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한 손

책 소개

슬픔과 웃음을 버무려 공손한 밥을 짓는 시인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래 농촌의 따스함과 도시생활의 불화를 관통하면서 화해와 인정의 세계를 노래해온 고영민 시인의 두번째 시집 『공손한 손』이 출간되었다. 첫시집 『악어』(2005)를 펴낸 이래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가족공동체와 향수, 따뜻한 추억을 불러내 사라져가는 풍경을 쉽고 편안한 언어와 웅숭깊은 사유를 통해 펼쳐 보인다.

그의 시는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집착과 그리움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추억을 환기하는 데서 머물지만은 않는다. 독특한 어법을 통해 추억의 가치는 늘 현재적 의미를 띠고 강한 울림을 던져준다는 데 그의 시의 특장이 있다. 손택수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들에는 “그늘지고, 흐릿하고, 야윈 풍경들에 대한 편애가 유독 눈에 띈다. 야단스럽게 들떠 있는 말들은 결코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듯이, 쓸쓸하게 저물어가는 생의 뒷면을 차분히 응시하고 있는 그의 시는 안온하다.”(손택수 ‘추천사’) 그렇다고 그의 어조가 과거지향적이거나 수동적, 의고적이라 보기는 힘들다. 얼핏 보면 낯익은 듯한 소재들에 경쾌한 생명력을 부여하고 시원스럽게 돌파해가는 것은 고영민만의 독보적 해학과 유머를 통해서이다.

 

 

한나절 사과나무에 약을 친 아버지가 물큰 농약냄새를 풍기며 내게 걸어와 마스크를 벗으며 하시는 말이, 너 하루종일 약통에다 뭐라 썼는지 내 다 안다!라며 내 머리통을 어루만지며 웃으시는데//내가 저은 약통의 농약이 어머니가 당기던 길고 긴 호스를 타고 흘러 아버지가 들고 있는 분무기 노즐을 빠져나올 때 ∼발씨발씨발, ∼지보지보지 이렇게 나왔던 걸까, 아버지랑 어머니는 농약에 취해 회똘회똘 집으로 향하고 나는 국광처럼, 홍옥처럼, 아오리, 부사처럼 얼굴이 자꾸만 빨개졌다(「과수원」 부분)

 

이어 여섯 아들들이 한명씩 차례대로 불려나와 어머니 앞에서 자랑스레 심벌을 흔들어댄다. 어머니는 과수원을 하다 사고로 죽은 넷째 형도 불러세우고 그 죽은 아들 역시 어머니 앞에서 으하하하! 거대한 심벌을 흔들어댄다. 바바리맨은 시골집 안방 텔레비전 위에 깃을 여민 채 오늘도 대기 중이다. 고단한 저녁, 어머니는 가끔씩 아들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그때마다 바바리맨은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은 알몸으로 으하하하! 가장 크고 자랑스러운 자지를 흔들어드린다.(「효자」 부분)

 

 

인용시는 각각 부모의 일을 도와 “농약이 바닥에 가라앉지 않도록 하루종일 약통을 저어주는” 지루한 작업중에 생겨난 일화와, 환갑이 지난 큰형이 팔순노모에게 추석선물로 ‘바바리맨 인형’을 선물하면서 일어나는 일화를 담고 있다. 이처럼 고영민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에서도 돌발적인 이미지와 비유를 통해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의 시어들이 전혀 음탕하지 않은 것은 이처럼 농익고 능청스러운 특유의 어법에서 기인한다. 그의 시가 단지 한바탕 웃고 마는 것에 그친다면 공허한 유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고영민은 해학 속에 내밀한 슬픔과 누대에 걸쳐 이어져온 사랑과 인정을 심어놓는다. 웃음과 슬픔을 비벼내 시로 만드는 능력은 여느 시인보다 탁월한 그만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어린 시절 치약 한통을 다 먹고서 “오늘 중으로 물 세 바가지는 먹어야 죽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 때문에 일어나는 일화 또한 큰 웃음과 더불어 잔잔한 슬픔을 안겨준다.

 

 

너 오밤중에 부엌에서 뭐 하냐?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나는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바가지에 얼굴을 박고 꿀꺽꿀꺽 남은 물을 마시는데//어느덧 나도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치약처럼 짜인 아버지는 영영 이 세상에 없고/이 한밤중 나는 무슨 이유로 부엌에 나가 꿀꺽꿀꺽 세 바가지의 물을 혼자 마시고 있나(「치약」 부분)

 

 

웃음을 동반한 이러한 슬픔의 정조는 그 감염력이 강해서 급기야는 독자로 하여금 따듯한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감동을 선사한다.

 

 

여섯살 된 딸이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렸다 밥 한 숟가락을 떠 씹지 말고 삼키라 했다 딸아이는 울며 입속의 밥을 연신 우물거린다 씹지 말고 삼켜라 그냥 씹지 말고!/어릴 적 나도 호되게 생선가시 하나가 목에 걸린 적이 있다 밥이 삼켜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직접 밥 한 숟가락을 떠 꿀꺽, 씹지도 않고 삼켜 보였다 그리고 아, 입을 벌려 당신의 입속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당신의 입속」 전문)

 

 

참으로 단순하고 평범한 구조와 어법 속에서도 만만치 않은 울림을 생산하는 시 중의 하나이다. 목에 걸린 가시를 넘기는 아버지의 비법은 그대로 딸에게 전수되지만, 쉽게 넘겨지지 않는 밥처럼 아버지와의 추억은 목울대에 걸려 있다. 그럼으로써 ‘입속’은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인 동시에 시대를 이어가는 터널과 같은 상징이 된다. 또한 이 ‘입’은 삶의 가장 근원적인 사랑과 생명의 터널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상력의 연장선에 유독 밥에 대한 사유가 깊게 자리잡은 것 또한 주목할 대목이다.

 

 

추운 겨울 어느날/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사람들이 앉아/밥을 기다리고 있었다/밥이 나오자/누가 먼저랄 것 없이/밥뚜껑 위에 한결같이/공손히/손부터 올려놓았다(「공손한 손」 전문)

 

이마의 젖은 땀을 문지르고/허, 허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은/검은 손등으로/입가를 닦듯,//살다 갔으면 좋겠다(「황홀한 국수」 부분)

 

 

밥에 대한 공경은 곧 삶과 죽음에 대한 공경이라는 점을 아주 뛰어나게 보여주는 시들이다. 밥 앞에서는 삶과 죽음 앞에서처럼 그 어떤 인생이나 사유도 평등하고 공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주 쉬운 어법으로, 특별한 비유 없이 전달하는 것이 바로 고영민의 남다른 힘이다. 밥뚜껑 위에 손을 올려놓는 공손함이 삶에 대한 겸손함을 넘어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듯 죽음으로 이어지길 소망하면서, 그럼으로써 삶이 완성된다는 이 범상치 않는 사유는 그 자체로 ‘황홀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쌀이 물먹는 소리”를 “쌀이 운다”고 표현한 것(「쌀이 울 때」)이나 밥을 풀 때는 함부로 하지 않고 “살살살 뒤집어/돌이켜,//한김 나간 뒤”(「한김 나간 뒤」)를 응시하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영민의 이번 시집은 분명 ‘그늘지고, 흐릿하고, 야윈 풍경’에 오랫동안 시선이 가 있다. 하지만 이미지마저 흐릿하고 그늘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쉬운 어법과 명료한 이미지들은 시인의 새로운 면모를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방아가씨의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앵두에 비유한 것이나(「앵두」) 유산한 뒤 검게 변한 유두에서 머루를 연상하는 것(「머루」), 배고픈 강아지들의 꼬리와 허기를 들판의 갈대와 연결(「갈대」)하는 지점은 낯선 대상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시인의 또다른 힘이다. 청둥오리들의 자맥질을 바느질로 비유하는 다음 시를 보면 시인의 인식이 얼마나 비범하게 비유의 힘을 얻는지 잘 알 수 있다.

 

 

봄날, 청둥오리들이/물 홑청을 펼쳐놓고/바느질을 하고 있다//(…) 꼼꼼하여/바늘땀이 보이지 않는다/다만, 헐겁던 수면이/팽팽하다(「물목」 부분)

 

 

고영민의 시들이 종종 유년의 향수를 드러낸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문학평론가 구모룡의 지적대로 그것이 단지 낡은 영역으로 떨어지지 않고 “사물에 대한 열린 감수성으로 발전”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순백의 아름다움, 의연한 지속, 화해와 행복은 시인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말할 것도 없이 현실은 이러한 가치들을 훼손하거나 휘발시킨다. 시인이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세속과 초월의 대립이 아니며 위악적인 현실 속에서 위선을 걷어내고 진정성을 지키려는 자기에 대한 배려에 해당한다. 시인은 시원의 기억, 유년의 추억을 통하여 현실과 거리를 만드는 한편 그 현실과 타협하려는 자신을 경계한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되돌아보는 행위인 향수는 심리적 퇴행과 다르다. 향수가 만드는 현실과의 차이는 일종의 부정성이다. 물론 이것이 현실을 전복하는 힘을 갖진 못한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한 시인의 내면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의 의식은 적어도 환멸의 세계를 견뎌내는 희망의 단초가 된다. ― 구모룡 해설 「향수와 비애」

 

 

고영민의 향수는 심리적 퇴행이 아니라 현실과 갈등하는 동시에 현실을 따뜻하게 품어안는 희망을 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돼온 슬픔과 아픔 또한 현재의 다른 사물과 대상에 전이만 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인정과 사랑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 대상은 딸아이가 되기도 하고 다른 동물이 되기도 한다. 가령 아버지가 난세를 피해 아궁이 속에 숨어서 목숨을 연명한 슬픈 전설(「아직도 어둡고 찬」)은 아궁이 속 “새끼를 밴 채 진통이 심”한 고양이를 위해 불 지피지 않고 냉골에 자는 가족의 일화(「아랫목」)로 아름답게 변주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사랑과 연민과 정을 슬픔과 해학으로 버무릴 줄 아는 시인을 얻었다. 그의 시선이 값진 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잠재된 상태로 지나쳐버릴 뻔한 무의식들을 꺼내 감동적으로 형상화해낸다는 점이다. 그의 호흡이 우리 모두의 숨이 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앞강으로 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들이 차갑게 알을 슬어놓고는 한생을 전해주려 떠내려올 시간”(「숨의 기원」)에 깊이 잠겨 있거나, 겨우내 마른 흙이 갈아엎어져 속흙이 되는 시간을 “나는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나/슬픔이라고 불러야 하나”(「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 노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유의 연장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래에 동참할 때 우리는 “슬픔의 자리를 옮겨놓듯 천천히 베는 법”을, “덜 아프게 덜 아프게 베는 법”(「깻대를 베는 시간」)을 깨닫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울음을 뚝, 멈추는” “울음 속에 울음을 섞는” 법을, 나아가 “다시 목청껏 우는”(「매미」) 법을 같이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고영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音)이 울음이라는 것”(「우륵」)을 아는 시인이다.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보면 우리는 “눈이 와도 이젠 모일 수 없는 것들이 내겐 있다./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할 수 없는 것들이 네겐 있다/그래도 나는 만나러 가야 한다./혼자라도 만나 한나절 떠들고 실컷 울고 웃다 와야 한다”(「시인의 말」)고 다짐하는 시인의 다음 행보도 주목하게 될 것이다.

목차

제1부
앵두
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
허밍, 허밍
갈대
입춘
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
점안(點眼)
해감
공손한 손
용접
꽃눈이 번져
손톱을 깎는 것은
황홀한 국수
처소

당신의 입속
숨의 기원
모과라 부를 수 없는 것
민박
쌀이 울 때
한김 나간 뒤

제2부
멈춰라, 토끼
다알리아
평상
누우면 눈이 감기고 일어서면 눈이 떠지는 인형처럼
깻대를 베는 시간
네 입속에 혀를 밀어넣듯
책의 등
크고 넉넉한 옷
목련에 기대어
무늬
저수지
거울
매미
검은 발자국
아랫목
머루
슬픈 부리
젖은 모래의 여덟시
데미안
과수원

제3부
비비추
막간
물목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아직도 어둡고 찬
눈과 황소
꽃과 저녁에 관한 기록
꽃무릇
겨울강
효자
모과불(佛)
곡우
우륵
하류
만삭
오후
치약
손님

거위들
푸른 고치

해설│구모룡
시인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고영민

    196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문학사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구구』가 있다. 지리산문학상, 박재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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