린/불타는 드라이브

중계           좀더 내 것이 된 기분 김복희 나미나 송은정

 

소설

박선우           느리게 추는 춤

서수진           웰컴 투 아메리카

손보미           크리스마스의 추억

장희원           고요와 향연

조갑상           원작과 각색

중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 강나연 김보미 김진아

 

현장

강태리           그림 그릴 수 있는 베를린 장벽을 꿈꾼다

송다금           구조되지 못한 동물, 도착하지 못한 난민

전솔비           여러겹의 ‘본다는 것’, 그리고 마주침의 순간들

 

시선

조우리           경북 상주에서의 일상

정원           구십구 프로 프라다

수상정보
저자 소개

유념의 계절입니다

 
어느덧 가을의 문턱입니다. 맹렬했던 여름과 작별하면서, 어떤 의식처럼, 올여름은 내게 무엇이었나 곰곰 생각해보게 됩니다. 올여름 제가 보았던 가장 인상적이었던 풍경은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빙하 장례식’이었어요. 무심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마주한 장면이었는데, 700년간 레이캬비크 오크(OK) 화산을 뒤덮고 있던 빙하가 기후 변화(지구온난화)로 사라지게 되자 애도의 의미로 장례식을 거행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이슬란드 총리, 환경운동가, 기후학자 등이 참석한 그날의 장례식에선 ‘미래로 보내는 편지’라 적힌 추모비가 세워졌습니다. 화면을 통해 그곳을 마주하는 내내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떠오르더군요.
 
‘아이슬란드(Iceland)’와 ‘그린란드(Greenland)’에 얽힌 또다른 이야기도 생각났습니다. 북극권에 더 가깝고, 국토의 85%가 얼음으로 뒤덮인 땅은 사실 그린란드인데(그에 비해 아이슬란드는 국토의 11%만 빙하인 데다 기후도 온난하고 수목도 푸른 편이라고요) 최초 이주민이었던 바이킹들이 그린란드에 이주민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얼음(Ice)으로 뒤덮인 땅을 일부러 그린(Green)이라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 반대로 살기 좋은 아이슬란드에는 외부인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불모지 같은 이름을 붙여놓았다는 이야기. 바이킹들이 바꿔놓은 이름 때문에 땅은 스스로의 정체성과는 어긋나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제 그것은 하나의 고유명사이자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땅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애석한 일일까요, 그저 피식 웃게 되는 농담일까요?
 
어쩐지 저는 이 두 에피소드가 문학에 대한 은유처럼 여겨집니다. 사라진, 사라질 것들을 기념하여 비석을 세우는 마음은 모든 기억에 바치는 헌시 같았고, ‘사실’ 안에 다른 ‘진실’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시선의 확장과 발견이야말로 문학의 중요한 몫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문학3〕이 ‘문학 – 삶’으로 잘못 읽히기를 바라는 바람처럼 말입니다.
 
어느덧 가을이 되어 또 한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한잔의 차를 마시기까지의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찻잎을 재배하고, 채엽하고, 몇번의 덖음(찻잎을 볶아서 익히는 과정)과 유념(찻잎을 비벼서 물에 잘 우러나게 하는 과정)과 건조의 시간을 지나야만 당도하는 세계. 삶의 모든 일은 그토록 요원하고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그중에서도 저는 ‘유념’이라는 과정에 유독 마음이 기웁니다. 찻잎을 비빈다는 것은 찻잎 입장에서 보면 마찰로 인해 짓이겨지거나 상처 입는 과정일 수도 있는데, 왜 그러한 과정에 유념(揉捻)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동음이의어인 유념(留念), 즉 ‘잊거나 소홀히 하지 않도록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여 생각한다’는 뜻의 유념이 떠오르는 것은 그저 우연일까요. 그린란드가 사실은 얼음으로 뒤덮인 불모의 땅이듯, 이 우연 안에도 무언가 다른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은 질문을 조금 바꿔볼 수도 있겠습니다. 한잔의 차에 이르는 과정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면,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계시나요?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한 삶에서, 무엇을 유념하고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붙잡으며 살고 계시나요?
 
잘 우러나기 위한 계절. 하늘이 높아지는 계절. 바야흐로 유념의 계절입니다. 이 계절 당신에게 〔문학3〕이 향긋한 한잔의 차가 될 수 있기를. 차라고 쓰기는 했지만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그래서 우리를 좀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질문의 시작점이기를 바랍니다.
 

문학3 기획위원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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