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거미줄

책 소개

낯설고 신기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김기택 시인의 동시집이 출간되었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세상을 만나면서 낯설고 신기한 감정을 느끼는 어린이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려 냈다. 어린이의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속마음까지 들여다보는 눈길이 인상적이다. 서른 해 가까운 시력(詩歷)과 어린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새롭고 개성 넘치는 시 세계가 큰 기대를 품게 한다.

 

목차

머리말 | 어른이 잃어버린 어린이

 

제1부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오줌

 

뜨거운 호두과자
진공청소기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오줌
자전거가 도망간다고?
말없는 친구
말다툼
나는 변기가 좋아
왜 안 들리나 했더니
트램펄린
긴 터널을 지날 때
가을에 은행나무 길을 걸으면
왁자지껄
물 타기 말 타기
합창

 

제2부 나무야 운동하자

 

풀벌레
여름밤
빗방울 거미줄
누구를 닮았을까 저 바람은
꽃씨
태풍 오는 날
소나기
매미 소리
나무야 운동하자
바람을 어떻게 그릴까
소나기구름
나뭇잎 편지
창문 그리기
향기로운 똥 냄새

 

제3부 그늘이 도망갔어요

 

혼자 노는 개
푸드 트럭
경축! 새 도로 개통
목발

철조망
그늘이 도망갔어요
비누 없이 샴푸 없이
나무는 우리 집이에요
발이 하나뿐이지만
가로수
옛날에 학교 가는 길은

 

제4부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우리 동네 쓰레기장에는
뱀이 꼬리를 흔들면
부지런한 게으름
가파른 언덕길
콧구멍
꼬부랑 할머니
꽃밭은 안 돼요
수수께끼
이빨 새싹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아빠가 술 마시고 온 날
하필이면
쥐구멍, 쥐구멍이 어디야

 

해설 | 바람과 눈물방울로 그린 아이의 자화상_김정숙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김기택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꼽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 『껌』 등이 있음. 김수영문학상(1995), 현대문학상(2001), 이수문학상(2004) 등 수상.

  • 노석미

    일러스트레이터. 홍익대에서 회화를 공부했고, 다양한 분야의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인형 만들기, 아트상품 제작 등을 하며 여러 차례 개인전과 기획전을 열었다. 『아기 구름 울보』 『히나코와 걷는 길』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들에 그림을 그렸고,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해』 『냐옹이』 들을 쓰고 그렸다.

어른이 잃어버린 어린이
 
어렸을 때 덩치가 크고 힘도 센 형이 썰매 탄다고 억지로 내 장갑을 빌려 간 적이 있었습니다. 빌려줄 때는 새 장갑이었는데 돌려받을 때는 해지고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장갑을 낀 채 장작불을 쬐느라 탄 곳도 있었습니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그 형을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병아리가 장갑을 쪼아 먹었다.”라고 투덜거렸습니다. 그 형 이름에 ‘병’ 자가 들어가서 ‘병아리’라는 별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기억이 별로 없는 나에게 이일이 뚜렷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그때 얼마나 억울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병아리가 장갑을 쪼아 먹었다.’가 은유인지 어린 내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문장을 재미있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고 그 형을 조금이라도 더 약올려 줄 말을 찾는 데만 골몰했을 겁니다. 상상으로만 온갖 심술보를 끌어와 그 못된 병아리를 어떻게 골려 줄까 궁리했겠지요. 그 말은 그 형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한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내 안에 그런 어린이가 있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심술보가 터져서 어른인 나에게 짓궂은 장난을 하고 싶어지지요. 심술보를 터뜨려 줄 말을 찾고 싶어지지요. 그때 내 안에 어떤 즐거운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낍니다. 이 동시집에 실린 동시들은 그럴 때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시를 쓴 나는 어린이가 아닙니다. 옛날에 잃어버린 어린이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어린이는 재미없는 것들, 평범한 것들을 신기하고 재미있게 보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아는 것, 경험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들 대부분이 신기합니다. 경험 많은 어른의 눈에는 당연하고 재미없는 것들이 어린이의 눈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한한 신비로 보이게 됩니다. 어린이는 세상에서 처음 보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평범한 사물도 신기하게 생동감 있게 재미있게 보는 특출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능력은 어른이 되면 거의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동시집에 실린 시들은 그런 어린이를 되찾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모릅니다.
어린이다운 생각과 호기심은 오직 한때에만 있는 소중한 것입니다. 나는 이런 소중한 시절을 지나 다시는 어린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내 안에 어른이 되지 않은 어린이가 오는 드문 순간을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그 어린이는 기분이 좋을 때나 걱정거리가 없을 때에만 찾아옵니다. 그때 나는 호기심이 왕성해지거나 괜히 장난치고 싶어져서 어른들의 생각을 골탕 먹여 보곤 합니다. 그런 상상은 꽤 즐겁습니다. 그래서 내가 쓴 동시가 어른이 어린이를 흉내 낸 시가 아니라 어른이 어린이가 되기를 바라는 시, 어른의 마음에서 잃어버린 어린이가 되살아나는 시, 어른의 마음에 우연히 찾아온 어린이가 쓴 시이기를 바랍니다.
이 동시집은 초등학교 중학년・고학년 눈높이에 맞추어 쓰려고 했지만 중학생이 읽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어른도 즐길 수 있습니다. 어린이를 잃은 것을 아쉬워하는 어른, 가끔은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어른, 어린 심술보가 터질 때 이상한 즐거움을 느끼는 어른이라면 이 동시집을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2016년 11월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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