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3 2018년 1호

책 소개

 삶은 둘로 나눌 수 없습니다

 이분법이 말하지 않는 것들

 

 

 주목: 이분법

『문학3』 2018년 1호가 출간되었다. 이번 호 문학지가 주목한 주제는 ‘이분법’이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많은 문제들은 선택과 배제, 동지와 적, 긍정과 부정, 전쟁과 평화 같은 이분법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이분법으로 문제의 성격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도 있지만, 그런 대립을 넘어 더 큰 틀에서 문제를 보지 못하도록 막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복잡한 양상을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해 숱한 맥락을 지우고 이분법을 들여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토론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을수록, 그것이 절박하고 첨예한 것일수록 전선을 분명히 긋고 진영을 나누려는 움직임은 강화된다.

젠더, 노동, 교육, 문학 등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장소이자 첨예한 이분법이 주도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주목’란에서 이 영역들을 다룬 다섯편의 글은, 좀더 섬세하고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한목소리를 내며 각자의 이야기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분법에 거리를 두는 것이 격화되는 갈등을 그저 가라앉히는 데만 활용되거나 사태를 관망하는 자세로만 비치는 것 역시 신중하게 경계한다.

최근 성폭력 문제에 대한 담화 속에 ‘피해자’와 ‘가해자’만 존재하는 상황을 비판하는 미학 연구자 이진실은, 「더이상 피해자가 아닌 그녀들」에서 만화가 이자혜를 둘러싼 공방이 놓치고 있는 젠더 권력의 복잡한 양상을 들춰낸다. 성폭력 사안을 (분명한)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누는 방식은 오히려 기존의 젠더 규범을 강화하기도 하며, 거기 담긴 ‘순수한 피해자’ 서사는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배제하기도 한다. 필자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타자도 배제하지 않는 진정한 보편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고 선언하며 가급적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을 다짐한다. 윤영광「노동이 넘어서야 할 ‘이분법’은 무엇인가」에서 철학 연구자답게 노동의 개념과 이론을 바탕으로 ‘노동과 자본의 이분법’을 극복할 것을 제안한다. 정규직/비정규직으로만 나뉘어 논의되고 있는 오늘날 노동 담론의 지형에서는, 끊임없이 임금노동을 필요로 하는 ‘자본’의 힘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새로 인식해야 할 것은 다시 고전적 이론으로 돌아가 ‘자본과 노동’을 사유하는 일이며, ‘임금노동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알고 노동을 ‘활동’으로 바꾸는 발상이다. 김수현은 학교 현장의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어느 고등학교의 수영수업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사실 어디서나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래서 더 중요하다. ‘학교의 문법’이라는 제목처럼, 여기선 교육 현장의 문법과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규제와 자율, 존속과 폐지의 양자택일은 학교를 둘러싼 여러가지 제도, 규범, 시선, 현실을 감당하기 위한 최선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비관적인 결론을 내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성찰과 소통에 희망을 걸어본다.

김미정「마지막 인간의 상상」에서 좀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능동/수동이 아닌 ‘중동태(中動態)’의 사유를 통해 주체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기를 주장한다. 중동태는 행위를 하는지 당하는지 여부로 주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에 따라 나눴다고 하는 고대의 문법 개념이다. 중동태의 사유에서 ‘나’는 자주 바뀐다. 상황과 장소, 시대와 분위기에 따라 나의 판단과 행동은 일관적일 수가 없다. 능동/수동의 이분법에 가려져 ‘바뀌는 나’가 여지껏 알려지지 않았다면, 이제 우리는 주체를, 특히 광장의 주체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까? 최근 소설을 다루며 문학작품에 대한 이분법(문학성 대 현실성)을 비판하는 양경언「소설의 자기수용감각―문학/현실의 이분법을 넘어」가 한가지 대답을 들려주는 것도 같다. 여기서 필자가 제시하는 ‘자기수용감각’은 모든 동식물에 내재하는 것으로, 외부와의 접촉에서 주체가 무너지지 않고 관계를 이어가도록 돕는 기제다. 그에 따르면, 좋은 소설은 문학성과 현실성 양자 중 하나를 적당히 선택한 작품이 아니라, 외부와 부딪치고 싸우며 연대하고 아끼는 다양한 방식의 관계를 통해 ‘사람됨’을 실감있게 보여주는, 즉 끝까지 자기수용감각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최은영과 박민정, 김금희의 소설을 읽고 그러한 ‘체력’을 확인하며, 더 좋은 문학의 길을 일궈나가려는 의지를 내보인다.

 

 창작과 중계

이번호 소설란은 원고모집을 통해 게재한 작품으로 절반을 채웠다. 나일선이해준의 작품이 기성 작가인 김정아윤성희의 소설과 나란하게 어울린다. 다큐제작자 박채은, 대학생 박혜원, 전시기획자 한진금, 소설가 황현진이 이 작품들을 읽고 중계한다. 란에서는 김언희 김지윤 안미옥 육호수 윤다혜(원고모집)의 시편이 다채로운 분위기를 내보인다. 시 중계는 시를 공부하는 송자현 신재욱 이여경 이희형이 맡아 고독하게 태어난 문학작품을 함께 읽어주었다.

 

 현장과 시선

작년 여름 <닷페이스> 영상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를 통해 학교 현장에 페미니즘 시각이 필요함을 주장한 후 많은 주목과 함께 보수세력의 공격을 받은 ‘마중물샘’ 최현희가 ‘현장’란에 원고를 보내주었다. ‘학교를 바꾸는 시민이 필요하다’라는 주제로 학교 현장에 대한 관심과 관료제에 대한 시민적 견제를 촉구한다. 지난 계절 우리 사회의 주요 논제였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시민참여 숙의토론 현장이유진 녹색당 탈핵위원장이 상세히 들려준다. 긴박했던 당시 상황과 결과 발표 이후 우리에게 남은 과제를 신중하게 논한다. 성미산학교 교사 김수희는 〔문학3〕이 관심을 두고 있는 장애인의 독서 현실에 대한 글 「문학도 ‘통역’이 될까요?」를 보내주었다. 발달장애인의 읽기 문제에 대한 시야를 열어주는 동시에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이 약자 혐오와 맞닿아 있음을 진솔하게 말하는 에세이다. ‘시선’란에는 시인 강혜빈‘304낭독회’를 작가의 시선으로 찍었다. 만화가 이슬아는 특유의 발랄한 그림에 묵직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문학웹과 문학몹

문학몹(현장활동)도 여전히 이어진다. 문학웹(www.munhak3.com) ‘3×100’ 코너는 황정은최진영의 연재가 많은 독자의 사랑 속에 마무리되었다. 조만간 단행본으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어지는 연재란에는 실력있는 소설가 하성란과 주목받는 신예 천희란이 나선다. 서로 다른 색깔의 두 작가가 보여줄 다양한 재미가 기대된다. ‘키워드3’에서는 ‘창작’과 ‘시간’을 키워드로 쓴 두 작가(이상우 강성은)의 글을 게재했다. 같은 지면에서 ‘기본소득’과 ‘예술’을 주제로 이어갈 계획이다. 문학몹은 지난 연말 ‘요즘 문예지 공동 낭독회’로 다섯번째 현장을 성황리에 마쳤다. 창간 1주년을 맞아 참신한 문학행사를 기획하고 있는 문학몹에도 많은 관심을 바란다.

목차

양경언 「머무는 동시에 벗어나기」

 

주목 이분법

이진실 「더이상 피해자가 아닌 그녀들」

윤영광 「노동이 넘어서야 할 ‘이분법’은 무엇인가」

김수현 「학교의 문법」

김미정 「마지막 인간의 상상」

양경언 「소설의 자기수용감각: 문학/현실의 이분법을 넘어」

 

김언희 「The 18th letter」 「협곡에서」

김지윤 「그날의 모험」 「과일 감정」

안미옥 「홈」 「순간적」

육호수 「콤포스텔라」 「포교」

윤다혜 「장마: 경희에게」 「잘못 가져온 것」

 

중계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송자현 신재욱 이여경 이희형

 

소설

김정아 「감독판」

나일선 「Karmic castle」

윤성희 「듣고 싶은 말」

이해준 「팔찌」

 

중계 「무엇을 위해」

박채은 박혜원 한진금 황현진

 

현장

최현희 「학교를 바꾸는 시민이 필요하다」

이유진 「신고리 5·6호기 숙의토론 2박 3일의 기록」

김수희 「문학도 ‘통역’이 될까요?」

 

시선

강혜빈 「돌아오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이야기: 304낭독회를 기록하며」

이슬아 「남중생과 나」

수상정보
저자 소개

머무는 동시에 벗어나기
 
2018년을 며칠 앞두고 〔문학3〕은 문학몹 ‘요즘 문예지 공동 낭독회’(2017.12.26, 까페창비)에서 이웃 문예지들과 함께 글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는 여기저기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전한 문예지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묻고, 2018년을 너끈히 맞이할 힘을 함께 마련해보면 어떨까 하는 산뜻한 기대와 함께 기획되었습니다. 연신 한국문학의 독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문학3〕도 〔문학3〕이지만) 근심하는 대신 용감하게 어쩌면 뻔뻔하게, 위풍당당 문예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지에 대한 호기심 역시 컸음을 슬쩍 고백합니다. 우리는 왜 여전히 문예지를 만들고, 기꺼이 문학에 대한 얘기를 나눌까요? 우리는 문학의 무엇을 나누고자 하는 걸까요?
사뭇 진지하게 각자의 특징이 살아 있는 작품에 귀를 기울이고 (〔문학3〕은 이날, 문학지 2017년 2호에 수록된 앙꼬의 만화를 낭독했답니다), 문예지를 만들 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기쁨과 슬픔, 보람과 자부심, 비용에 대한 고민 등을 진솔하게 나누다보니(이 자리에는 새 문예지를 기획하는 분들도 찾아주셔서 ‘요즘 문예지’들에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보기도 했지요), 우리는 아무도 우리를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보다는 단 한 사람의 독자라도 언젠가는 만나서 우리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희망에 관하여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어냈던 2017년 시민들의 움직임 속에는 틀림없이 이처럼 나누고 싶은 글과 다양한 생각을 전하고자 하는 이들이 여럿 있어서 지혜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힘을 점진적으로 발휘해가는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더불어 했고요.
그러니 2018년에도 〔문학3〕은 여전합니다. ‘요즘 문예지’ 동료들, 그리고 이들과 얼굴을 마주한 ‘읽는 동료들’이 나누어준 용감함과 뻔뻔함, 꿋꿋함과 위풍당당으로 2018년의 첫걸음을 뗍니다.
이번호를 만들기 전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그 과정이 간단치가 않아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준비 중인 〔문학3〕의 프로젝트 중 하나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문학작품을 ‘함께 읽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문학3〕을 점자로 제작해서 시각장애인들의 문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일에 힘을 더하는 건 어떨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이 기획은, 현재 비장애인인 기획위원들이 관련 분야에 대해 그간 얼마나 많은 것을 몰랐는지를 반복 확인하면서 이같은 ‘몰라도 됨’ 역시 사회에 의해 간편히 쥐어진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상태입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선보이게 될지 뚜렷하게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운 형편이지만, 관련한 고민을 지속하기위해 그 이야기의 출발을 ‘현장’란에서 김수희 님이 들려주신 특수교사의 독서 교육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삼고자 합니다. 더불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공론화 현장에 대한 이유진 님의 글과 교사들이 겪는 학교에서의 일들에 대한 마중물샘 최현희 님의 글 또한 우리의 귀를 더 들어야 할 곳으로 이끌어줄 겁니다. ‘시선’란에서는 세월호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와 시민 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304낭독회’의 현장을 강혜빈 님이 사진으로 기록해주셨고, 이슬아 님은 「남중생과 나」라는 만화로 묵직한 질문거리를 재치있게 던져주셨습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장의 이야기를 살피다보면, 살면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선택과 배제, 동지와 적, 긍정과 부정, 전쟁과 평화 등과 같이 이분법적인 편가르기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음을 새삼 알게 됩니다. 물론 첨예한 이분법의 형성이 문제를 선명하게 파악할 때는 도움을 줍니다만 그것이 정확에 가까운 방식인지는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분법으로 사안을 들여다보는 인식이 오히려 그 이분법이 놓인 더 큰 틀의 문제를 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복잡한 사태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지 못해서 우리는 숱한 맥락을 지우고 사태를 이분법으로 프레임화하는 구상만을 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목’란의 주제는 ‘이분법’입니다. 최근 성폭력 문제에 대한 담화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로만 이루어졌던 상황이나, ‘규제’냐 ‘자율’이냐에만 맞추어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 노동 문제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구상하고 해결을 도모하려는 방식, 문학작품을 ‘예술성’과 ‘현실성’이라는 양자택일로 바라보는 시각, 문학의 장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행위가 ‘능동’과 ‘수동’의 도식만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번 ‘주목’란에서 다뤄졌습니다. 주어진 이분법을 넘어서는 제삼의 활로는 없는지, 혹은 이미 이분법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발상과 그러한 현실이 있어왔는데 우리의 시선이 아직 거기까지 가닿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진실 님, 김수현 님, 윤영광 님, 김미정 님, 양경언의 글로 전해집니다.
이분법에 거리를 두려는 발상이 종종 격화되는 갈등 상황을 잠재우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한축엔 있었기 때문에, 필자들은 그를 각오하고 이분법에 접근하는 다양한 결을 보여주셨습니다. 기존의 이분법을 다시 보거나, 이분법이 놓인 구조를 이야기하기도 했고, 극단적인 이분법을 경계하거나 이분법 자체를 글의 출발점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주목’란의 글들로 논쟁 지점들이 형성되었다면 지면에서 이야기되고 그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확장되어 여러 장소에서 관련한 토론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끊기지 않는 대화 역시 이분법 너머를 상상하고 다음의 길을 만들어가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언희 님, 김지윤 님, 안미옥 님, 육호수 님, 윤다혜 님께서 소중한 시 작품을 보내주시고, 김정아 님, 나일선 님, 윤성희 님, 이해준 님께서 재미있는 소설 작품을 보내주셔서 이번호 역시 꽉 찬 문예지의 몫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문학작품이 여러 모습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시 작품에 대한 좌담은 송자현 님, 신재욱 님, 이여경 님, 이희형 님께서 함께해주셨고, 소설 작품에 대한 독후감은 박채은 님, 박혜원 님, 한진금 님, 황현진 님께서 나눠주셨습니다. 제 아무리 고독하게 태어난 문학작품이라 할지라도 그 곁에 다가가는 이들이 있어 문학은 결코 홀로가 아닌 방식으로 호흡을 이어갈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른 독자 분들은 어떻게 읽으실까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2017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문학3〕의 문학웹 ‘3×100’에서 진행됐던 최진영 님, 황정은 님의 소설 연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두 작가님들께 300배로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두분의 작품을 조만간 단행본으로 만날 날 역시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8년 2월부터는 천희란 님, 하성란 님의 작품이 독자 분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키워드3‘에서 특색 있으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강성은 님, 이상우 님 고맙습니다.
이분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열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벼랑을 열어젖힐 때 거기에 문이 생긴다. 지평은 확장된다.”(이원 『최소의 발견』, 민음사 2017, 73면)는 문장을 시인 안희연 님으로부터 선물받았습니다. 인위적인 선긋기가 잘 허용되지 않는 세상에서, 혹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중첩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머물면서 동시에 벗어나는 매 순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깊이를 더하는 데 힘을 보태는 자리가 곧 문예지의 자리일 수 있겠습니다. 2018년의 〔문학3〕은 이러한 생각의 씨앗을 나누어준 안희연 님을 기획위원으로 모시고 함께 그 깊이를 일구어갈 예정입니다. 애정 어린 눈길로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올해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문학3〕의 2017년을 함께 마무리해준 최정화 님께도 변함없는 우정의 인사를 전합니다.
한파와 미세먼지가 우리를 괴롭힐지라도, 거기에 굴하지 말고 모두 건강하게 겨울을 나서 다음 봄을 맞이합시다. 피쓰!
 
문학3 기획위원 양경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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