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3 2018년 2호

책 소개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미투’ 이후에 만나는 요즘 예술과 문학

 

 

주목: 요즘 예술은 페미니즘과 어떻게 만나는가

『문학3』 2018년 2호가 출간되었다. 이번호 문학지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요즘 예술의 변화를 주목했다. 문화예술계에서 시작한 ‘○○ 내 성폭력’ 공론화와 미투 운동 이후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이제 한국사회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가부장적 이성애 중심주의,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젠더 역학에 전방위적인 도전과 저항이 이루어지고 있다. 용기를 내어 이름과 얼굴을 노출하며 젠더 권력·폭력을 고발하는 이들뿐 아니라, 익명의 지지 여론 역시 이 흐름의 큰 동력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흐름은 단지 특정한 의제나 소수의 신념이 아니라 한 시대 전체의 감수성의 측면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문학3〕 2018년 2호는 변화의 목소리가 요즘의 문화·예술 전반에 어떻게 기입되고 있는지 묻고자 했다. ‘여성’ ‘퀴어’ ‘페미니즘’ 등의 말이 이제 여성계나 학계에서 쓰는 전문용어를 넘어서 구체적 삶, 감수성에 밀착한 문제의식이 되었고, 지금의 예술이 페미니즘과 어떻게 만나는지 묻는 일은 긴요한 과제가 되었다.

장은정「아카이브로서의 시」는 ‘여성’ ‘퀴어’ ‘당사자성’이라는 키워드를 염두에 둔 수행적 읽기와 쓰기의 작업이다. 한편의 시를 읽기 위해 그 작품을 통과해온 문학사 전부가 필요하다는 이 글의 문제의식은, 문학사의 ‘시선’만을 문제 삼고 있지 않다. 이 글 전체의 행간에 놓인 ‘누가 말하고 쓰고 읽는가’라는 질문은 문화·예술 텍스트를 둘러싼 주체/대상의 문제를 내내 생각하게 한다. 한국문학의 퀴어적 상상력을 살피는 고봉준은 최근 문학에 등장한 당사자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퀴어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며 그들의 목소리에서 “위반의 흔적”을 발견하고 “문학이 다시 시작되는 지점”을 읽어낸다.

김슬기의 글은 지난 2년 사이 연극계에 젠더 이슈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살핀다. 최근 연극에서 이러한 변화는 특정 당사자의 문제적 상황을 넘어 “우리 모두의 삶을 되비추는 실천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2013년 이후 한국 TV 드라마를 일별하는 오수경「드라마 속 여성은 어떻게 변화했을까」는 현재 드라마 속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여성의 언어와 공동체가 부상하고 있지만, 여전히 강한 이성애 규범성과 빈약한 여성 재현방식 등의 장르적 한계가 극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비평하는 언어”를 가짐으로써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필자의 통찰이 소중하게 읽힌다.

조경숙의 웹툰(만화) 비평 「혼란에 공명하는 말하기」 역시 ‘미투 국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말처럼 남성 젠더 편향이 강한 만화를 포함해 여기서 자유로운 영역은 없을 것이다. 영화 분야를 다룬 이영재의 글은 현재 반성폭력운동 흐름 속에 있는 우리의 상상력 범위와 깊이를 질문한다. 표면적으로 ‘노키즈존’ ‘맘충’과 같은 첨예한 사회적 논란을 소재로 삼지만, 이것은 세월호사건 이후 우리 사회 및 영화의 상상력과 연결되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보지 못했던 ‘공통의 취약함’을 상기시킨다.

 

창작과 중계

이번호 소설란은 공선옥 김금희 김희선 박유경 정소연 등 역량있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웠다. 공공도서관 사서 김지혜, 영국인 번역가 쏘피 보우만, 다큐 감독 이소현 등 역시 여성 패널들과 함께 작품을 읽었다. 란에는 김이강 성미정 유병록 정선율의 작품에 원고모집을 통해 선정한 A의 작품을 추가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 낭독 재능기부 모임 ‘희희랑독’ 팀과 작품을 중계했다.

특별히 이번호 소설란에서는 서체 디자이너 심우진의 주도로 개발된 신규 서체 <Sandoll 정체>가 최초로 공개된다. 문학에 맞춤한 호흡과 뼈대를 바탕으로, 작품과 호응하고 가독성이 극대화되도록 개발된 신규 서체에 많은 관심을 바란다. 디자이너의 서체 소개도 읽을 수 있다.

 

현장과 시선

이번호 현장과 시선란은 특별히 풍성하다. 올초부터 이어진 미투 운동의 일환으로 여성 이주노동자의 성폭력 피해사실 고발 움직임이 있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특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저임금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중첩된 이 문제를 관련 연구와 활동을 주도해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 허오영숙이 짚어주었다. 최근 다양한 온라인 영상매체가 SNS와 유튜브 등 영상 채널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중 43사건 70년을 맞아 청년 세대의 관점으로 43을 다루게 된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신생 매체 ‘닷페이스’의 활동을 현장란에 실었다. 그리고 지난 4월, 베트남전의 한국군 민간인학살에 대한 시민평화법정이 서울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렸다. 이 법정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한 임재성 변호사가 그 과정과 의미를 자세하게 집필해주었다. 실제 법정은 아니기에 아무런 효력이 없지만, 피고 대한민국에 배상책임을 선고하는 과정이 자못 감격스럽다. 결국 이 유죄 판결이 ‘피고를 위한 선고’, 즉 피고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한 선고임을 깨닫게 한다.

‘시선’란에는 사진작가 류한경이 자신의 거주지 인근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간 거주를 옮겨온 과정과 거주지에 대한 심정을 풀어내며 청년 세대로서 자기 삶의 앞뒤를 반추한다. 잡지 표지로도 활용된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도 소개한다.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의 한글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내 인생 그림일기’ 프로그램을 통해 발표된 작품들이다. 노령임에도 배움과 자기실현에 대한 바람을 포기하지 않고 진솔한 작품을 선보인 여성들의 이야기로 여러 매체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문학몹과 문학웹

지난 3월 〔문학3〕의 연례 축제 ‘문학몹333’ 제1회가 열렸다. 올해엔 ‘뒤집힌 이야기’를 주제로 3일간의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인 문학몹333은 매년 문학독자들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이번호 문학지에서 지난 행사의 리포트를 읽을 수 있다. 문학웹(www.munhak3.com) ‘3×100’ 코너는 하성란천희란의 연재가 독자들의 열띤 호응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다음 연재는 중견작가 전성태백민석이 이어간다. 서로 다른 색깔의 두 남성 작가가 보여줄 대비가 기대된다. ‘키워드3’의 ‘기본소득-( )-예술’ 연재 역시 관심있는 독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마무리되었다. 향후 문학몹을 통해 이 주제를 발전시켜볼 계획이다.

목차

신용목 / 모든 답이 그런 건 아니지만 모든 질문은 옳다

 

주목 요즘 예술은 페미니즘과 어떻게 만나는가

장은정 「아카이브로서의 시」

고봉준 「다른 목소리들」

김슬기 「당신의 이야기—접촉의 강렬함—우리 모두의 삶: 여성, 퀴어, 당사자성을 다룬 동시대 연극에 대한 소고」

오수경 「드라마 속 여성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조경숙 「혼란에 공명하는 말하기: 누가 당사자인가」

이영재 「아이가 사라진다」

 

A 「백설」 「풍등」

김이강 「바다가 보이는 주유소」 「The Typist」

성미정 「봄은 하루」 「캄파넬라」

유병록 「스위치: 연애1」 「안다 그리고 모른다: 연애2」

정선율 「파란색은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2」 「파란색은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3」

 

중계 「계속 읽게 만드는 것」 / 박용준 박윤경 안성채

 

소설

공선옥 「행사작가」

김금희 「미국식 홈비디오」

김희선 「조각공원」

박유경 「가장 낮은 자리」

정소연 「집」

중계 「“당신들을 지켜줍니다”」 / 쏘피 보우만  김지혜 이소현

 

현장

허오영숙 「현장에서 본 여성 이주노동자 성폭력」

모진수 「뉴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가 만난 4·3사건」

임재성 「눈부셨던 응우예티탄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시민평화법정이 남긴 것들」

 

시선

류한경 「옮겨다니기」

권정자 외 「“글을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순천 할머니들의 인생 그림일기」

 

문학몹333 리포트

<Sandoll 정체> 소개

수상정보
저자 소개

모든 답이 그런 건 아니지만 모든 질문은 옳다

여성, 퀴어, 페미니즘 등의 기표가 여러 방향에서 감행하는 점검은, 문학에 있어서 ‘의미’와 ‘윤리’, 곧 문학의 존재방식에 대해 되묻고 있다. 이제 텍스트의 의미는 언어의 내적 관계성이 구축한 세계만으로 통용되지 않으며, 텍스트의 윤리가 사회적으로 통합된 지향점으로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문학이 고유하고 예외적인 보편성을 보장받던 시대는 갔다. 일상을 가로지르는 개개인의 감각이 현실의 조건을 시시각각 구성하며, 사유의 근거를 ‘보편적 이성’에서 ‘특수한 경험’으로 바뀌놓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세계는 삶의 순간순간을 끝없이 통합하는 과정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 속에서 끝없이 분산되는 감각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때 문학은 작가와 작품이 가진 아우라를 통해 독자들을 설득하기보다는, 각자의 독서경험 속에서 끝없이 재의미화되는 다면체의 그것이다.

지금 눈앞의 일들은 문학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며 일으키는 소용돌이로 보인다. 여전히 시대를 일률적으로 규정하고 개념과 원리로 작품의 의미를 간파하고자 하는 노력이 안타까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텍스트의 무의식과 형식이 제공하는 메시지는 어김없이 시대와의 관계성 속에서 재구성되었고, 그것이 현실 변혁의 인식적 토대를 형성한다는 언급이 보태졌을 때 왠지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한편의 시는 고착화된 인식에 충격을 줌으로써 노동자의 삶을 갱신할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연역적 추론을 통한 미학적 효과의 승인으로만 그친다면, 역으로 노동자의 삶으로부터 시에 접근할 경로를 찾기는 쉽지 않다. 노동자의 삶은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게 될 것이다.

문학의 자율성에 사회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노력의 일각에서는 구체적인 현실을 외적 요인으로 간주하고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하면서, 오히려 이를 시적 언어의 변방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이 문제적인 이유는, 과거의 것이었으며 우리와 무관하리라 여겼던 역사가 미래로 귀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문학이 저 궁극에서 모국어를 국경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였던 데 대한 반성을 요청하고 있다. 정치가 문학을 전유했던 시대와 당시의 미학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역사는 같은 얼굴로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어느 때보다도 문학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이 긴요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에게 문학은 무엇이었고,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 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서둘러 대안을 제시할 재주도 욕망도 없다. ‘플랫폼’인 ‘문학3’은 애초에 그러한 논의의 장이지 논의들의 견인체가 아니다. ‘문학3’의 장 안에서 끝내 대안과 해답이 제시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대면하는 일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삶의 표면으로 끌어올려 함께 공유하고 고민하는 과정 말이다. 창간 1주년을 맞아 기획한 ‘문학몹333’이 그러했듯이 우리는 문학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문학몹333’ 마지막 행사였던 ‘독자편집회의: 문학-삶 만들기’에서 자신의 문학적 꿈과 점점 왜소해져가는 문학에 대한 걱정을 남겼던 참가자에게 따뜻한 동행의 인사를 건넨다. 문학을 둘러싼 모든 질문들이 당신의 꿈을 통과하고 있다는 말과 더불어서 말이다.

문학3 기획위원 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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