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 어울리는

책 소개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요” 

 

가장 문명적인 공간에서 가장 원시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탁월한 재주

신예 이승은의 기민하고 영리한 첫 소설집

 

2014년 문예중앙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래 기묘하고 새롭다는 평을 받아온 젊은 작가 이승은의 첫번째 소설집 『오늘 밤에 어울리는』이 출간됐다. 2018년 여름까지 집필한 작품들을 묶은 이번 소설집은 “세련되고도 정제된 방식의 개성적인 울림”을 만들어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등단작 「소파」와 미발표작 「찰나의 얼굴」까지 총 8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우리를 “타인이 되어보는 연습으로서의 독서가 아니라 타인이 될 수 없음을 절감하는 독서”(해설, 양경언)로 이끌어가는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주어진 삶 너머의 불안을 그대로 품은 채 우리의 삶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스스로 깨닫게”(추천사, 정영수) 만드는 기묘한 서사 속에서 이승은은 이해와 오해의 사이를 헤매는 인간관계의 모습과 청년들이 체감하는 불안하고 답답한 현실을 감각적이고 영리한 방식으로 재현한다.

 

“그 사람들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 관객을 심문하다

 

『오늘 밤에 어울리는』의 소설들은 종전의 소설들과는 다른 방식의 독서를 요구한다. 작품들은 마치 소극장의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하다. 정갈한 식기들과 우아한 분위기가 흐르는 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등장해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얘기를 나누면서 소설이 시작한다. 겉보기에는 큰 갈등을 겪고 있다거나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시종일관 평범하고 평온한 대화를 이어나가지만 “그들에겐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긴장”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풍부한 표정을 지어보이거나 적극적인 행위로 사건을 끌어가지 않는다. 독자는 작가가 마련한 서사의 공간 속에서 인물들을 ‘목격’하면서 상황을 유추해야 하며 소설은 끝까지 독자들이 진실을 쉽게 파악하도록 친절하게 돕지 않는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만큼의 거리감을 느끼며 그들의 긴장된 상태가 남기는 윤곽만을 좇는 경험”(해설)이 바로 이승은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우리의 뒤틀린 관계와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날 혼자 있게 내버려둬.

그녀는 한번 더 외쳤다. 그는 문을 두드리지도 그녀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녀는 문득 집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섬뜩함을 느꼈다. 거실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에 그녀는 문을 열었다. 방문 앞에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바닥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했다. (왈츠」 98면)

 

한동안은 서로를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길을 걷다가 쇼윈도에 비친 둘의 모습, 팔짱을 낀 자신과 그 혹은 그녀의 모습을.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다가오는 난관들을 잘 극복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힐 수 없었다. 수정은 우리 안의 무언가가 그런 일을 만들어냈다고 했고 진우는 우연일 뿐이라고 했다.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여전히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었다. (찰나의 얼굴」 159면)

 

가장 처음 등장하는 소설 「파티의 끝」은 ‘은수’와 ‘민용’, ‘지영’과 ‘동철’ 젊은 두 연인이 은수의 집에 모여 연말 모임을 벌이는 하룻밤의 이야기다. 네 남녀는 새벽까지 술잔을 주고받으면서도 서로에게 속마음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은수는 결혼을 원하지 않는 민용이 야속하고, 곧 결혼할 지영과 동철은 서로 어긋났던 과거가 신경 쓰인다. 울고 웃으며 만취해가던 이들은 문득 동이 터오는 창밖을 발견하고 약속이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나 어질러진 집을 다급하게 정리하기 시작한다.

「왈츠」는 평범한 일상을 불안하고 섬뜩하게 만드는 이승은 특유의 방식이 강렬하게 발휘된 소설이다. 평온함을 사랑하는 남편 ‘그’와 활동적인 일을 좋아하는 아내 ‘그녀’는 그의 지방 전근을 앞둔 마지막 일요일 아침부터 낮술을 한다. 술에 취해 주차된 차에 앉아 있던 그들은 새로 이사 온 옆집 남자가 멀쩡한 바이올린을 버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녀는 버려진 바이올린을 집으로 가져오고, 그녀가 그에게 말할 수 없었던 비밀들을 이야기하는 순간 바이올린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미발표작 「찰나의 얼굴」은 진실과 거짓이 애매하게 뒤섞인 상황이 불안을 야기하고, 그 때문에 뒤틀린 현실을 마주치게 된 사람들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를 흥미롭게 그린 소설이다. ‘진우’는 ‘수정’이 놀러갔던 바다에서 우연히 알게 된 ‘정식’을 모델로 미술 작품을 완성한다. 정식은 진우의 작품에 참여한 계기로 미술계 사람들과 친목을 쌓아가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말을 일삼는 정식은 어느덧 사람들 사이에서 ‘거짓말쟁이’로 비난받기 시작한다. 수정이 정식에게 충고를 건네려는 순간, 정식은 수정의 심연을 건드리는 말로 수정과 진우가 지켜온 일상에 큰 혼란을 일으킨다.

 

추천사
  • 이런 말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이승은의 소설은 지극히 문명적이다. 그녀의 글을 읽기 시작하면 곧 정갈하게 놓인 테이블 위의 식기들이 떠오른다. 반짝이는 커틀러리와 세련된 찻잔 같은 것들…… 매력적인 오브제로 가득한 방 안에 울려퍼지는 잔잔한 소음을 들으며 우아한 대화를 구경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달까?
    그런데 대화는 어쩐지 늘 이상한 쪽으로 흐른다. 어쩐지 불안하고, 불길하고, 금방이라도 참혹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이상한 대화 속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손님처럼 안절부절하며 그들을 지켜보게 된다. 인물들의 숨결에 따라, 대화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저 물병은 산산조각 날까, 무사 할까?
    이야기는 팽팽한 긴장을 놓치지 않은 채 끝까지 달음박질친다. 이승은은 가장 문명적인 공간에서 가장 원시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탁월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을 읽는 일은 늘 반가우면서도 두렵고, 두려우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정영수 소설가

목차

파티의 끝

소파

오늘 밤에 어울리는

왈츠

남극 산책

찰나의 얼굴

덤벨과 위스키

성탄절 특집

 

해설_양경언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이승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단편소설 「소파」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때마다 설레면서도 걱정스러워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소설 읽었어요’라고 누군가 말해왔을 때 나는 당황했다.
 
누군가 시간을 들여서 내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을 하면 덜컥 겁이 났다.
소설집을 준비하면서 여덟편의 소설 전부를 읽은 사람들을 만났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는 조언과 적지 않은 시간과 공을 들였을 글을 받았다. 그밖에 많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첫 소설집이 나왔다. 믿기지 않을 만큼의 행운이 여기에 실렸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 사실을 상기시켜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2019년 4월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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