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고독

책 소개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문학평론의 진수

 

 

1996년 『문학사상』에 「김소진론」을 발표하며 평론활동을 시작한 정홍수(45)의 첫번째 평론집 『소설의 고독』이 출간되었다. 평론집 제목에 쓰인 “‘고독’이란 표현은 독일의 문예이론가 발터 벤야민이 소설가와 이야기꾼을 구분하면서 썼던 널리 알려진 대목에서 빌려온 것”(‘책머리에’)이다. 작품에 대한 애정어린 비평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평론집은 등단한 지 12년 만에 선보이는 것으로, 그처럼 작품에 밀착해서 내밀한 비평언어를 일구어내는 평론가도 드문만큼 문단은 그의 첫책을 오래 기다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비평은 그자체로 문학작품을 읽는 것처럼 감각적이고 아름답고 따스하지만, 동시에 냉철하고 날카로운 언어로 간과하기 쉬운 작품의 이면을 들춰낸다. 저자만의 독법과 비평의 힘 덕분에 이 평론집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소설들은 저마다 색다른 빛과 깊이를 얻어 모처럼의 평론 읽는 맛을 선사해준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 ‘소설의 고통’은 『창작과비평』에 실은 특집글과 계간평을, 제2부 ‘소설의 진정성’은 주로 소설집 해설을, 제3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월평과 그밖의 평문들을 묶어 꾸렸다.

 

총론격인 1부의 「세계문학의 지평에서 생각하는 한국문학의 보편성」은 한국문학사에서 세계문학 도입의 궤적을 훑어보면서 4.19 이후, 특히 민족문학론과 제3세계문학론이 제기된 1970년대를 주체적 수용기로서 주목한다. 아울러 세계화가 한창인 오늘날 세계화의 부정적 양상에 저항하는 한국문학의 보편성을 창조적으로 열어갈 길을 탐구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문학은 “서양문학의 보편성을 비판적으로 의식하고 그것에 길항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보편성은 동시에 한국문학 안에서 완강한 내면화의 길을 걸어왔”고, “그것은 한국인의 삶이 근대의 경험 속으로 급속도로 편입되고, 전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포섭되어온 역사적 시간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문학의 지평에서 한국문학의 보편성을 생각하면서 “근대의 시간 안에서 창조적 배반의 상상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미학적 형식을 통해 가능한가”(28면)라고 던지는 원론적인 질문은 우리 문단과 독자들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이 글을 제하고 평론집의 대부분은 작품을 읽는 것이 문학평론가의 근본적인 임무라는 점을 놓지 않겠다는 듯 작가와 작품만을 다루는 현장비평글로 채워져 있다. 실제로 이 평론집 한권으로 당대 한국소설의 현단계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작품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망라되어 있다. 황석영 이청준 김원일 박완서 등의 원로에서부터 은희경 성석제 윤대녕 김인숙 구효서 정지아 방현석 등 중견, 그리고 박민규 전성태 윤성희 김애란 등의 신진급까지 총 30여명 작가의 작가·작품론은 그야말로 한눈에 보는 한국소설의 지형도라 할 만하다.

 

이 평론집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점은 치밀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이다. 이러한 미학적인 문체는 독자에게 작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킬 뿐만 아니라 작가와 작품에 대한 면밀한 독법 없이는 날카로운 비판도 있을 수 없다는 정홍수의 평론관을 반증하고 있다.

 

 

고요 속에서 침묵은 깊어지고 개개의 말할 수 없는 운명들은 더 큰 순명(順命)의 자리를 얻는다. 이혜경 소설이 곧잘 스스로를 지워버리려는 욕망 앞에 서 있음은 여기에서도 확인되거니와, 소설에 대한 규범적인 이해만으로 그녀의 글쓰기를 가두기는 너무 벅차다. 그러나 그 지움과 순명이 순연한 침묵 지향의 일시적 초월은 물론 아니며, 우리 일상의 꼼꼼한 재발견으로부터 비롯한 열림의 누적된 과실(果實)임을 지적해내지 않고서는 이혜경 소설을 제대로 읽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즉 매편의 작품을 다채로운 발견의 우회로로 열어가는 소설적 창의야말로 자칫 간과하기 쉬운 이혜경 소설의 소중한 자원이다. ― 「침묵과 순명」 부분

 

윤대녕의 이번 소설집에는 (…) 한 사람의 일생에 해당하는 긴 시간의 흐름이 서사의 중심에 있고,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의 경과 속에 소설의 서사가 집중되어 있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배경 이야기 어딘가에는 긴 시간의 갈피를 넘기는 지점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의 경과는 다시 몇년 전, 몇달 전으로 촘촘히 나뉘어 흐르면서 현재의 한순간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다시 흘러간다. 세월의 나이테를 천천히 펼쳐 보이는 이러한 서사적 조망 속에서 짧은 시간의 단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인간 운명의 유장함과 곡진함이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동시에 그것은 일희일비하는 감정의 변전을 넘어 인간사의 진실을 좀더 긴 호흡으로 살피게 만든다. 그럴 때 간절한 순간들은 시간의 너울 속으로 접혀들어가면서 오히려 더 사무치고, 모종의 속깊은 체념이나 순응에 이르기도 한다. ― 「강물처럼 흐르다」 부분

 

 

이 평론집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고(故) 김소진에 대한 헌사로도 읽힐 법한 평문 두 편이다. 그의 등단작이기도 한 「허벅지와 흰쥐 그리고 사실의 자리―김소진론」과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함정임 소설집 『동행』」이 그것이다. 평론가로서의 작품읽기와 더불어 고인에 대한 개인적인 우정과 애정이 담긴 이 글들은 읽는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에 빠져들게 만든다.

 

정홍수의 평문을 읽다보면 ‘작가들은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책을 묶을 만큼 그의 평론가로서의 행보는 느리나 보폭은 넓고 깊다. 게다가 평론으로선 보기 드물게 작가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동반된 자연스러운 대화와도 같다. 소설가 성석제가 적절하게 지적했듯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그의 평론을 읽으면 “소설읽기가 행복해”지는 것이다.(성석제 ‘추천사’)

 

‘책머리에’에도 밝혔듯 한국소설에 대한 뿌리칠 수 없는 매혹에 대한 저자의 응답은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이것은 ‘좋은 문학과 소설’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독자들이 그의 비평적 행보를 따라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 읽기는 내게 실생활의 어떤 결여를 보상하는 정신적 허영의 계기였던 것 같다. 그 허영이 종내 소설에 대한 글쓰기에까지 나를 부추겼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리라. 그렇긴 해도 좋은 소설과 문학은 그런 허영에 대한 반성의 계기 또한 언제나 한주먹씩 되돌려주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은 지금도 좋은 소설과 문학 앞으로 나를 이끄는 뿌리치기 힘든 미망이다. ― ‘책머리에’ 부분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소설의 고통

세계문학의 지평에서 생각하는 한국문학의 보편성

‘이후’의 시간과 소설의 고독

세계의 실패를 앓는 소설의 고통

불가능의 역설을 사는 소설의 운명

지하실의 윤리에서 항성의 상상력까지

제2부 소설의 진정성

침묵과 순명
이혜경 소설집 『꽃그늘 아래』

강물처럼 흐르다
윤대녕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

울림, 그 신성한 세부
성석제 소설집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상처와 공생하는 수문의 꿈
김인숙 소설집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투명한 진정성, 노을의 연대
김남일 소설집 『산을 내려가는 법』

신산에서 따숨까지
공선옥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

진정성의 깊이가 찾아낸 결핍의 형식
강영숙 소설집 『흔들리다』

웨하스와 숟가락의 울림
하성란 소설집 『웨하스』

허벅지와 흰쥐 그리고 사실의 자리
김소진론

제3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부끄러움에 대하여 ㅡ ‘후일담계 소설’의 근거
공지영·방현석

북극성이 사라진 시대의 글쓰기 ㅡ 아포리아의 도전과 소설의 응전
이혜경·조경란

기원을 둘러싼 세 가지 풍경
윤대녕·한창훈·구효서

슬픔과 가난의 노래
성석제·박민규

새로운 길 찾기
강영숙·윤성희

‘황야를 떠도는 전인류의 통곡과 우수’를 생각하며
이인화

고향 없는 세대의 언어를 위하여
전성태 소설집 『매향』

실존의 글쓰기, 목숨의 글쓰기
김인숙 소설집 『유리 구두』·이혜경 소설집 『그 집 앞』

지난 연대를 향한 문학의 증언
방현석 장편 『십년간』·박완서 장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어떤 세월과의 교신
정지아 소설집 『행복』

부재하는 것들의 호명
김성동 장편 『꿈』

진실을 향한 쉼없는 탐구
이청준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함정임 소설집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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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저자 소개
  • 정홍수
    정홍수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6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평론이 당선되며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 『소설의 고독』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 공편저로 『소진의 기억』이 있다. 2016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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