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신경림 시인이 새 시집 『뿔』을 간행했다. 지난 1998년 간행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이후 4년만이다. ‘후기’에서 시인은 “요즘 시가 한 그루 나무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며 “그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끝내 모르는” 존재인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고 썼다. 평생 시의 길에 헌신해왔고 쉼없이 그 길을 걸어갈 노시인의 이 간곡함은 이번 시집의 한편 한편을 감싸며 울림을 크게 한다. 난해하지 않은 정리된 시상으로 어떤 시를 보아도 완결되지 않은 허술한 구석을 찾기 어려운 시세계를 이뤄온 시인은 “한때 고통스럽던 시 쓰는 일이 이제는 즐거워졌다”는 말로 그의 시론과 창작이 원만한 합일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약자와 보잘것없는 존재를 어루만지는 손길은 여전히 크고 따스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그릇된 것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준엄하지만, 그간 잘 드러내지 않던 사적인 얘기들까지 엮은 이 시집 편편에서 더 한층 겸허하고 너그러워진 품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돌아간 지인(知人)들과 더불어 이승과 이승 너머를 바라보는 시편들이 눈에 띄는 것도 새롭다.

 

『뿔』에는 지난 4년간 발표했던 작품 55편과 함께 말미에 시인의 산문 「시인이란 무엇인가」를 수록했다. 제1부는 시집에 붙인 정희성 시인의 말처럼 ‘떠도는 자의 노래’들이다. 「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 「집으로 가는 길」「陋巷遙」 「내가 살고 싶은 땅에 가서」 등은 평생 ‘길 위에 선 자’이자 늘 ‘새로운 길을 가는 자’로서의 소회를 그린 시편들이다. 시인은 이제 세상의 방황을 그만둘까, “스쳐온 모든 것들을 묻”고 “스스로 그 속에 묻히면서” 가볍게 걸어 ‘집’으로 돌아갈까 묻는 한편에서 ‘모든 길은 아름답다’고 노래하고 있다(「그 길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열차」). 「지상에 새롭지 않은 것은 없다」는 최근 17년 동안 살던 정릉 집을 처분하고 거처를 옮기면서 다시 눈뜬 골목들의 경이로움을 그린 재미있는 시이다.

 

제2부와 3부는 사회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드러낸 시편들이 주조를 이룬다. 시인은 “나는 아직도 네 새빨간/꽃만을 아름답다 할 수가 없다”고, “음산한 데서 벌어지는/더럽고 야비한 음모의 수런거림”(「장미를 보며」)에 귀기울여보라고 말한다. 지난 50년간의 탱크와 비명소리와 환호의 역사가 비에 젖는 가운데 “쓰다 버린 것들과 남은 것들”이 모두 모여 있는 오늘날의 서울역을 그린 「비에 젖는 서울역」이나, 노숙자들이 신문지를 덮고 잠든 지하도 입구와 대형 멀티비전을 대비한 「둔주」는 우리 사회의 소용돌이와 상처를 일깨워준다. 또한 사나운 뿔을 지녔으되 한번도 쓰지 못한 채 살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한쪽은 구두가 되는 존재(「뿔」)나, 고기는 주인이 가져가고 “가죽밖에 남긴 것이 없”(「개」)는 존재는 읽는이의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한편 이번 시집에 실린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적 작품들은 지금까지 신경림 시에서 보기 어렵던 독특한 세계이다. 「말을 보며」「銀河」 같은 시편들, 특히 “놈은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거대한 고래”라는 「은하」의 첫 행은 의미심장하다.

 

제4부에는 신경림 시인이 혼자 살아가면서 유일하게 의지해온 모친의 죽음을 노래한 「저 소리는 어디에서」 「편지」 등 주로 가족사에 대한 시편들을 모았다. 결국 시인은 모친상을 치르고 집을 옮겼고, 「지상에 새롭지 않은 것은 없다」(제1부)가 그 중에 씌어졌다. 이승을 떠난 친지들을 불러모아 저승의 가족을 만들고 칠순이 가까운 시인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 「편지」가 돋보이는데, 이 ‘이승 너머’에 대한 심상은 「비」(제1부) 등에서도 발견된다. 제5부는 연변, 베트남 등 우리와 밀접한 국가를 여행하고 쓴 기행시들이 실려 있다.

 

말미의 산문 「시인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인은 기교에 치우쳐 왜소해진 우리 시풍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연스럽고 큰 울림을 지닌 시로 돌아갈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자신 한결같이 “자연스럽고 큰 울림을 지닌” 시세계를 가꿔온 신경림 시인의 이 시집은 많은 독자와 시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목차

제1부
떠도는 자의 노래
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
陋巷遙(누항요)
집으로 가는 길
그 길은 아름답다
봄날
지상에 새롭지 않은 것은 없다

무엇일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流配(유배)
사막
아름다운 열차
내가 살고 싶은 땅에 가서

제2부
兒塚(아총)
幽閉(유폐)
비에 젖는 서울역
개미를 보며
장미에게
눈 온 아침
그들의 손
내 허망한
遁走(둔주)

제3부

隣人(인인)
맹인

銀河(은하)
말을 보며
乞人行(걸인행) 1
乞人行(걸인행) 2
乞人行(걸인행) 3
겨울날

제4부

편지
강 저편
저 소리는 어디에서
한 오백년 뒤의
까페에 앉아 K331을 듣다
연어
활엽수
바람


城(성)
산토끼

제5부

少女行(소녀행) 1
少女行(소녀행) 2
신의주
강 건너 남쪽
추석
이웃 아낙네들
고구려 벽화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흘러라 동강, 이 땅의 힘이 되어서

시인의 산문/시인이란 무엇인가
시인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신경림

    申庚林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농무』이래 민중의 생활에 밀착한 현실인식과 빼어난 서정성, 친숙한 가락을 결합한 시세계로 한국시의 물줄기를 바꾸며 새 경지를 열었다. 70년대 이후 문단의 자유실천운동·민주화운동에 부단히 참여하여 당대적 현실 속에 살아숨쉬는 시편들로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시집으로 『농무』『새재』 『달 넘세』 『가난한 사랑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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