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통치

책 소개

국가와 개인, 젠더와 계급의 최대 격전지 ‘가족’!

한국의 정상가족 만들기 프로젝트

 

한국 사회에서 ‘인구’ 문제가 국가권력의 근대적 재편과 관련해서 부상했음을 역사적으로 실증하는 책 『가족과 통치』가 출간되었다. 저자 조은주는 십수년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1960~70년대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이 단지 산아제한이 아니라 자본주의 산업화와 연관된 정상화(normalization) 및 주체화의 과정이었음을 탁월하게 설파해낸다. 또한 가족계획사업은 근대적 전업주부와 임금노동자에 대한 관념을 창출하면서 ‘정상가족’의 확립을 도모했으며, 이는 우리 현실의 직접적 기원이었음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박정희 시대 새로운 양상의 권력이 가족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관통했는가를 추적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여전히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적 시각으로 성찰하기 위한 유용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가족과 여성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룬 당대사, 젠더 이슈의 심층을 파헤치는 분석서,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접근법을 제시하는 사회과학서 등으로 읽히는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안목을 제공할 것이다.

 

국가는 ‘인구’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

: 인구는 통계와 과학의 얼굴로 나타나지만 사실 정치의 문제다

 

2016년 정부가 가임기 여성 수에 따라 각 지방자치체에 순위를 매긴 ‘대한민국 출산지도’에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다. 한국 정부가 출산율에 대해 얼마나 맹목적이고 안이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국가는 출산율 감소로 인한 ‘인구 절벽’ ‘국가 위기’ 등의 담론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정작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일반 국민들의 기본 인식이다. 최근 낙태죄 위헌 여부가 헌법재판소에서 논의되면서 낙태죄를 둘러싼 찬반 논의가 활발해졌는데 여기서도 출산율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50여년 전, 국가는 출산율 문제에 대해 현재와 반대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개입했다. 1960~70년대에는 임신중절 수술이 산아제한을 위한 방법으로 권장되었으며, 1972년에는 과밀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신중절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출산율과 인구조절 정책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듯 보이는 국가의 모순적인 태도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가족과 통치』의 저자 조은주는 2000년대 초반 저출산이 문제화되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생산과 재생산의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가족이 통치의 도구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1960~70년대 가족계획사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십수년에 걸친 연구가 집대성된 이 책은 당시의 가족계획사업이 단지 출산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삶’을 ‘인간의 삶’으로 전환시키는 일종의 근대화 프로젝트(151면)였음을 보여주면서, 국가가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국민의 사적영역을 재구성함으로써 어떻게 통치의 실천을 수행했는지 면밀히 따져본다. 당시의 잡지, 각종 정책과 통계자료, 국내외 조사연구 프로젝트 등을 샅샅이 분석하면서 ‘인구’ 문제가 당시 국가권력의 근대적 재편과 연관을 맺으며 부상했음을 극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출산율, 사망률 등과 같은 인구 문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맥락과 국가의 발전 정도에 따라 통치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목차

1장 가족, 통치의 모델에서 통치의 도구로

죽게 하는 권력과 살게 하는 권력

근대 정치의 두 계열

가족, 인구, 통치

1960~70년대 한국의 가족과 국가

 

2장 인구의 부상

국제노동기구 전문위원의 충고

인구의 출현

인구의 자연성과 사회의 실증적 발견

제3세계, 인구학적 타자

정치적 상상과 인구: 한국의 가족계획

 

3장 가족계획사업

어느 면서기의 기록

근대적 출산조절

대한가족계획협회

피임술의 보급

가족계획어머니회

 

4장 국가의 통치화

인구에 관한 지식

통치와 과학

수와 통치: 가독성의 효과

국가형성과 인구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조은주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생산과 재생산의 정치에 주목하면서 통치성의 맥락에서 가족 및 인구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통치-과학의 결합과 지식의 사회적 형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연구로 「인구의 출현과 사회적인 것의 구성」 「인구의 자연성과 통치 테크놀로지」 「인구통계와 국가형성」 「비서구의 자기인식과 역사주의」 “Making the ‘Modern’ Family: The Discourse of Sexuality […]

2015년에 눈에 띄는 핑크색으로 새로 단장한 서울 시내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표시되었다. 임산부석이 만들어진 이유가 저출산 때문이라는 건 누구나 쉽게 짐작할 만한 일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2500년 혹은 2750년에 민족이 소멸하고 대한민국이 사라진다는 예측을 삼성경제연구소나 국회입법조사처 같은 내로라하는 기관들이 발표하는 나라에서 낮은 출산율이 불러일으키는 위기감은 국가주의적인 공포와 어렵지 않게 연결된다. 그리하여 임산부를 배려하겠다는 명목으로 만든 지하철 좌석조차 정작 임산부가 아닌, 민족국가의 소멸을 막아줄 배 속의 태아를 위한 자리가 되는 것이다.
2016년 말 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에서는 가임기 여성 수에 따라 각 지방자치체에 순위가 매겨졌다. 가임기 여성이 많을수록 해당 지자체에 더욱 진한 핑크색이 칠해졌다. 물론 이 출산지도 사이트는 빗발치는 항의로 인해 곧바로 문을 닫았다. 이와 같은 항의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야말로 비극일 것이다. 2017년에는 혼인율이 낮은 고학력·고소득 여성들이 ‘하향선택결혼’을 하게 만드는 문화적 콘텐츠를 개발하고 혼인연령을 낮추기 위해 휴학이나 연수, 학위, 자격증에 채용상 불이익을 주는 방안이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에 따른 저출산 대책으로 제안되었다.
출산율에 대한 맹목적이면서도 안이한 태도는 이처럼 농담에 가까운 촌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저출산 담론을 둘러싼 문제적 지형을 일별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사태의 핵심은 아닐 것이다. 출산율과 가임기 여성의 인구학적 분포, 초혼연령, 혼인율 등은 이미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논의할 때 가장 심각하게 다루어지는 요소가 되었다. 우리는 연령별 인구구성비와 부양비 문제를 떠나서 사회보장을 논의하기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저 괴이한 소극들이 빗발치는 항의와 조소를 일으키는 반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과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사람들은 쉽게 의견을 모은다. 저출산의 위기 담론에 기대서 성평등 정책이나 청년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문제는 합리적 통치의 요청이나 위기 담론의 승인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비판 사이의 차이에 대한 망각에 있다. 이를테면 한국사회가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17년 만에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리하여 고령사회의 위험이 강조되고 정부의 효과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하지만 ‘고령화사회’ ‘고령사회’ 등은 사회를 특정한 방식으로 읽어내는 인식의 격자(grid)를 전제한다. 15세부터 64세를 생산가능인구로, 65세 이상을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채 부양되는 존재로 분류하는 기준선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개념이다. 고령사회의 위험을 운위할수록 이 인식의 격자에 대한 비판은 무망해지고 그 정당성에 대한 승인은 계속해서 갱신된다.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라는 이 책의 부제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인구는 시민이나 민족과 마찬가지로 특유한 역사적 맥락에서 등장했다. 무엇보다도 인구는 자본주의경제의 확산과 떨어질 수 없는 개념이다. 또한 국가권력의 근대적 재편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으며 부상했다. 나아가 인구는 개개의 삶이 아니라 유기체적 전체의 질을 중요시하는 우생학과 쉽게 결합하는 개념이다. 즉 인구는 애초부터 정치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인구 개념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그것이 정치와 무관한 객관적 지식과 사실의 차원으로 여겨진다는 점에 있다. 저출산이 불러일으키는 위기감과 고령사회의 불안이 정치적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세계 최저수준이라는 출산율은 철학자 진태원의 말을 빌리면 ‘실존적 계급투쟁’의 시대, 개인의 실존 자체가 계급투쟁의 장이 되는 시대가 빚어낸 초상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저출산 담론이 불러일으키는 탈정치의 정치, 반(反)정치의 정치는 집합적 삶의 현재적 조건을 대면하는 대신 저출산이나 고령사회가 가져온다는 미래사회의 위험에 경도되게 만든다. 그러나 저출산은 문제 자체 혹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며 결과다. 현재의 인구 담론은 문제의 원인을 저출산으로 치환하며,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곤궁을 국가주의의 차원으로 수렴시킨다. 그 한복판에 이 시대의 가족이 자리하고 있다. 가족은 이 시대 최대의 격전지이자 각축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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