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3 2019년 1호

책 소개

매체가 바꾸는 것, 매체를 바꾸는 것

 

디지털 뉴미디어와 읽기/쓰기의 변화

 

주목

『문학3』 2019년 1호가 출간되었다. 평소 종이 잡지뿐 아니라 웹과 몹을 통해 다양한 읽기/쓰기의 방법을 고민해오던 『문학3』이 이번호 주목란을 통해 매체 환경의 변화가 우리의 읽기/쓰기 방식과 감각에 가져온 변화를 살펴보았다. 이른바 디지털 시대,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으며, 읽기/쓰기의 방식과 감각 역시 그 변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삶을 단시간에 획기적으로 바꾼 뉴미디어가 우리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한 네편의 글을 묶었다. 또한 우리가 무언가를 읽고 쓰고자 하는 이유가 매체 변화와 상관없이 고유의 것으로 남아 있다면, 이를 들여다보며 인간이 가진 무엇이 뉴미디어의 진화를 이끌어내어 매체 환경을 바꿀 수 있는지 함께 질문해보려 한다. 본 기획이 일상화된 미디어 환경과 정보를 관성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좀더 넓은 시야를 갖는 기회, 전체를 조망하기 위한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미학자 심혜련의 글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매혹적이며 대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디지털 매체가 인간의 감각과 사유의 영역에 일으킨 변화와 그로 인한 명암을 매체이론의 관점에서 짚어본다. 과학기술을 담보로 한 감각의 확장이 앞으로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강력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진단과, 함께 던진 “과연 인간은 행복할까?”라는 질문이 의미심장하다.

반면 뉴미디어 플랫폼 PUBLY에서 일하는 박혜강의 글은 실무적인 차원에서 읽기/쓰기 변화를 살피는 글이다.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차이를 예민하게 감지하며 뉴미디어 기반의 콘텐츠 개발과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발행을 고민하는 에디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클릭하는 수많은 콘텐츠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되고 어떤 영향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이어지는 두편의 글은 각각 수용자와 창작자 입장에서 살펴본 변화의 양상을 담고 있다. 한빛맹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정의석의 글은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문자매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되짚는다. 점자에서 오디오로 매체 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전보다는 편리한 방법으로 텍스트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시각장애인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태도에서 비롯하는 공공적 차원의 관심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마지막으로 정세랑 소설가의 글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쓰기에 매체의 변화를 어떻게 반영해왔는지 살핀다. 종이매체뿐 아니라 웹,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 가급적 다양한 매체에 소설을 발표하고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려는 그의 유연한 태도를 보며 뉴미디어 시대에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의 의의를 다시금 되짚게 된다.

 

창작과 중계

이번호 소설란은 신예 백승연 이주혜 최유안의 작품과 강성은 시인이 보내온 소설로 채웠다. 제각기 선보이는 다채로운 서사가 눈을 사로잡는다. 중계 코너에서 마임이스트 고재경, 채널예스 기자 정의정, 드라마 작가 유보라가 이 소설들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었다. 란에는 김참 배수연 이다희 정성은 조인호의 작품을 수록했다. 서로 다른 시각과 세계가 담긴 작품이 어우러져 한층 풍성하다. 시 중계는 서윤후 시인, 에세이스트 은유,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 장혜영이 함께해주었다.

 

현장과 시선

원예활동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터이자 배움터, ‘꿈이자라는뜰’의 일꾼 최문철이 함께 일하는 장애인 동료 가이를 기록한다. 가이와 함께하며 생기는 갈등의 양상과 가이의 장애를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 다른 방식으로의 쓸모를 궁리하는 필자의 고민이 생생하다. 한편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특수학교 교사 김은비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특수학교에서의 장애인 인권을 논한다. 특수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 유린 사태를 해결을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특수학교 신설보다 특수학교의 교육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고민하는 세심한 관점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대전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가 끝내 사살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낸 일이 있었다. 20년차 수의사 이정섭은 그 퓨마의 이름이 ‘뽀롱이’였음을,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한 첫걸음임을 강조한다. 종의 이름이 아닌, 반려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동물 이름과 거기 담긴 특별한 사연들이 뭉클하다. 시선란에는 자폐 진단을 받고 언어보다는 그림으로 세상과 교류해온 미술 작가 이다래의 그림을 동료 작가 김소영이 소개한다. 어느 누구라도 원하는 만큼의 상태로 머물 수 있는 세계에서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은 온화한 동물들의 그림이다. 그중 「자작나무숲 속의 동물친구들」은 이번호의 표지로도 사용되었다. 사진작가 표하연은 ‘오늘을 담는 사진관’이라는 제목으로 고향 성남의 작은 골목과 이웃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

 

문학웹과 문학몹

문학웹(www.munhak3.com)의 새 코너 ‘시작하는 사전’은 2019년 한해 동안 아직 첫 시집을 내지 않은 시인 26명의 신작시를 연재한다. 시인이 시 속에서 뽑아 재정의한 시어를 신작시와 함께 싣는다. 『문학3』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윤다혜를 필두로 류진 주민현 유이우 최지은 이영재 등 ‘시작하는’ 시인들의 다채로운 신작을 매주 수요일마다 만날 수 있다. 한편 ‘3×100’ 코너는 김봉곤과 김초엽의 연재 종료로 2018년을 마무리했다. 2월부터는 박솔뫼신해욱이 새로 연재를 시작한다. 소설가와 시인이 선보일 서로 다른 이야기의 대비가 기대된다. 문학몹은 웹진 『비유』와 함께 여덟번째 현장, ‘내/일을 위한 시간’을 꾸린다. 쓰는 사람, 읽는 사람이 모여 ‘작가협동조합이 생긴다면 우리의 글쓰기 환경에는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를 함께 묻고 상상해보려 한다.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의 참여를 기다린다.

목차

김미정 / ‘말’이라는 블록

 

주목: 매체가 바꾸는 것, 매체를 바꾸는 것

심혜련 「감각의 확장, 사유의 확장,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확장」

박혜강 「에디터가 디지털 뉴미디어를 만났을 때」

정의석 「점자에서 아이폰까지」

정세랑 「뉴미디어 시대의 소설」

 

김참 「얼룩말과 함께」 「세개의 나선을 위한 아르페지오」

배수연 「스프링클러」 「거위와의 목욕」

이다희 「수업 결석에 관한 사유서」 「간호의 변명」

정성은 「공갈댐」 「실종」

조인호 「쿠데타는 하품을 한다」 「그만 죽어 김일성」

중계 「우리에게 아직도 새로움이 가능한가」 / 서윤후 은유 장혜영

 

소설

강성은 「이녹 씨 아세요?」

백승연 「홍학 없이 홍학 말하기」

이주혜 「꽃을 그려요」

최유안 「비밀에 대한 예의」

중계 「마음에 검은 구멍을 안고」 / 고재경 유보라 정의정

 

현장

최문철 「‘꿈이자라는뜰’ 동료, 가이를 기록하다」

이정섭 「동물 이름 짓기」

김은비 「특수학교 담임교사 A의 하루」

 

시선

이다래 「좋아하는 것을 떠올렸을 때」

표하연 「오늘을 담는 사진관」

수상정보
저자 소개

‘말’이라는 블록
 
일본작가 이시다 이라(石田衣良)의 데뷔작인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파크』(1997년 1권 출간)는 최근 14권째 이야기를 내면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도시 뒷골목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발랄하게 그려온 이 시리즈는 경쾌함 너머에서 당대의 민감한 사회문제를 다루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중 2014년에 나온 11권 『증오 퍼레이드(憎悪のパレード)』는 차이나타운의 한 상점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일본 내 배외주의와 헤이트스피치 문제를 환기시키는 소설이다.
사건의 배후에는, 배외주의 단체 안의 정체성 증명을 둘러싼 암투가 있다. 범인은 일본 내 부동산업자이면서 중국인을 배척하는 배외주의 단체의 회원이다. 그리고 사건 해결과정보다 흥미로운 것이 바로, 여러 정체성과 역학이 교차하고 얽힌 인물·사건의 설정이다. 가령 일본인인 범인의 부동산업 배후에는 중국자본이 있다. 그런데 이때의 중국 역시 단일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중국계 자본도 ‘북경계’와 ‘상해계’로 나뉘어 서로 적대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설정은 단순히 네이션 단위나, 간단한 적대구도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을 함축한다.
반면, 주인공을 보조하는 위치의 중국인들은, 이런 교차적 설정에 비하면 다소 평면적이게도, 모두 건실하고 예의바르며 똑똑한 이들로 그려져 있다. 소설 속 설정의 복잡함에 비추어볼 때 이들은 상대적으로 평면적이다. 이 중국인 표상(representation)은 세간의 헤이트스피치가 공격하는 외국인 이미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 전략과 어느 정도 관련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은연중 독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즉 작가가 생각하는 어떤 가치가 담긴 외국인 표상임은 틀림없다. 이런 방식을 두고 일본의 평론가(연구자)들은 현재 일본에서의 헤이트스피치를 적극 의식한 일종의 ‘과잉된 재현’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과잉된 재현이라고 하더라도 확실한 것은, 작가의 의도, 전략을 포함한 이 소설 자체가 세계의 복잡성과의 고투, 교섭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사정과는 구체적 맥락이 다르다 할지라도, 지금 한국에서야말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는 듯 보인다. 우선 이것은 젠더 역학 속 ‘누구’에 의해 ‘누구·무엇’이 타자화(대상화)되고 어떤 표상을 구축해왔는지와 관련된다. 그리고 재현된 당사자의 의사, 욕망은 정작 재현된 내용과 어떻게 겹치고 어긋나는지가 비로소 질문되고 있다. 사실 이시다의 소설을 읽은 일본 내 중국인이 얼마큼 그 표상에 동의할 수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재현은 늘 누군가의 시선을 매개한다. 그리고 그 시선이 조망해낸 결과로서의 표상은, 언제나 실재에 미달 혹은 초과하는 운명에 있다. 그렇기에 표상은 시선이 지향하는 의미나 의도와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시집 발간을 앞둔 한 시인이 자신의 시에서 여성, 여성 이미지를 그저 소비시키며 타자화한 일은 없었는지 검토한 작업을 가까이에서 접한 일도 떠오른다. 항간에서는 이를 자기검열, 대중추수, 정치적 올바름 강박 등의 시선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일종의 윤리(도덕) 대(對) 예술의 구도가 떠올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윤리, 도덕, 검열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자기성찰(reflection)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말을 잇고 만들어 창조한 하나의 세계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원리적으로 누구나 드나들고 향유할 수 있는 세계다. 이것은 ‘길 잃은 속인이냐 대중이냐’ ‘예술가냐 시민이냐’ 식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대상이 작품에 들어오기 전에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서 존재하고 표상되어왔는지 의식하고, 탈구시키고, 재창조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느 심포지엄에서 만난 한 일본 평론가(연구자)의 글 속 각주 하나도 의미심장하게 떠오른다(그녀의 이름도 출처도 잊은 것은 무척 안타깝다). 1950년대 일본소설을 일별하는 지면이었는데, 신체장애를 폄하하는, 그러나 일상에서 보통명사로 아주 흔하게 쓰여온 말 하나를 불가피하게 원문 그대로 사용했음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각주였다. 그것은 우리의 인권감수성뿐 아니라 일종의 상상력을 질문하는 것이기도 했다. 스스로의 의사와 무관한 불편함을 경험하는 이에게 그 말이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무감하게 편히 사용해온 어떤 말들이 누군가의 구조적 소외에 기여하지 않았는지 질문을 던진 각주였던 것이다.
즉, 구조적으로 누군가(무언가)가 소외·배제되는 역학에 대한 고민은, 서사적 재현의 문제에만 한정될 수 없다. 그것은 ‘언어습관’ ‘단어’ ‘말’의 수준으로 확장, 심화되어야 한다. 무수한 말들은 일상에서 각 용법(표상)을 가지고 있는 블록이며, 문학작품은 그 블록의 연결물이다. 그리고 문학은 종종 그 블록을 본래의 용도와는 다르게 연결하고 재창조한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에 일상 속 어떤 맥락을 가진 말이 있을 때 그것이 무감하게 작품 안에 들어왔는지, 아니면 그것을 탈맥락화하는 창조에 기여했는지 여부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이번호 발간 과정에서 한 작품과 한 독자가 마주친 어느 지점에 대해 내내 생각하고 있다. 지금, 미처 정돈되지 않은 질문만 남긴 셈이 되었지만, 말을 다루는 작업으로서 문학이 그 말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된다. 쓰기와 읽기 모두 일종의 ‘수행적’인 작업이라고 여겨온 개인적 믿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문학3 기획위원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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