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서쪽

책 소개

켜켜이 쌓인 기억의 산천을 떠돌아오는 장철문 시인의 첫시집. 고통을 시의 문면에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게 시를 이끌어간다. 『바람의 서쪽』은 할말을 가슴에 안은 채 다른 아픔에게로 건너가는 유연한 풍향을 보여준다.

목차

차 례

제 1 부

마른 풀잎의 노래
雪 原
穀雨날 바람
비로자나는 쉬지 않는다
두물머리 蓮밭
양수리 初雪
겨울 가지
빗나간 노래
이중주
花 舞
마이크로코스모스
초겨울숲
기 쁨

제 2 부

거기 가 쉬고 싶다
직 산
봄마당
자전거가 있는 풍경
한 낮
場 풍경
하늘꽃
개망초 여울
서정리 이모
눈 녹는 날, 절집
청설모
낡아가는 것들
고 해

제 3 부

난지도의 아침
수박밭둑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가 뭄
死産하는 노래
사 이
기워진 손

저시사리
모기는 둥글다
미륵사지 옛적
부러진 날개
불개미주의보
좌 선

제 4 부

머루주가 익는 밤
난지도 가는 길

BLEU
바다 유감
먼 길
曲 調
겨울, 대진 바다
마포, 1996년 겨울
겨울 거울
切頭山
겨울 서신
바람의 서쪽

바람의 서쪽

바람 부는 충적토 지석묘 곁에 서면
이렇게 서 있는 것이 오늘만이 아니다

이 구릉에서 돌창을 다듬은 사나이도
잔솔밭으로 달리는 고라니를 쫓다간
바람 밀려가는 서녘을 바라보곤 했을 것이다.

고타마만이 가부좌를 알았겠는가

이 구릉까지 돌을 나른 사람도
돌 밑의 사람도
그 무게를 내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산과 산 사이 빗발 묻어오는 이 시간에도
담쟁이 뒤집어쓴 돌무덤 속에서
영혼을 바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봄풀 오르는 충적토 지석묘 곁에 서면
여기 서 있는 것이 혼자만이 아니다

창비시선 176 장철문 시집
바람의 서쪽

켜켜이 쌓인 기억의 산천을 시로 보도횡단해온 젊은 시인의 첫시집.
자신을 떠돌게 하는 고통을 시의 문면에 앞장세우지 않으면서 차분히 자신의 시세계를 가꾸어온 장철문 시인은 속 깊이 할말을 안은 채 다른 아픔에게로 열려가는 시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감각의 과잉자극을 일삼는 들뜬 언어의 시대에 희귀한 몫이 아닐 수 없다.
오롯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는 사물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시작 태도로서 젊은 시인들 가운데 보기 드문 원숙성을 가지고 있다. 사물의 법칙에 역류하지 않고 합류하는 정신은 그의 시를 다른 젊은 시인들과 구분짓게 해준다. 근본적으로 시인의 마음은 모든 자연물과 인연에 대하여 갈등을 저지른 일이 없다는 인식이 아마도 그의 시에 저류하는 독특한 개성일 것이다.
특히 장철문 시인의 시는 맛깔이 미각에 와닿는다. 이 맛깔의 미학이 무엇인지는 더 분석해봐야 할 부분이지만, 그의 언어가 아주 자연스럽다는 점을 우선 손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그의 시가 우리 전통시의 맥락에 가닿으려는 젊은 시인의 각고로 보인다. 우리는 그의 시에서 결코 쉽지 않은, 평이함을 극복하는 시가 일상 속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시작의 어려운 문제 해법의 틈도 엿볼 수 있다.
「서정리 이모」같은 시에서 숨결이 느껴지는 것은 참으로 시인이 진정한 삶을 원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게 된다. 스스로 걸팡진 이모의 말과 성깔을 찾고 배우고 그리하여 그 자체가 되고 싶어하는 시인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먼 서울에서 꽃피었다. 한편, 두 친형을 잃은 아버지의 소일을 그린「하늘꽃」같은 시편에서는 이 지상에서의 사별의 아픔이 하늘에서 꽃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저 하늘로 떠난 피붙이형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버지의 중얼거림은 곁에 서 있는 시인과 우리들의 가슴을 불가항력적으로 조복하게 한다. 이는 세계와 법칙에 대한 아버지와 시인의 용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들리는구나 얘야 흰 꽃대롱 속에서/ 어린날 네 웃음소리가/ 네 자식놈/ 목젖 보이는 웃음소리가/(중략)/ 이렇게 잦은비 뿌리는 날/ 손 노는 날 가려/ 왔구나 얘야” 같은 구절은 절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행 곁에 하늘꽃이 된 형님의 목소리가 이렇게 들린다. “아부지 속터지는 일좀 그만하세요”
장철문 시인의 잘 마른 풀잎 같은 이 시편들은 가장 낮은 곳에 머무는 듯하면서도 실은 가장 깊은 곳에 슬쩍 가닿아 있는 시의 새로운 울림과 슬프지만은 않은 넉넉함을 유감없이 발휘된 그윽한 영혼의 형상이다.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장철문

    張喆文 시인,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66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4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마른 풀잎의 노래」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우리 고전 『심청전』 『양반전 외』 『최고운전』 『최척전』, 『진리의 꽃다발 법구경』, 동화 『노루 삼촌』 『나쁜 녀석』 들을 펴냈다. 시집으로 『바람의 서쪽』 『산벚나무의 저녁』 『무릎 위의 자작나무』 『비유의 바깥』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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