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에 달이 열릴 때

책 소개

김선우 시인은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창작과비평』 1996년 겨울호에「대관령 옛길」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2000년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펴냈고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1년 제9회 대산문화재단 문학인창작지원금을 받은 신예시인이다.

 

 

 

『물밑에 달이 열릴 때』는 90년대적 여성시의 문제성을 극복해가는 대표적 여성시인으로 주목을 받아온 김선우의 첫 산문집이다. 시인이 스물아홉을 지나며 세계와 자신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일기처럼, 혹은 편지처럼 천천히 기록해오던 산문들을 만날 수 있다(그중 일부는 2000년부터 2001년 사이에『해인』『사회비평』한겨레신문 등에 발표되었다). 이번 산문집에서 우리는 “김선우의 좋은 시들이 어디서 오는지 그 비밀을 조금 들여다보게”(안도현) 된다. 여전히 이 산문에도 김선우 시의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겨지던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빼어난 묘사와 구체적인 이미지의 육화가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 안에는 “금세 터져나올 듯한” 시인의 “울음”도, “자분자분 숨쉬는 말의 숨결”과 “현실과 몽환 사이의 경계를 드나드는 발소리”도 섞여 있다. 이미지의 구체성이 살아 있는 언어, 정서적인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 일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은 시인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뼈아픈 성찰로 나아간다. 이는 이 글들이 시인이 ‘책머리에’에 밝히듯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탐구하려고 느릿느릿 풀어낸 “통과제의”의 기록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김선우의 산문은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우리 주변에 있는 여리고 귀하고 눈물겨운 것, 하찮고 남루한 것에 대한 애정, 우리 모두의 삶의 버거움과 존재의 슬픔으로 다가간다. 강렬하고 수줍은 듯 관능적인 몸의 표현은 현대문명이 점점 상실해가는 건강한 자연성과 이어지면서 삶의 활기나 존재의 구원과 연결되고 있다.

 

 

 

1부에서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심문하며 “먼길을 에돌아 문득 시(詩)”가 찾아온 기억을 더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질문(「환하게 빛나는 저 겨울 나뭇가지」「죽은 나무를 심다」)을 한다. 시인의 강원도 사랑은 남다르다. 환희에 젖은 아름다운 관능의 바람 속에서 자연을 섬기고 그 섬김의 힘으로 평화를 얻는 울릉도를 이야기하고(「바람에게 길을 묻다」)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저물녘 초당 솔숲, 허난설헌의 생가를 찾아간다(「위험한, 아름다운, 하계로 유배온 여자의 노래」). 산능선을 어루만지는 달의 숨결과 식물을 키우는 달의 에너지를, 그 안으로 열리는 자연스러운 여성성의 활력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귀래에서 달을 보다」), 따뜻한 에로티씨즘으로 가득 찬 그림 5점을 보여준다. 시인이 아끼는 이 그림들은 모두 건강한 여성성의 이미지를 펼치며 독특한 관능의 힘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2부는 시인이 “이제야 간신히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고 말한 심정이 잘 스며 있다. 스님이 된 누이에 대한 기억과 부조리한 현실에 맞선 싸움의 기억이 담담하게 고백(「붉은 시편들」)되며, 생명의 무한한 순환과 우주질서에 대한 깊은 사색에서 나아가 오만한 인간중심의 문명이 생명에 저지른 파괴를 꼬집는다(「구름의 문에서 무늬를 얻다」 「검은 꽃 이야기」). 그런가 하면 “명치끝에서부터 치밀어올라오는 광포한 살기”와 분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여 내면에 존재하는 ‘연옥’의 풍경을 돌아보게 되는 치열한 자기성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육체, 연옥의 문」).

 

3부는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독서일기 중 13편을 가려뽑은 것이다. 독서일기는 김선우 시인이 무엇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를 일상에서 느낀 단상과 함께 고백한 짧은 글들이다.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맘껏 ‘오독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다”고 말한 동방의 현자를 생각하고, 천문학자 칼 쎄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읽으면서 일상의 속도 속에서 잃어버린 꿈을 떠올리며 “사랑을 하러 나는 날마다 이 별로 온다”는 속삭임을 듣거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좋은 책으로 그르니에의『섬』을 추천하기도 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그리스인 조르바』에서부터『유마경』과『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책과 함께한 일상을 섬세하고 정갈한 문체로 담아 시인의 삶의 안쪽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목차

1부
바람에게 길을 묻다
위험한, 아름다운, 하계로 유배온 여자의 노래
귀래에서 달을 보다
순간, 숨, 프시케
환하게 빛나는 저 겨울 나뭇가지
죽은 나무를 심다

2부
육체, 연옥의 문
저자에서 관음을 만나다
붉은 시편들
검은 꽃 이야기
구름의 문에서 무늬를 얻다
폐허 이야기
고갯마루에서 마음을 내어말리다

3부
만지기 위한 책
신성한 야만
침묵해요,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꽃병 속의 화엄
생의 매순간은 생의 전부이다
사랑을 하러 나는 날마다 이 별로 온다
상처의 환생
열린 정신들
고치를 뚫고 나오는 나비처럼
그리고 우리는 돌아간다
불꽃의 혀
거미야, 거미야
괴로운 책읽기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김선우

    1970년 강원 강릉 출생. 1996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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