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잠들지 못한다

책 소개

궁핍한 시대에 씌어지는 불면의 문학

 

“시인은 세상의 죄를 대속하는 고전적 운명으로 회귀했다”

 

 

등단 이후 10년간 평단과 시민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문학평론가 함돈균의 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가 출간되었다. 전작 『예외들』 이후로 4년 동안 집필해온 문학비평을 한데 엮었다. 이 시기 한가운데의 세월호사건이 상징하는 우리 사회의 결핍과 아픔을 끊임없이 사유해온 작가들의 고투가 비평의 시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잠 깨지 못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단 한번도 잠들지 못하는 존재라고 해야 한다. 그는 눈뜬 채 불면에 시달린다. 불면은 달뜬 상태처럼 보이기도 하고, 극도의 통증을 수반하기도 한다. 달콤한 유희처럼 보이기도 하며, 끔찍한 노동처럼 존재하기도 한다. ‘사회’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이때 완강한 근본주의적 혁명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체 어디에, 어떤 시간에, 그리고 무엇에 사로잡힌 것일까. 은밀성을 수반하는 그의 행위는 전복적이고 열정적이며 고통스럽고 은밀하면서도 과감하며 격렬하고 불온한 존재 양상을 보인다. ‘사회’라는 이름의 한계를 돌파하는 그 불면의 에너지는 육체의 모든 것을 탕진해버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무용한 사건과 다른 것이 아니다.(6면)

 

이러한 작가/시인의 고투는 특히 제1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영화 「레미제라블」(2012)을 통해 문학의 새로운 상상력을 상기시키며 문을 여는 제1부는, 그러한 상상력을 작품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오늘날의 작가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문학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이때 문학적 상상력의 대척점에는 우리 사회의 부재와 결핍이 자리한다. 공감의 부재, 기억의 부재, 애도의 부재,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인용할 수 있는 사건의 ‘텍스트’가 부재한 이 시대를 구원하기 위해, 시인은 연옥의 죄인이 된 심정으로 불면의 기도를 올린다.

 

1964년 김수영은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현대식 교량」)을 보여주는 사랑의 실험자로서 당대 시인의 임무를 규정했다. 1981년 최승자는 시인으로서 제 역할을 “죽음이 죽음을 따르는/이 시대의 무서운 사랑”(「이 시대의 사랑」)을 ‘풀어내는’ 일이라고 보았다. (…) 2016년 우리 시대의 사랑은 적을 형제로 만들지도 못한 채 오히려 형제를 적으로 만드는 세계에서 불행하게 흐느끼고 있다. (…) 이 평론집에 있는 글들이 씌어진 시기에 시인들은 세상의 죄를 대속(代贖)하는 존재라는 시인의 고전적 운명으로 회귀한 듯했다. 그들의 사랑은 불면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들의 우주는 실낱같은 구원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연옥’에 갇힌 듯하다. 한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기점이 된 1990년대 이후, 시인의 사랑이 이렇게 처절한 ‘기도’의 양상을 띠는 경우는 없었다.(6~7면)

 

목차

책머리에

제1부
‘레미제라블’ 또는 시의 천사 세계문학과 한국문학
불가능한 몸이 말하기 세월호 시대의 ‘시적 기억
연옥에서 기도하는 시인들 이원 ․ 김행숙 ․ 박진성의 시
시는 누구에게 고개를 숙일까 김수영 ․ 황인찬 ․ 김행숙 ․ 이원 ․ 송승언 ․ 최문자의 시
‘최소-인간’, 전위인가 복고인가 이우성 ․ 성동혁 ․ 황인찬 ․ 송승언의 시

제2부
놀이는 어떻게 거룩한 긍정이 되는가 문학과 놀이에 대하여
은폐하는 사물, 발기하는 사물, 되돌아오는 사물 ‘사물’은 시에 무엇인가
공동체(共同體)인가 공동체(空同體)인가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 자들의 공동체와 현대 민주주의에 대하여
이상의 아해들 한국 현대시와 이상 시의 계보
만약에 미자 씨가 시 쓰기가 아니라 소설 쓰기를 배웠다면 영화 「시(詩)」는 시를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제3부
도롱뇽 공동체의 탄생 김승일 시집 『에듀케이션』
숙녀라는 이름의 굴욕 플레이어 박상수 시집 『숙녀의 기분』
감각사회학으로 그린 모딜리아니의 초상 김지녀 시집 『양들의 사회학』
흙이 묻지 않는 보법, 리얼리스트의 각도로 걷기 김희업 시집 『비의 목록』
어둠의 기도와 원한 없는 사랑의 몸 이영광 시집 『나무는 간다』
불가능의 고도, 절벽의 꽃나무 이원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제4부
한 전위(前衛)의 시적 용기 김남주 20주기에 부쳐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 어떤 애인들의 존재 형식에 관하여
백살나무의 부정신학(否定神學) 조말선의 시
종순(從順)의 시학, 미결(未決)의 윤리 정진규의 시
우리는 죽음의 무게를 뺏기고 싶지 않다 김행숙의 시
도시 주변부 소년의 형이상학 박판식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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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 2009년 제4회 김달진문학상
저자 소개
  • 함돈균

    2006년 『문예중앙』에 평론 「아이들, 가족 삼각형의 비밀을 폭로하다」를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얼굴 없는 노래』 『시는 아무것도 모른다』 『예외들』 『사물의 철학』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서울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이며, 실천적 창의인문학교 시민행성 운영위원이다.

사랑하는 이들은 잠들지 못한다. 우주의 어떤 특별한 에너지가 그들을 같은 차원에 가두고 그들을 서로 깨어 있게 한다. 연인들에게 불면(不眠)은 불가피하다. 그것은 병증(病症)이 아니다. 불면은 그들의 고유한 존재형식이다. 왜 잠을 못 이루는가. 곁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사로잡혀 있다. 이 사로잡힘이 서로를 깨어 있게 한다.

다른 곳에 있어도 그들은 서로 만질 수 있다. 촉감은 고도로 예민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기도, 지나치게 격렬하고 차가우며 딱딱하기도 하다. 느낌은 살로도 물기로도 공기의 형태로도 변하고 전달된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만짐’은 휘발되지 않는다. 그들은 같은 우주 안에서 서로에게 열리고 날카롭게 파고들며 깊숙하게 스민다. 때로는 아프게 찌르고 찔린다. 촉촉함은 생명을 잉태하는 물일 수도 죽음의 피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잠들 수 없다. 새벽은 그래서 그들의 고유한, 유일한 시간이 된다. 새벽에 잠 못 드는 것이 아니라, 잠들지 못하기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모든 시간은 새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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